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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록 May 06. 2017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카트(2014), 감독 부지영

카트 (2014) / 감독 부지영





 카트. 진작에 봤어야 했던 영화고,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너무 늦게 보게 되었지만 시기가 나름 적절하다고도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에는 근로자의 날이었고, 많이 슬픈 일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 그 중간 시기에 이 영화를 나에게도 추천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전공수업 중에 '영상제작'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한 학기 동안 팀을 이뤄서 10분 내외의 다큐멘터리 한 편을 제작하는 수업이었다. 교수님은 사회적 메시지가 없는 기획안은 전부 반려시켰고, 결국 우리 팀은 다른 팀들보다는 꽤나 민감한 소재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제로 정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미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제로 한 (프로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만의 강점과 색깔인 대학생을 가미시켰다.


 실제로 대학 내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매우 많았다. 지금도 많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학생들은 그러한 대학 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한 처우나 사정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실제로 나부터도 모르고 지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대학생들의 무관심을 꼬집어보자고 마음먹었다.


 당시로서 영상은 꽤나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학교를 청소해주시는 어머님들과 강의를 해주시는 시간강사분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인터뷰를 담았다. 그리고 우리 대학생들이 그러한 현실을 얼마나 무관심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비판했다. 완성된 다큐멘터리로 학점도 잘 받았고 학우들의 평도 나름 잘 받았다. 광주 국제 영화제 시민영상 초청전에도 초청되어 시민들에게 상영되었고, 시청자 제작 영상을 방영해주는 KBS 열린채널에도 출품하여 방영되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솔직히 잊었다. 잊고 살았다. 학교 졸업하느라 바빴고, 취업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다. 그 영상을 만든지도 어느새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우연히도 나는 정규직이 되었다. 그러나 회사를 들어오게 되면서 나는 많은 모습을 보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노조원들, 그리고 경영자들. 잊고 살았던 것들이 하나둘씩 다시 기억이 났다. 세월에 휩쓸려 내가 했던 말들에 내가 책임지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고도 또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롭다. 그게 인간이니까. 인간의 이기심이니까.


잊어도 괜찮은데, 지우지는 말기를.

 영화를 보면서 나를 가장 화나게 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직원들을 무더기로 해고해버린 회사 오너들? 자기들도 노동자면서 경영자 편에 서서 다른 노동자들을 밀어내는 중간 관리자들? 그저 자기 자식과 자기 아내만 소중해서 남의 생계는 신경도 안 쓰는 그 과장? 중간에 다른 노조원들을 등지고 복직을 한 몇몇의 노조원들? 절대 아니다. 아무도 아니다. 그런 사람들보다 나를 가장 화나게 했던 사람들은 바로 대중들이었다. 대중들의 시선이었다. 시위를, 파업을, 노조라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 노동자들이 가해자고 기업이 피해자인 것처럼 보는 사람들.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읽어달라고 붙잡으면 시간 없다고 뿌리치는 사람들. 자기들 잇속 챙기려고 고객한테 피해를 줘도 되냐고 역정을 내는 사람들. 그 시선과 반응이 힘들게 기득권과 싸우는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가장 큰 파도였다. 가장 나를 아프게 했다.


 어머님들을 인터뷰하면서 가장 가슴 깊이 박혔던 말은 딱 하나였다. "누구 하나 자기 일처럼 달려들어서 해결해 주는 사람이 없다." 물론 힘들다. 누가 자기 편안한 상황을 걷어차고 어려운 일을, 그것도 남을 위해서 나서서 하겠는가?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절대 비난하지 않는다.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후원금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 힘든 거 아니까. 근데 딱 하나만. 이거 하나만 바랄 뿐이다.


"이해해요. 공감해요.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경영자들의 편에 서지 않고 노동자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봐주는 것. 카트를 바리케이드 삼아서 그 힘든 시위를 이어온 그 사람들이 단지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주는 것. 모두 우리, 다 같은 노동자들을 위해 노력해주시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옆 사람이 잘리면, 그다음은 바로 자기 차례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다. 그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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