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면접에 불합격하셨습니다만

같은 슬픔에 빠져 있을 누군가를 위해

by 수록





안타깝게도 최종면접에 불합격하셨습니다.


2016년 여름, 최종면접 불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2년간의 긴 취업준비 끝에 처음으로 간 면접이었고, 운이 좋게도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습니다. 머리 속에는 ‘한 걸음만 더, 한 계단만 더’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큰 빌딩에서 우르르 나오는 검은 무리 속에 제가 보였습니다.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채 저를 보며 웃었습니다. 이미 그 속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했습니다. 인턴십을 큰 문제없이 마무리했고, 정규직 전환율이 95%에 육박하던 곳이었기에 결과는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자가 없는 이상 합격한다던 곳에서 저는 하자 있는 놈이 되어버렸습니다.


불합격 소식에 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 부족했는지가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따지고 싶었습니다. 종교를 믿지도 않으면서 애꿎은 하느님을 원망했습니다.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은 걸까? 잡히지 않은 살인범이었을까? 그 누구보다도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또 간절했습니다. 노력과 열정을 저울질할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기준에 의해 저는 결국 밀려났습니다. 결과는 잔인했고, 번복되지 않았습니다.


길고 길었던 취업준비 동안에 처음으로 올라갔던 최종면접이었습니다. 무려 2년 만에 말이죠. 서류, 인적성 시험, 면접, 필드테스트, 인턴십까지. 많은 과정을 힘들게 이겨냈고, 결국 마지막 문 앞에 섰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제 문은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습니다. 문 앞에 주저앉아서 옆의 동기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나는 결국 안 되는 사람이었나?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그것이 결과를 통해 증명되어버린 순간이었습니다.




이대로 침대에 스며들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낯선 거리를 방황하다 밤늦게 집에 들어왔습니다. 제 모습을 스스로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불도 켜지 못했습니다. 깜깜한 집에 쓰러져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침을 맞이하는 게 두려워 새벽이 다 가도록 잠들지 못했습니다. 최대한 늦게 잠들어 낮을 건너뛸 요량이었습니다. 그러면 나를 바라보지 않아도 되겠지. 계속 이렇게 누워있을 수 있겠지. 그렇게 아침이 거의 될 즈음이 되어서야 잠들었습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반복적으로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인턴을 했던 친한 동기이자 동생이었습니다. 그 동생은 저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뜬금없는 주식 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턴 월급으로 주식을 샀는데 올랐다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고마웠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공유해주는 배려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괜찮을 거야', '잘 될 거야', '힘내'라는 위로의 말들보다 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공유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동생은 저만 모르게 동기들과 꼬박 하루를 고민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응원을 해야 할지. 그러다 결국 도달한 답은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저를 대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슬픔에 빠진 누군가를 위해.


슬픔에 빠진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 그 밀도만큼이나 값지고 보람찬 일이 또 있을까요? 소중한 사람들의 위로 아닌 위로를 받으면서 저는 가까스로 버텨냈습니다. 사실은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나의 노력과 열정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저는 꽤나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는 많은 취준생들이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살아갑니다. 심지어는 부모님과의 사이도 좋지 않아서 집을 떠나 있는 사람들도 많죠. 주변이 없는 힘듦은 견디기가 무지 어려운 법입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나름대로의 특권을 누렸습니다. 저는 언제나 특권은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작은 글로서 위로를 건네기로 다짐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최종면접에 떨어지며 저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 얼마나 컸을지 저로서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쉽지 않습니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기들과는 어느새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그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배운 것도 얻은 것도 굉장히 많습니다. 2년간 무식하게 달려오던 시간이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보이지 않던 풍경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가지 못한 길에 대해서 아쉬워하지만, 지금 걷는 이 길 또한 그중 하나였습니다. 결국에 우리는 항상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에 중요한 것은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그로 인해 얻은 것, 그로 인해 얻을 것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항상 이 말을 전해줍니다.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을 또 다른 나에게. 나는 잘 걷고 있어. 나는 잘 걸어가고 있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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