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요.

이젠 눈치 보지 말고요.

by 수록





제 아버지는 평생을 교정직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살아오셨습니다. 지금껏 가족들 밥 한 끼 굶긴 적이 없었죠. 그런 아버지는 술을 워낙에 좋아하셔서 꽤나 자주 인사불성이 되셨는데,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들어오실 때면 매번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어찌 보면 아버지의 직업은 어머니에게 꼬박꼬박 월급봉투를 가져다 드리고, 자식들 대학 등록금까지 해결해주는 최고의 직장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던 1997년에도 우리 집은 밥을 굶지 않았고, 세계경제가 무너지던 2008년에도 저는 힘든 줄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을 철밥통이니 혈세를 낭비하니 욕을 해도 아버지는 꿋꿋이 잘 다니셨고, 아버지보다 나이가 어린 상사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시면서도 아버지는 꿋꿋이 잘 다니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끝내 정년퇴임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정년퇴임까지 단 2년을 남기시고는 33년간의 긴 회사생활을 끝내셨죠. 막내였던 제가 대학을 마친 다음 해였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제 학창 시절은 꽤나 다이내믹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는 것이 곧 제 삶의 모토였습니다. 머리를 만지고 꾸미는 것을 좋아해서 미용고를 가려했었고, 무대에 오르고 싶어 학교 댄스부에 들어가 옆 학교로 춤을 추러 다녔습니다. 노래가 좋아서 음악학원에 테스트를 보러 광주까지 올라갔었고, 드라마 피디가 되겠다고 매일같이 시나리오를 썼었죠.


그러나 좋아하는 일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것들을 남들보다 특출 나게 잘하지는 못했고, 그 일들을 쫓기에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수많은 관심과 도전 끝에 깨달은 것은 저는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머리에 왁스 조금 잘 발랐을 뿐이었고, 9명의 댄스부 멤버 중에 9번째로 춤을 잘 추는 멤버였습니다. 음악학원은 제가 가수가 되려면 7년이 걸릴 거라고 했고, 드라마 피디가 되려면 서울대나 연고대쯤은 졸업해야 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기에 저는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선택지는 점점 더 줄어들어 하나로 좁혀졌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이질감을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흐르는 강물처럼 사람들 가는 데로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저는 회사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제 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너를 비난하지 않아


피트 준비를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공부를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일 년 만에 만난 동생이 꺼내 든 고민은 제 내면 속에 깊숙이 숨겨왔던 무언가를 건드렸습니다. 우습게도 저는 동생이 건네 온 고민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주제넘은 이야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네가 특별히 약사가 되고 싶은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피트를 중간에 그만두는 것에 있어서 절대 너를 비난하거나 끈기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더 이상 후회하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너를 위한 길이 아닐까? 그게 조금 불안하고 어렵더라도.


동생에게 주제넘은 충고를 하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이 말은 그 동생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말이죠. 좋아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금방 실증 내 버린 것.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포기해버린 것.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좋아하는 일을 숨겼던 것. 혹여나 그것을 직업으로 삼지 못하더라도 즐겨서 하다 보면 기회가 올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너무 일찍 제 길이 아니라고 단정 지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요.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나이는 서른 즈음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너무 늦었다며 또다시 멈추어 있고 말이죠.




돌이켜보면 저는 너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사실은 하고 싶었던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세상에 포기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용기 내어 부딪히지 못했던 것이에요. 그냥 그 길로 가면 되는 거였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주변의 시선과 압박에, 스스로 지레 겁먹어 포기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하나 둘 저를 양보하기 시작했고, 잊었던 꿈들은 제가 걸어온 길 위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사실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주변의 미움을 받아가면서까지 그 일을 할 자신은 없었던 거지요. 그나마 남들과 함께 우르르 묻혀서 갈 수 있었던 길, 잘 되지 않더라도 나의 책임이 덜 드는 길을 저는 택했던 겁니다.



작은 좋아함이라도
좋아한다면 해보세요


저는 아직도 제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전히 제가 정확히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확신하지도 못했고요. 대신에 저는 관심 있고 재밌는 일들을 꾸준히 찾아서 해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고, SNS를 운영하고 있고, 캐릭터 굿즈를 모으고, 또 동영상도 만들죠.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좋으면 되는 거니까요. 지금 시작하더라도 늦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고요. 아주 작은 좋아함이라도 그것은 좋아하는 것이니까요. 주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일단 해보세요. 의외로 사람들은 우리를 응원해줄 거예요.


혹시나 아버지가 다시 술에 취해 저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사셨다고 해서 아버지의 인생이 실패한 건 아니에요.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하지 못했던 것들, 지금부터라도 하며 살아가요. 제가 응원할게요."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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