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이야기
안녕~~ 애들아! 내가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아이는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듯이 총총 달려와 옷을 걷어붙이고 손가락을 여기저기 보여준다. 지난밤 모기에 물렸다며 그래서 너무 간지러워서 밴드를 붙였다고 캐릭터가 귀여운 밴드를 굳이 떼어서 선생님 눈앞으로 바짝 보여준다. 또 어떤 아이는 엘사 원피스 치마를 손끝으로 살짝 들고 공주처럼 빙그르르 돌면서 “선생님! 선생님!” 하며 엄마가 사주었다고 종알종알 말한다. 이 모습을 주시하고 있던 두어 명의 여자 친구들도 어느새 곁에 와서는 나도 집에 백설 공주 드레스가 있다는 둥 너보다 내가 더 이쁜 게 있으니 내일 입고 와 보겠다는 둥 어느새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벌인다. 나도 “와~ 정말 예쁘구나! 선생님은 드레스 없는데 입고 싶구나!”라고 말하며 최대한 요란하게 맛 짱구를 쳐준다. 그렇게 조용해지려나 싶을 때 누군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갈 것처럼 천천히 다가오더니 “선생님! 우리 할아버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어요!”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너무 걱정돼요”"저 할아버지 엄청 좋아해요"라고 말하며 곧 울 것 같은 슬픈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아이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혹시 울음보가 터질까 재빠르게 위로해준다. 그런데 이 녀석 뒤돌아서 가자마자 친구와 깔깔깔 웃으며 장난을 친다. 배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우리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감정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감정에 매우 충실한 편이고
솔직하다. 물론 크게 나뉘어 기쁨과 슬픔에 해당하겠지만 재미있는 건 그 어딘가 중간에 포함되는 감정은 없는 것 같다.
모기가 온몸에 물렸다며 보여준 아이는 손가락에 캐릭터 밴드를 한 통은 붙였을 것 같은데 그래도 간지럽고 너무 힘들다며 입술은 뾰로통 나오고 미간에는 힘을 잔뜩 주어 지금 몸 상태가 아주 못마땅함을 표현한다. 우울 모드로 있던 아이는 결국 집에 계시는 할머니를 소환했다,
엘사 원피스를 곱게 입고 빙그르르 돌던 아이는 머리엔 왕관 머리띠 손에 요술봉을 들고 하루를 지내려고 해서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요술봉은 가방에 넣었다, 요술을 부리지 못해 아쉬웠던 걸까? 끝내 눈물을 보이며 잠깐 슬퍼했다. 할아버지가 아파서 슬프다는 아이의 하루는 어떠했을까? 신나게 노느라 아픈 할아버지 따위는 잠시 잊은 듯했다. 집에 가서는 아마도 할아버지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으리라 믿어 본다.….
나는 내 감정 표현을 얼마나 잘하면서 살고 있을까? 요즘 부쩍 감정이 격하게 올라오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내 감정은 내 것이라는 좋은 말이 있듯이 잘 통제하고 조절해가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아니라 감정을 잘 억누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물론 나뿐만 아닐 것이다. 고령에 접어든 부모님이나 주변의 지인을 보면서도 느낄 때가 많다.
나이가 들며 상대방에게 부담감을 주는 것이 싫어 기대하게 되거나 기대받지 않게 하고 나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나쁜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것이 들킬까 꼭꼭 숨기느라 혼자 진땀을 빼기도 한다. 혹은 잘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엄청나게 큰 파도처럼 밀려와 걷잡을 수 없이 엉망진창이 되어 후회할 때도 있다.
사람들은 겉으로 볼 때 감정에 있어서 유연함을 가지고 있어 보이지만, 아니다. 큰 파도라는 감정이 밀려오기 전 적절하게 미리 작고 부드럽게 잔잔하게 만드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말로써 적절하게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 교실에 아이들에게도 내 감정을 부드럽고 예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반복해주고 기회를 많이 주여야겠다.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한 아이가 예쁘게 말을 표현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날은 그림책을 읽고 독후활동으로 콩강정을 만들어 보는 요리 활동이 있었던 날이다.
준비한 병아리콩, 서리태콩을 프라이팬에 잘 볶아준 뒤 조청을 넣어 주었다. 콩이 볶아지는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니 떠들던 아이들도 집중하며 프라이팬 속 콩에 집중을 해주었다.
“애들아~ 조청을 넣으니까 병아리콩이랑 서리태콩이 서로 붙었어”하고 말하자, 그때 한
아이가 대답했다.
“선생님! ~ 서리태콩이랑 병아리콩이 서로 사랑하나 봐요”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은 아니지만, 너무 이쁜 말이 아닌가? 콩이 서로 사랑해서 강정이 된다는 말이 말이다. 그 이후로 난 이 말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아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