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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블리 Jul 18. 2022

내가 좋아하는 말, 엄마

이 세상에 모든 엄마를 위하여


엄마, 마마, 우리 수경이……. 아들에게 나는 이렇게 불린다.….

기분이 좋거나 혹은 뭔가 사고 싶은 게 있을 때 마마~라고 부른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노래에 마마~~ 우우하며 도입부를 따라 부르며 내게 웃으며 다가온다.….

‘우리 수경이’는 내가 화가 나 있거나 삐져 있으면 내 옆에 와서 “화났어요? 우리 수경이”하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린다. 엄마인 난 화가 눈 녹듯 녹아내린다. 엄마는 한 명인데 불리는 이름은 참 여러 가지다. 본인의 기분에 따란 말이다.

우리 꼬마 친구들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만병통치약이다. 친구와 다투고 기분이 안 좋으면 ‘엄마’를 부르며 울고, 졸리고 피곤해도 ‘엄마’를 찾는다. 심지어 배가 고프다며 울면서 ‘엄마’가 보고 싶단다. 그럴 때는 정말이지 나도 우리 엄마가 보고 싶어 진다.….

어느 날인가는 꼬마 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도 엄마가 있어요?” 없음을 확신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럼 선생님도 엄마가 있지”라고 대답하면 진심으로 꼬마 친구는 놀란다. 선생님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무튼 그 반응이 너무 재미있어서 아빠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꼬마들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렇다. 나도 엄마가 있다. 요즘 애들 말로 우리 엄마 아니고 내 엄마는 80의 노인이다. 위로 줄줄이 언니들이 많은 탓에 내게는 항상 나이가 많은 엄마였다. 게다가 엄마는 어디서도 돈 주고는 배울 수 없는 오직 타고나야 하는 “센스”라는 것이 부족했다.

나는 학창 시절 학교 점심시간에 내 도시락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도시락을 여는 순간 빨간 김칫국물은 매번 다른 반찬들까지 무참히 침범했고 그 김칫국물은 침범하다 못해 통 밖으로 줄줄 흘러서 끈적거리고 있었다. 내 미간은 심하게 찌그러졌다. 친구들은 예쁜 도시락통에 반찬도 프랑크 소시지, 어묵, 소고기 등등 맛있는 것만 싸서 오는데 철없는 나의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생겼다. 그래서 그 시절에 난 엄마를 원망하고 무시하는 말로 상처를 주었다. 다섯 딸의 도시락을 챙겨주는 엄마에게 매 순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을 텐데 말이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생각한다. 깊은 슬픔에 훌쩍이다 못해 오열했던 기억이 있다. 소설을 읽으며 울음을 멈출 수 없었던 나를 아마도 옆에서 누구라도 보았다면 무슨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

소설 속 엄마와 내 엄마는 너무 많이 닮아 있었다. 자식이 많은 내 엄마, 글을 배우지 못한 내 엄마, 고생스럽게 살아도 그게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내 엄마,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대답 대신 자식 걱정이 먼저인 내 엄마는 소설 속에서 길을 잃은 엄마였다.

 난 엄마에게 그렇게 살가운 딸이 못 된다. 엄마와 통화라도 할 때면 늘 화를 내는 듯하기도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게 엄마와의 대화법이었다. 엄마가 뭐 했냐? 요즘 뭐 해 먹냐? 물으면 ‘그냥 뭐 대충 먹어’라고 말하며 정말 대충 대답을 했다. 그래서 엄마와 나의 대화는 간단하게 끝이 날 때가 대부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바랬던 젊은 엄마가 아니어서 다른 집 모녀처럼 세련된 엄마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쇼핑을 한다거나 그 흔해 빠진 같이 커피 마시기도 못 해봐서 그런 것인지 나이가 많은 내 엄마는 나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을 했었다.

엄마는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약해진 다리뼈가 부러져 수술하고 재활 치료를 받았다.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80세 나이에 수술한 엄마의 다리는 해를 거듭할수록 힘겨워 보인다. 어떤 날은 밤새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진통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내 엄마는 당신이 아픈 몸보다 아파서 예전처럼 딸들에게 이것저것 챙겨주지 못한 마음이 더 아프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현재도 여전히 살가운 딸은 못 된다. 그래도 무더운 요즘 전화를 자주 한다. 엄마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이것저것 말하려고 노력한다. 더우니까 에어컨 아끼지 말고 꼭 틀고, 무리하게 운동하지 말라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하기도 한다.

엄마는 꽤 오래전부터 한글을 배우고 있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방금 배운 것도 생각이 안 나고 새롭다며 속상해 하지만 아직도 공부에 대한 열정만은 대단하다. 나의 글쓰기 도전도 어쩌면 열정적인 엄마가 있어서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내 엄마는 세련되거나 많이 배운 젊은 엄마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딸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남부럽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도 비가 많이 온다는데 엄마한테 또 전화를 해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말, 엄마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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