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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네 Nov 01. 2021

최악의 교사

 더운 여름, 꽁꽁  식혜가 담긴 물통을   가방에 담아 들고 등교했던  생각이 난다. 내가 마실  하나, 선생님 드릴  하나. 얼음이 녹기 전에 선생님께 식혜를 건네면 선생님은 고맙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종례를 마치고 나면  통을 가방에 다시 넣고 집에 돌아갔다.  당시에는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선생님과 엄마가 친구인가 보다 생각했었던  같다. 친하니까 맛있는  있으면 같이 먹고 싶은가 보다, 그렇게.


 당시의 어느 , 가족끼리 제주도를 가기 위해 학교를 3 정도 빠졌고 다시 돌아왔을  선생님은 예전처럼  쓰다듬어 주지 않으셨다. 다른 친구들이 숙제를 빼먹었을  교실 뒤에서 손만 들게 하셨으면서도, 나에겐 꿀밤이 추가됐다. 각종 글짓기 대회에  추천했던 선생님은  이후로는 다른 친구들을 추천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던  같다. 그래도 그냥 엄마랑 싸워서 그런가 보다, 얼른 화해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난  어쩌다 나온 이때의 이야기에, 엄마는 제주도에 다녀와서 비싼 선물을 사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을 해줬다. 촌지를 받던 시절이었고, 당시 선생님은 그중 유난히 바라는 편이었다고. 선생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갑자기 변했던 건지 20 정도가 지난 후에야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 후로도 아이들의 뺨을 수시로 때리던 담임선생님, 수업 중인 아이를 불러내어 다른 반에서 노래하게 했던 도덕 선생님, 악수하는 척 일부러 손바닥을 간질이던 수학 선생님, 열심히 공부한다며 여러 반을 다니며 한 학생을 칭찬하다가도 수틀리면 바로 뒷담 아닌 뒷담을 하던 학생주임 선생님까지, 딱 한 명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선생님들을 꾸준히 만나왔다. 학생이던 때는 선생님의 존재가 왜 그토록 커 보이던지. 그들이 가진 권력은 그런 것이었다. 자신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할 학생들을 자기의 기분대로 대할 수 있는, 그런 것.


 하지만 지금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환경은 그때와는 달라졌고, 학생들도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때가 왔다. 교권이 무너졌다고, 아이들의 잘못을 바로잡기도 힘든 시대가 됐다며 혀를 차는 어른들도 있다. 그들이 말하는 ‘교권이라는 것은 무엇인 걸까. 선생님이 하는 말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에 반박한다고 해서 무너질 교권이라면 애초에 교권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단지 어른들이 바라는 ‘옳은 행동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교권이라는 것일까.


 ‘교육을 받을 권리와 교육을  권리라는 교권의 넓은 의미에 따르면, 학생들에게도 본인이 원하는 방식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것을 이해하고 최대한 학생들에게 맞춰 교육을  나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권 세우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마디의 무게를  , 제자들의 인생에 내가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할지 고민해 보는 , 그들의 말에  기울일 .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나이가 어릴 , ‘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  간단하지만 중요한 원칙들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한다면 교권은 자연스레 우뚝 솟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지만 한 명의 어른으로서 최악의 어른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한 명으로 대하되 아직 성장 중인 존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대하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건강한 어른이 되어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또 다른 존재를 건강하게 키워낼 수 있도록 나 먼저 노력하자고 되뇐다.



 학생이었던 나는, 최악의 선생님들로부터 또 한 가지를 배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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