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로 화면이 바꾸는 영상 문법
마이크로 드라마(Micro-drama, 微短剧, 미단극)로 불리는 중국 세로 숏드라마를 몇 주 전부터 잔뜩 보고 있다. 라이더 재킷을 입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고, 나도 모르게 검색—링크—검색—링크—앱 다운로드로 이어졌다. 숏드라마의 마케팅 전략에 그만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릴스에 광고로 뜨는 걸 찾아서 보다가 답답하기도 해서, 아이치이(iQIYI) 앱을 깔고 결제를 해서 정식으로 봤다. 자극적이고, 짧고, 기-승-전-결 구조가 아닌 기-기-기-결 구조. 보다 보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중화권을 염두에 두고 서비스를 하지만 글로벌 버전으로도 적극적으로 각 플랫폼들이 광고를 하고 유저를 유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비스 중인 앱은 아이치이(iQIYI)부터 플릭릴스(FlickReels), 비숏(BeeShort), 드라마박스(DramaBox) 등이 있다. 화질은 아이치이가 제일 좋고, 앱 구성도 편리한 편이다.
2026년에는 천억 위안, 우리 돈으로 22조가 넘는 시장 규모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2023년 이전에는 내용이 황당무계하거나 촬영 수준이 너무 낮은 것들이 많았는데, 이후 제작 및 유통 시스템이 안정화되면서 2025년부터는 제법 그럴듯한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다. 나는 이때 만드는 작품들에 낚여버리고 만 것이다. 스타성 있는 배우들도 숏드라마 쪽에 많이 영입되고, 숏드라마 중심의 시상식들도 모양새를 갖추어 간다.
무엇보다도 아이치이(iQIYI)의 댓글 시스템이 독특하다. 이용자들의 댓글이 화면 위로 흘러간다. 처음엔 거슬렸는데, 다들 어찌나 위트 있게 다는지! 댓글 때문에 낄낄거리면서 봤다. 얼척없는 설정도 댓글과 함께라면 견딜 수 있었다. 아직 세련되지는 않지만, 반응을 공유하는 인터넷 콘텐츠의 속성을 잘 활용한 새로운 모델이다.
중국 내에서는 주로 더우인(抖音, Douyin, 중국 틱톡)이 운영하는 홍과(红果短剧, Redfruit) 앱에서 서비스한다. 작품 상영과 더우인을 활용한 배우-팬 소통 생태계를 구성해 숏드라마의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 내 일반 드라마는 키스씬조차 검열이 심하기로 유명한데, 마이크로 드라마는 사후 검열이고 글로벌 플랫폼으로 나가는 작품들은 더 관대하다. 플랫폼이 콘텐츠 규제의 틈새를 파고드는 방식이 꽤 전략적이다.
한국은 문법째 수입했다
한국도 중국식 숏드라마의 공식을 뒤따르고 있다. '비글루'라는 앱에서 작년 말부터 숏드라마를 만들어 서비스 중이고, 이상엽·이동건 같은 인지도 있는 배우들도 등장한다. 그런데 몇 편을 보니 한국식 드라마 문법은 없고 중국식 숏폼 드라마의 서사와 편집, 화면 구성을 철저히 따라가고 있었다. 포맷을 수입한 게 아니라 숏폼 드라마 문법을 통째로 수입한 셈이다. 좀 놀라웠다.
세로 화면으로 만화를 보는 웹툰이라는 형식의 파괴와 확장을 한국이 시작했다면, 중국은 지금 영상을 세로로 보고 2~3시간(각화 3분 내외, 총 60~80회) 한 편을 다 몰아 볼 수 있는 새로운 영상 문법을 세계에 퍼트리고 있는 중이다. 초창기에는 환생·복수 같은 소재로 맥락 없이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요즘에는 짧은 드라마 안에도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자아 성장까지 담고 있다. 단조로웠던 촬영도 다채로워져서 보는 재미를 늘려가고 있다. 과연 이 숏드라마 열풍은 어디까지 갈까. 우리도 OTT나 공중파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해 자극적인 장면을 세로형식으로 시간을 짧게 편집하여 서비스하는 게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데, 이것들을 몇 개 이어 붙이면 바로 마이크로 드라마가 되는 거니까.
스마트폰이 선사한 세로 화면의 세상에 웹툰에 이어 영상까지 새로운 문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한국이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것만이 확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