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유럽여행일기 in 폴란드 자코파네
폴란드 남쪽에 위치해 슬로바키아와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곳, 자코파네.
여름엔 하이킹, 겨울엔 스키로 유명한 폴란드인들이 특히 사랑하는 관광지다.
삶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 땐 자코파네를 생각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니 폴란드인들이 이곳을 얼마나 아끼는지 더 많은 설명은 필요하지 않은 듯하다.
이 속담을 알고부터 자코파네가 너무 궁금했다.
어떤 도시가, 어떤 공간이 누군가의 삶의 이유가 되는 건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무작정 자코파네행 기차표를 끊었다. 바르샤바에서 약 7시간 정도 걸리는 꽤 먼 곳이지만 내게도 삶이 힘들 때 생각나는 공간 하나쯤이 생기게 된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2022년 11월 2일
저녁 11시 12분, 자코파네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너무 급하게 잡은 여행일정이라 어쩌다 혼자 자코파네에 가게 됐다. 혼자 멍하니 창문 밖 빠르게 지나가는 칠흑 같은 어둠을 바라보다 내가 이런 무모한 면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2022년 11월 3일
오전 6시, 기차와 버스에서 어찌어찌 잠을 자다가 일어나 보니 자코파네에 도착해 있었다.
밤이 길어져서일까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자코파네는 푸르스름한 어둠이 깔려있었다. 해가 뜨기를 기다릴 겸, 아침도 먹을 겸 근처 빵집에 들어갔다.
이제 막 문을 연건지 갓 구운 빵 냄새가 빵집 가득 채워져 있었고 원래는 커피나 한 잔 하려던 요량이었던 난 무언가에 홀린 듯이 빵 몇 개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따듯한 커피와 빵으로 몸을 녹이다 보니 나 밖에 없었던 가게에 손님이 하나둘씩 찾아오고 가게 창문으로 옅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마을 풍경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세모 모양 지붕을 가진 목조건물들(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이런 양식으로 집을 짓는다고 한다.)이 듬성듬성 거리를 채우고 있었고 새들이 열심히 지저귀는 소리가 그 여백을 채웠다. 같은 폴란드인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르샤바와 다른 모습에 놀라기도 잠시 얼른 이곳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에 급히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뭐든 급하면 체하는 법. 그 진리를 오늘도 경험했다.
자코파네에서 유명한 호수 '모르스키에 오코'를 가는 입구를 잘못 찾아갔다가 주변 가게에 물어물어 출발한 지 1시간 30분 만에 '진짜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돈도 시간도 2배로 더 들인 바보 같은 해프닝이었지만 그만큼 소중한 교훈 (뭐든 급하게 하지 말자)을 얻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찌어찌 도착한 진짜 입구에서 모르스키에 오코 호수를 가기 위해 마차에 올라탔다. 모르스키에 오코는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산인 타트라 산 안에 있는데 그 호수를 보기 위해선 4시간 정도 등산을 해야 한다. 사실 별로 마차를 타고 싶지 않았는데 4시간 등산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한 난 어쩔 수 없이 마차에 올라탔다.
내 첫 마차 탑승 후기는 심플하다.
'춥고 힘들었다.'
입구를 잘못 찾아갔을 때도 생각나지 않았던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1시간 정도 마차를 타고 내리니 따듯한 햇살과 아름다운 타트라 산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모르스키에 오코를 가기 위해 30분 정도 더 걸었어야 했는데 등산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등산이라면 질색하는 내가 계속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걷다 보니 점점 모르스키에 오코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시간이 12시쯤이라 해는 치열하게 빛나고 있었고 강렬한 햇빛 아래 타트라 산과 모르스키에 오코가 반짝이고 있었다.
모르스키에 오코 호수를 처음 본 느낌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압도감'
웅장한 자연 앞에서 나라는 사람이 작아지는 느낌, 자연의 아름다움이 나를 집어삼키는 기분이 들었다.
깨끗하고 파아란 호수는 마치 거울같이 타트라 산을 머금고 있었고 햇살은 그 둘을 질투하듯 쨍하게 빛나고 있었다. 천국이 있다면 이렇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거만한 생각이 들었다.
오후 2시 30분, 자코파네 여행의 두 번째 목적지이자 마지막 목적지인 '구바우프카 전망대'에 도착했다.
여기선 자코파네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인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보냈는데 타트라 산 아래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자코파네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맘 속 깊은 곳에서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재정비를 하고 전망대 옆에 있는 루지와 케이블카를 탔다.
루지는 생각보다 스릴 있었고 내려갈 때 가깝게 보이는 자코파네 풍경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 번 타기도 한다는데 난 액티비티라면 한 번이면 충분하기에 한 번 탈 때 누구보다 즐겁게 탔다.
루지를 타고 내려갔다가 루지를 타고 올라왔다. 이 올라가는 게 나름 재밌어서 루지를 한 번 더 타야 하나 고민했다.
그렇게 올라와 조금 더 풍경을 즐기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
옆에 꼬마애가 너무 신나 해서 덩달아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케이블카를 즐겼다.
고마워 이름 모를 아가야!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니 자코파네 시내와 바로 연결되는 길이 있었다. 그 길엔 기념품 가게들과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는데 다 귀엽게 생겨서 보는 맛이 있었다.
기념품도 사고 길거리 음식도 먹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했던 난 곧장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해 조금 쉬다 보니 창 밖에 노을이 지는 게 보였다. 너무 하루를 빨리 마무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선물처럼 나타난 저녁노을은 오늘 하루의 완벽한 마침표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게도 이젠 삶이 힘들 때 생각나는 공간, 생각나는 기억 하나쯤이 생기게 된 것 같다.
훗날 삶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 때, 햇살과 노을 아래 빛나던 오늘의 자코파네를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