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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Mar 10. 2023

가장 폴란드스러운 도시, 크라쿠프가 내게 남긴 장면들

우당탕탕 유럽여행일기 in 폴란드 크라쿠프 

#Scene1

여행에서 그 도시를 마주하는 첫 순간은 중요하다. 후에 그 여행을 기억할 때 선명하게 그려지는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이기에.

크라쿠프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오른다. 그곳엔 비가 오고 나서의 축축한 거리, 구름들 사이로 살짝 삐져나와 있는 햇살, 옷깃을 여미게 되는 쌀쌀한 바람 속에서 '참 폴란드스러운 도시다.'라고 생각하며 트램을 기다리던 내가 있다.

크라쿠프는 폴란드의 옛 수도이다. 지금의 수도인 바르샤바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시 전체가 파괴되어 구시가지를 포함한 도심지 전체가 다 재건된 것인 반면, 크라쿠프는 전면적인 파괴는 면했다. 그래서일까 바르샤바와는 다르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들은 제 힘으로 폴란드를 보여주고 있었다.



#Scene2

카지미에르즈 유대인 지구

크라쿠프의 유대인 지구인 이곳, 카지미에르즈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이곳에 살던 64,000명가량의 유대인이 모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강제 이송되었다고 한다. 전쟁 후 6,000명만이 돌아왔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의 분위기는 참 특이하다. 음산한데 묘하게 활기가 넘치고 차갑지만 따듯한 구석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폴란드에 살면서 느낀 폴란드의 특징을 함축해 놓은 공간 같달까. 내가 폴란드의 그런 매력에 빠진 것처럼 이곳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지미에르즈 유대인 지구가 요즘 크라쿠프 젊은이들에게 핫한 곳이라고 한다. 거리 전체에서 느껴지는 냄새부터 작은 상점들 하나하나까지 '힙하다'는 단어와 잘 어울렸다. 내가 봤던 유대인 지구 중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젊고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물론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공간도 있었다. 그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의미로 세워둔 수많은 의자들, 친구와 한참을 그 텅 빈 의자들을 바라봤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유대인 지구도 결국엔 사람이 살았고 살고 있는 곳

그 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잊지 않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곳에서의 모든 장면이 영화처럼 스쳐간다.


#Scene3

크라쿠프 올드타운 (크라쿠프 광장)

밤의 크라쿠프 올드타운은 참 낭만적이다. 광장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성모승천성당으로 비추는 불빛들과 주변 상점들과 식당들이 내뿜는 불빛들, 사람들의 말소리, 웃음소리가 한데 모여 반짝거린다.

내가 갔던 올드타운은 비가 오고 추웠지만 그 나름대로 낭만적이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들을 보며 우산 아래서 따듯한 와인 한 잔 홀짝거리는 맛이 있었다.

걷다가 추우면 카페에서 따듯한 핫 초코 한 잔 마시면서 몸을 녹이고 다시 나와 손을 호호 불었던 겨울의 크라쿠프가, 그때의 서늘한 촉촉함이 난 좋았다.


#Scene4

아우슈비츠

크라쿠프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코스, 아우슈비츠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50km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크라쿠프 여행 마지막 날, 크라쿠프 기차역에 짐을 맡기고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의 폴란드식 발음이다)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해 소지품 검사를 하고 들어와 제일 먼저 한국어로 쓰인 책자와 한국어 가이드를 샀다. 이곳에 얽힌 모든 것들을 최대한 잘 이해하고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거워지는 기분과 달리 날씨는 무심할 만큼 화창했다.

아우슈비츠 1 수용소는 주로 노동, 생체실험 등이 행해진 곳이었다.

그곳엔 희생자들의 수많은 신발, 가방, 옷, 사진들이 있었다. 교과서와 영화, 책에서 항상 보고 공부해 왔던 일이었지만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던 공간에서 그들의 삶을 보고 듣고 느끼니 마치 처음 그 비극을 안 것 마냥 충격을 받았다.

화가 났다가 슬퍼졌다가 놀랐다가 숭고해지는 정말 다양한 감정이 날 이리저리 흔들었다.

실제 대량 학살이 이루어졌던 아우슈비츠 2 수용소로 향하는 길, 벌써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그 노을이 참 예뻤다. 끔찍한 학살이 일어나던 그때도 똑같은 해가 뜨고 똑같은 해가 지고 지금 같은 노을이 하늘을 적시고 있었겠지 생각하니 괜히 하늘이 미워졌다.

그렇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모두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 동그란 달 하나가 떠있었다.

내 기억에 오랫동안 간직될 오늘의 장면들이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내가 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세상이 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게끔 할 거라는 희망이 떠있었다.


#Scene5

함께한 순간들

크라쿠프 여행에서 친구가 없었다면 춥고 비가 오는 날씨가 배경인 장면들이 이렇게 따듯하게 기억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 크라쿠프 여행 엔딩 장면엔

밥 먹고 수다 떨며 비 오는 공원을 걸었던 순간

커피를 마시며, 보드카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순간

초콜릿 먹으며 지연된 열차에 함께 짜증 내던 순간까지

함께여서 특별했던, 함께여서 따듯했던 크라쿠프의 모든 장면들이 올라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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