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 영원한 건 없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 내가 하는 생각이나 말을 보면 딱 그렇다.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지가 어느새 8년이라는 시간에 가까워지면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서 '저 인간은 왜 저럴까? 저 사람의 진단명은 뭘까?' 하고 질문한다.
마치 직업병이라도 된 것처럼 어딜 가든지 이제는 입만 열면 "그거 무슨무슨 성격장애 유형이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이제는 주변에서도 나를 상담 전문가로 여긴다. 너는 그런 거 잘 알잖아, 그 사람은 어떤 심리로 나한테 이러는 거 같아? 하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본래 말도 많고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촉새라 그런 질문들은 환영이다. 곧장 내 일처럼 심각하게 고민하며 진지하게 답해준다. 내 대답이 맞는지 틀린 지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내 나름의 해석을 들으며 "어머, 맞아 맞아" 하고 맞장구치는 지인의 목소리가 어찌 그리 듣기 좋은지. 사실 나는 아직 전문가 흉내나 내는 앵무새일 뿐이다. 흉내를 잘 내서 주인의 칭찬과 간식을 얻어먹는 것으로 충분히 족한 반려앵무새.
최근 지인들로부터 대화 중 "넌 참 이해심이 넓고 깊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상담을 전공한다고 하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겠구나, 생각하는 것도 있겠지만 원래부터 사람에 대한 이해력이 특출 난 사람이 상담을 전공한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나는 외려 이 공부를 하면서 사람이 좀 싫어지기 시작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전에는 잘 몰라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모습들이 이제는 뭔지 빤히 보이니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원효대사가 한밤 중에 해골물을 마셨다가 아침에 눈을 뜨고 경악한 꼴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통찰이 깊어지면서 갈수록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명확히 느낀다. 그러다보니 이전에는 내 기호와는 상관없는 중립적 개념인 개인차이로 생각되던 타인의 특성이나 습성이 주관적인 입장에서 감당"해주기" 어려운 미운 꼴로 여겨지는 때가 많다.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이런 나의 심경 변화가 조금 안타깝다. 앞으로 이 공부를 해서 벌어먹고 살려면 전처럼 아무런 편견이나 가치판단 없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조망하는 태도에 익숙해져야만 하는데, 어째 나는 점점 더 예민하고 편협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내 평판을 꽤 신경쓰는 인간이라서 아무데서나 호불호를 남발하고 다니진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만약에 내가 느낀 대로 누구는 이래서 싫고, 저래서 밉고, 그래서 불쾌하다고 판단하는 말을 지껄이고 다녔다면 어땠을까?당연히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결과를 맞이했을 거다. 그야말로 인간관계의 파국.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인성 파탄, 나르시시스트, 성격이상자로 평가를 받으며 외로워진 인생에 한탄을 하거나 더욱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며 살게 되었을 거다. 그렇다고 이러한 파국적인 결말이 두려워 사리느라고 위선 떨며 남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다닌 건 절대로 아니다. 나는 진정성과 양심 두 가지를 가진 인간이라 뭐든 적당히 입은 털었다.
인간에 대한 공부를 하면 누군가를 평가하고 그가 앞으로 할 행동들을 예상하는 일을 늘상 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대부분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고, 솔직히 그런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게는 희망이 거의 없고 절망과 파멸, 추락이라는 단어들만이 현재 인간들에게 남아 우리를 가장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누가 싫어지기 시작하면 곧장 "너 싫음"이라고 도장 찍지는 않는다. 거기서 풀악셀 대신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질문한다. "왜 그 사람이 싫어? 정말로 싫은 게 맞아? 어떤 게 그렇게 싫었는데?" 그리고 하나 더. "너는 그럼 얼마나 잘났는데?" 이렇게 되면 그 누군가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에 제동이 걸리고 의문에 곁가지가 자라난다. "그러게? 뭐가 그렇게 싫었지? 진짜로 그것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 게 맞나?나는 그럼 그 사람에게 얼마나 최선을 다해 잘해줬었나?" 이런 식으로 상대방과 내가 서로 구분할 것 없이 똑같이 구린내 풍기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되면 겸손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샘솟고, 다시 그와 좋았던 추억 같은 것이 떠오른다. 맞아, 걔랑 그때 그렇게 즐거웠는데. 근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더라?
사람이 부침개라면 앞뒤만 보고 판단하면 그만일 텐데 이게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그때는 맞았는데 지금은 틀리다고 하나보다. 또 나중에 가선 다시 맞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도(영원히?) 종결된 몇몇 인간관계가 있다. 그중 몇 가지 관계들이 끝나버린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후회가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끝맺음에 미련을 남기는 관계들을 생각할 때 가장 아쉬운 건 내가 너무나 성급하게 끝을 내버렸다는 거다. 그를 두고서 단 한 번도 질문한 적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두세 번 정도 그 관계에 드는 나의 감정에 의문을 가져보고서 잘라낸 인간관계에 대해선 전혀 미련이 없다. 그만큼 나 스스로 여러 번 검토 과정을 거쳤고 그 관계가 최종 점검에서 통과를 못 했다는 소리다.
갈수록 외로운 세상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나를 가엾게 생각해 주고 애틋하게 돌봐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마음이 뜨끈해진다. 그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개중 몇몇은 내가 몇 년 전, 혹은 몇 달 전에는 좀 미워했다. 왜 저래? 하면서 속으로 경멸도 했다. 그때는 다 이유가 있었으므로 이해해 주면 좋겠지만 그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입은 열지 않겠다.
더 나이가 들어서 한 30년 정도 지나서 "사실은 그때~" 하고 고백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가서 털어놓게 된다면 아마 나는 미안하다고 할 거다. 그렇게 미워하고 꼴 보기 싫어해서 미안하다고, 너는 나를 스쳐 지나간 그저 그런 사람들하고는 다른데, 분명히 나도 너에게 흉측하고 역겨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에게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인간관계에 경솔하게 이름 붙여버리는 순간 그 자체만으로도 괜찮았던 것이 괜찮지 않은 게 된다는 걸 알았다. 눈을 깜빡이고 침을 삼키는 행동이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이 문장을 쓰고 읽는 순간 별 것 같은 행위가 되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향한 나의 생각과 감정은 다 이유가 있어서 등장한다. 그걸 보고 맞다, 틀리다 재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감정이 오랫동안 변치 않고 지속될 것이라고 여기는 건 큰 실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들이 일시적으로 머물다가 사라질 것 같은지, 아니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서 나의 밤잠을 설치게 할 것 같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건지는 그다음에 결정해도 전혀 늦지 않다.
아마 나도 누군가에게 잘려져 나간 인간 중 하나일 거다. "아! 걔 안 보니까 속이 후련하다!"라는 외침이 나올 정도의 끔찍한 인간은 아니었기를 바란다. 살다가 가끔씩 드문 드문 생각이 나서 "그래도 걔랑은 참 재미있었는데." 하고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다가 이것만큼 큰 기대와 욕심도 없겠구나 싶다. 하지만 욕심난다, 그 자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