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메스칼은 눈여겨보고 있던 배우였다. 이 배우를 처음 본 건 아일랜드 드라마 <노멀 피플>이었다. 미드도 영드도 아니고 뜬금 없이 왠 '아드'를 보게 됐던가. 그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기억난다. 그 드라마 속 폴 메스칼을 보고 '이런 연기를 하는 이 남자는 누구지' 분명하게 주목했던 것. 전형적인 미남형도 아닌, (정말 '아드'라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어딘지 시골스럽고 우직스럽게 생긴 사실적 외모의 남배우가 20대 청춘의 사랑을 어쩜 그렇게 내 속을 다 까뒤집어 본 마냥 사실적으로 그려내는지. <노멀 피플>에 대한 단상은 그래서 '달달하게 가공되지 않은, 옛날 내가 그대로 떠올라 마음이 아픈' 드라마였다. 이후 영화 <애프터 썬>을 봤고, 또 마음이 아팠다. 앙다문 입으로 적은 양의 대사를 처리하는 이 배우는 말을 아껴 쓰고 혼자 쓸쓸함을 견디는 부류의 인간에 거의 빙의한 듯 싶은 연기를 했다.
그런 폴 메스칼이 리들리 스콧의 전설 중 하나 <글래디에이터 2>를 맡았다. 그 옛날 바로 그 글래디에이터에 대한 추억이 있진 않아서 굳이 보러 갈 생각이 없었건만 주연이 폴 메스칼인 것에 마음이 동했다. 회색 도시의 도회적 외로움을 연기하던 섬세한 -물론 그의 외양은 여리핏이 아니지만- 그가, 우악스럽고 단순명쾌한 칼질과 선악의 향연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이제 잡식성으로 온갖 영화를 게걸스럽게 보던 때는 지나보냈다. 그래서 어쩌다 겨우 한 편씩 보는 영화의 선택 기준은 이 영화가 궁금하냐, 로 수렴된다. 그런 의미에서 폴 메스칼의 글래디에이터는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리하여 리들리 스콧의 또 한 번의 연출이나 글래디에이터라는 IP의 충실한 복각은 차치하고, 주연 배우 폴 메스칼 위주로만 영화를 감상했다. 그리고 공히 글래디에이터에서도 폴 메스칼은 (가능한 최대치의) 자기 연기를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글래디에이터는 누구의 것과도 달랐으니 말이다. 눈빛에서 정의로움이 뚝뚝 떨어지는 러셀 크로의 것과도, 대사와 행동에 풍부한 감정이 묻어나는 페드로 파스칼의 것과도 달랐다. 폴 메스칼의 루시우스는 내면에 차오른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인물인데, 보통의 인물 (연기)들은 여기서 그치지만 그는 억누른 분노를 소화하고 승화시켜 또 다른 무언가로 치환해내는 인물이었다. 멜로와 드라마 연기를 하던 폴 메스칼이 과연 어떤 글래디에이터를 소화해낼까 싶었는데, 장르가 다른 작품에 그의 장기를 대입하니 오히려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진작에 이를 노리고 이 작품을 택한 거라면 1996년생 폴 메스칼은 타고난 천재. 그 탁월한 동물적 감각이 부럽도다 부러워. 이 글을 쓰려고 잠시 배우의 철자를 검색했다가, 이 배우의 나이와 더불어 <노멀 피플>이 무려 데뷔작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자기만의 뚜렷한 연기 색을 지녔고 이를 주관있게 가져갈 줄도 아는 배우의 수많은 미래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아니 사실 많은 도전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폴 메스칼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역할과 눈빛들을 더 많이 보여주기만 해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