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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레인디어>의 감독은 결국 자기혐오를 떨쳐냈을까

(스포 전혀 없는 결말 분석 있음)

by sooowhat Feb 09. 2025

2024년 넷플릭스에서 화제였다는 영국 드라마 <베이비 레인디어>를 뒤늦게 봤다. 사실 그동안 넷플릭스에서 뭐 볼지 찾는답시고 무한 스크롤할 때 여러 번 눈에 띄었던 작품이긴 하다. 하지만 딱히 볼 생각을 안 했던 건 장르나 분위기가 짐작되지 않는 제목과 포스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어디서 '놓칠 수 없는 넷플 명작' 같은 리스트를 봤는데 댓글에 이 드라마가 많이 호명되길래 이번 참에 보게 되었다. 과연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드라마였다. 아기 순록이라는 귀여운 제목에, 푸근한 고도비만 여주인공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내건 포스터로는 이 이야기의 향방을 단 한 끗도 예측할 수 없다. 대체 왜 이토록 힌트가 없는 (아니, 힌트 주기를 거부한) 제목과 포스터였던 걸까. 직관적으로 잘 빠진 '넷플 드라마'는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듯 심리묘사도 복잡다단하다. 이 이야기가 감독이자 남자 주연배우인 리처드 개드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으니. 자기 이야기여서 더더욱 간단한 언어로 치환할 수 없었겠구나 싶었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작중 여자 스토커 마사가 스토킹 대상인 남자 도니를 부르는 '애칭'이다. (시청 전 포스터를 보고 어찌 짐작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가해자가 '베이비 레인디어'를 음성으로 텍스트로 말할 때마다 약간 역한 혐오감이 올라오는데..정작 이 드라마는 위에 말했듯 넷플 드라마적 공식인 '권선징악', '정의 구현', '악인 고발'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있다. 넷플스럽게 가고자 했다면, 크게 1.교묘하고 심리게임적인 스토킹 수법의 재연으로 분노 레벨을 쌓아올리고 2.스토커의 비밀을 파헤쳐서 우위를 점한 뒤에 3.통쾌하게 스토커를 응징해 최종 도파민을 콸콸 분출시켜야 할 터. 하지만 <베이비 레인디어>는 이 3가지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대신 스토킹 피해자인 도니의 심리 변화에 거의 모든 스토리텔링을 할애한다.


악랄한 스토킹 범죄로 매일 고통받는 피해자에게 무슨 심리 변화가 있을 수 있는지, 내지는 그의 심리 변화에 집중하는 게 오히려 선악의 경계를 흐리진 않을지 의아해질 만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도니는 단지 스토킹 자체로만 고통받는 게 아니라, 스토킹을 겪으며 알아차린 자기 안의 모순 때문에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니의 자기혐오가 없었다면 드라마는 단순한 스토커 추격 스릴러물에 그쳤을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우리는 스토킹과 가스라이팅을 내포한 관계가 얼마나 인간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치명상을 입히는 파괴적 관계인지 체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단연코 유쾌 통쾌한 드라마는 아니다. 심지어 중간중간 불쾌감을 증폭시키는 특정 에피소드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 어딘가 묘하게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내 안에도 자리하고 있는 익숙한 자기혐오가 호출되어서일까. 자책과 연민과 혐오의 사이클을 무한 반복하는 도니의 어리석음이, 언제인가 감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에도 일말의 면죄부를 주는 듯해서일까. 나의 내밀한 마음이 밖으로 호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수치심 대신 동질감이 느껴지는 건, 이 작품의 연출이 그만큼 섬세했다는 뜻이다.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피해자를 탓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은 채 드라마는 똑바로 자기 갈 길을 간다. 때로는 가해자를 무참히 응징해주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보다, 당신의 혼란도 여기로부터 기인했음을 지그시 보여주는 '인식의 과정'이 더 깊이, 더 오래 가는 위안을 준다는 걸 새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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