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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곳 Nov 20. 2019

엄마의 주문

그녀가 주문을 외우면 인생이 달라진다

서른이 된 다 큰 딸을 품에 안고 엄마가 해준 마법의 주문 같은 말이 있다. 

“네가 1순위고 네가 제일 소중해”

내가 10살에도 20살에도 30살에도 엄마는 언제나 내게 이 말을 해주곤 했다.

내 인생에 순위를 매긴다면 1순위는 가족도 친구도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있어야 가족도 친구도 내 삶도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무엇이든 1순위로 생각을 한들 내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거라고 엄마는 습관처럼 말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자신감은 낮아도 자존감은 높은 사람이 되었고 

친구도 가족도 아닌 내가 1위라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 

몹쓸 구남친을 만나 을의 연애를 하던 중에도 문득 엄마의 말을 떠올리고 바짝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너보다 내가 더 소중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당당히 이별을 고한 뒤 다시 내가 우선인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마인드로 살아가니 그동안 만났던 구남친들의 새벽 2시 ‘자니’ 연락을 90% 받을 수 있었고 어떠한 흔들림 없이 여유 있게 대응할 능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회사일로 속상한 날에도 친구와 다툰 날에도 엄마의 조언은 내 생각을 바꿔놓는 큰 계기가 되었고 그 말은 어떤 자기개발서보다 강력했고 진지했다.      


물론 내가 1위라 생각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자존감만큼 내 용기가 크지 않았기에 당당하게 내질러야 하는 상황에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치고 더 힘든 시기를 보냈던 적도 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또 다른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잘 될 거야. 좋은 시기가 찾아올 거야’  

이런 말이 내 마음에 씨를 틔운 걸까 

매년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한 살 더 먹는 게 무섭고 싫다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매번 ‘다음 달이 기다려지고 내년은 더 행복할 거 같아’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힘든 하루하루가 상처고 흉이라 생각될 때 앞으로 다가올 날은 

마치 내 상처를 감싸줄 밴드나 연고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죽을 것만 같은 이 시기도 끝이 있고 그 뒤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날 기다릴 거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시간이 지나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힘들었던 과거와 잠도 못 이룰 정도의 고민도 모두 사라진 뒤였다. 뭐 때문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모두 엄마가 나에게 해준 말들이 준 힘이었다. 

엄마도 그러한 생각들로 견뎠고 지금의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악덕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견뎌낸 며느리, 약 40년의 직장생활을 한 사회인, 

30대가 돼도 철없는 두 딸의 엄마, 세상 물정 모르는 고집불통 남편의 아내로 살았고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한다. 집이 너무 힘든 시절에는 머리조차 빗을 시간이 없어 늘 짧은 머리를 유지했고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주머니에 다 식은 떡과 밥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의 인생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던 엄마. 

그렇게 몸으로 부딪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딸에게 물려준 것이기에 더 의미 있고 값진 조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1순위고 내가 제일 소중한 삶,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삶. 

그런 삶을 살면서 훗날에 나의 자식에게도 같은 말을 하며 “이것 너의 할머니의 조언이란다. 엄마는 이 말 한마디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어.”라는 말을 함께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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