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의 거리는 수많은 언어들로 그득하다. 자취방을 나와 학교 근처 거리를 걷다 보면 내가 지금 어느 나라에 와 있는 건지 잠시 생각하게 된다. 3년에 가까운 오랜 시간 동안 머물고 있는 곳이지만 가끔은 낯설게 느껴진다.
테누를 만난 건 2년여 전 즈음이었다. 원래 이름은 ‘언테누’이지만 내 맘대로 줄여 불렀다. 그 애는 자기 이름이 레인보우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름이 무지개라니, 시시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나에겐 꽤나 낭만적으로 들렸다. 우리는 긴 겨울을 지나 포근한 봄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산 위에서 서로를 처음 봤다. 황산은 자취방에서 가기에 접근성이 좋은 유일한 산이라 가끔 운동을 하러 가곤 했다. 날씨가 좋으면 저 멀리 서해대교와 아산 시내까지 조망할 수 있기에 사람들이 꽤 자주 오고 갈 것 같았지만 내가 갈 때마다 사람이라곤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정상에 있는 데크에 한 조그만 여자애가 털버덕 앉아 있었다. 한마디 말이라도 건네면 소스라치게 놀랄 것처럼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어 보였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데크의 구석진 왼편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의 범위에 들어오자 그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전혀 한국인 같지 않은 외모에서 나오는 매우 한국인스러운 억양의 인사말을 들으니 1초간 생각이 멈췄다가 이내 나는 곧바로 똑같은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멋쩍은 인사를 한 뒤 그의 모습을 빠르게 살폈다. 그 애는 살짝 긴 듯한 생머리에 등산을 온 건지 근처 공원에 산책을 하러 온 건지 모를 정도로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곧장 그에게서 시선을 뗀 뒤 방을 나서기 전에 미리 전자레인지에 돌린 편의점 김밥을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같이 먹을래요?”
“아, 감사합니다.”
괜찮다고 할 줄 알았는데 순순히 감사의 말을 전하는 모습에 잠깐 당황을 했다가 곧바로 그의 옆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우리는 다 식어버린 김밥을 우물우물 씹으며 서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테누는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재잘거렸고, 나도 그에게 궁금한 것이 한가득이었다.
테누는 캄보디아에서 온 16살 중학생이었다. 부모님이 모두 한국에서 일을 하게 돼서 2년 전쯤부터 여기서 살았다고 했다. 어쩐지 한국어가 제법 능숙하더니만, 드센 한국 중학생들과 몇 년째 부대끼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마침 그 중학교는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은 아침 일찍부터 나가 일을 하신다 그랬는데, 내가 가끔 새벽에 학교 운동장에서 러닝을 하고 돌아오면 도로에 보이던 커다란 통근 버스 앞에서 줄을 서고 있는 외국인들 중에 그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 가족은 이번 가을 즈음에 날씨가 다시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캄보디아로 돌아간다고 했다.
오랜만에 낯선 이와 새로운 이야기를 하니 시간이 금세 지나, 산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해서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테누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꽤나 흥미로웠던 터라 그와 또 한 번 만났으면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몇 주 새에 가장 만만한 황산을 더불어 산책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인 신정호까지 여러 번 같이 가게 되었다. 테누는 중학교에 다니는 몸집이 작은 여학생이었지만 씩씩했고 당돌했으며 동시에 차분했다. 혼자 산책하고, 산을 오르고, 거리를 걸으며 여러 생각을 머릿속에서 한없이 끄집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랬는데, 그래도 나를 계속 만나주는 걸 보니 나와 함께한 시간들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누군가와 나란히 걷는다는 것이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친누나와 함께 또 다른 여자 형제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았다.
햇볕이 유난히 따뜻했던 어느 토요일의 신정호에서 우리는 노란 산수유가 몽글몽글 맺혀있는 거리를 걷다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용돈을 받는 족족 끼니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껴가며 돈을 모아 최대한 한국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가던 사람이었고 테누는 먼 나라 한국에까지 와서 제대로 된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테누가 캄보디아로 돌아가기 전 한국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찬란한 기억이었으면 했다. 그러기 위해선 여행이 제격이었다. 나는 곧바로 아산 근처의 여행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일에 돌아와야 했기에 너무 멀지 않지만 제대로 된 여행 느낌은 날 수 있게 너무 가깝지는 않은 곳이어야만 했다. 머릿속으로 우리나라 지도를 빠르게 훑어보던 중 순간 전주가 떠올랐다. 엄마의 고향이라 나에게 꽤 익숙했던 곳이자 한국적인 분위기까지 물씬 느낄 수 있는 도시였다. 여행지를 결정하자마자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여행을 빠르게 추진했다. 나는 5월의 따스한 햇빛을 받아 난연히 빛나는 신정호가 내다보이는 나무다리 위에 선 채로 전주행 왕복 버스표 2장을 구매했다. 시간은 돌아오는 토요일, 목표는 테누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바로 여행 일정을 세우기 시작했다. 평소 내 여행 스타일대로였으면 갈 곳을 큼직하게만 정해놓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장소를 변경했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여행 시간은 단 하루였고, 그 상대는 한국에 2년 넘게 살았지만 한국 여행이라곤 해보지 못한 외국에서 온 중학생 소녀였으며, 마침 나는 그에게 완벽한 여행을 선사하고 싶어 안달 난 상태였다.
나는 곧바로 커다란 공책을 꺼내서 출발 시간부터 아산으로 돌아오는 시간까지의 계획을 세세하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광대하던 하얀색 백지 한 장을 진하게 눌러쓴 흑연으로 전부 시꺼멓게 덮고 나서야 손에서 연필을 놓을 수 있었다.
우리의 여행은 새벽 6시부터 시작됐다. 신창역에서 천안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천안역에서 천안 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마지막으로 천안 터미널에서 전주 터미널까지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푸르스름한 새벽이었지만 테누의 얼굴에는 졸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나 엄청 설레.”
테누는 정말 설렌다는 듯이 크고 까만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지하철과 택시와 버스는 도합 세 시간에 걸쳐 우리를 전주에 데려다 놓았다. 세 시간만큼 남쪽으로 내려와서인지 조금 더운 기분이었다. 우린 바로 풍남문으로 향했다. 테누는 처음 보는 형태의 건축물에 흥이 났는지 풍남문 주변을 빨빨거리며 사진을 찍어댔다. 나는 자주 왔던 전주임에도 여행지라곤 한옥마을밖에 가보지 못한 터라 덩달아 신이 났다. 풍남문을 지나 다음 코스인 경기전으로 걸어가면서 우리는 금세 배가 고파져, 기와로 잔뜩 덮인 돌담 바로 앞에 위치한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한국 음식에 꽤 익숙해져 있던 테누는 각종 나물이 듬뿍 들어간 음식을 다행히 맛있게 먹어주었다.
한옥마을과 맞닿은 경기전 앞의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있었다.
“너도 저 옷 입을래?”
“음 아니, 불편할 것 같아. 우리 오늘 많이 걸어야 하잖아!”
테누는 오늘 온종일 많은 곳을 돌아봐야 하는 것을 알았는지 불편한 아름다움을 마다하였다. 우리는 생각보다 넓었던 경기전 내부를 천천히 걸어 다녔다. 으레 중학생의 나이라면 누구라도 재미없어할 만한 장소였지만 테누는 이곳이 너무 좋다고 했다. 나는 테누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그의 뒤에서 거리를 두고 걸었다. 혹시 길을 잃을까 해서 테누가 내 시야에 들어오는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갔다. 테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느리게 걷다가 이내 걸음을 멈추고 육백 년 된 건축물의 일부분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살피다가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주었다.
경기전은 아름다웠고 우리의 산책은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이후에도 수많은 장소를 돌아다녔다. 한옥마을에서 입천장이 다 데일만큼 뜨거운 고로케와 전주에 오면 꼭 들른다는 한 빵집의 과하게 달달한 초코파이를 한입 물고는 한옥과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를 걸었다.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파질 때쯤엔 한옥으로 지어진 고즈넉한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사람 구경을 했다. 나는 한옥에 둘러싸여 괜스레 커피 대신 시켜본 국화차를 홀짝이며 물었다.
“오늘 여행 어땠어?”
“너무 좋았어. 그냥.. 좋았어.”
좋음에 대해 어떻게 한국어로 설명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듯이 테누의 입술이 옴짝옴짝했다. 하지만 나는 테누가 말한 ‘그냥’이란 말에 그가 느낀 감정을 왠지 전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해가 떨어져 갈 때쯤에 길거리에 있던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의 진열대 위에는 전주를 닮은 물건들이 한가득이었다. 테누는 거기 있던 장신구들 중 형형색색의 매끈거리는 비녀가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손에 들었다 놨다 했다. 가게 사장님은 그런 테누를 보고 한번 착용해보라고 권했다. 그리곤 그를 거울 앞에 데려다 앉힌 뒤 비녀를 어떻게 머리에 고정시켜야 하는지 세세하게 알려주면서 나에게 자기 말을 통역해달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테누는 한국말을 나보다 잘한다고 했다. 둥글게 말아 올린 머리를 화려한 비녀로 고정시킨 테누의 모습은 제법 잘 어울렸다. 비녀는 삼만 원 정도 했고, 돈이 궁한 대학생에겐 꽤 큰돈이었지만 나는 테누에게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기념 같은 선물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테누는 너무 비싸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나는 괜찮다며 나 돈 많다며 거짓말로 계속 테누를 설득했지만 테누는 단호했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테누와 아산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날 전주에서의 짧았던 산책을 이후로 테누가 캄보디아로 돌아갈 때까지 서로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시험 기간이 겹쳐서, 친구와의 약속이 생겨서, 그냥 그렇게 살다 보니 이러저러한 이유로 만날 수 없었다. 늦은 저녁 아산에 돌아와 테누가 전했던 짧은 작별 인사와 피곤해 보이지만 어딘가 행복으로 가득 차 있던 얼굴이 테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러나 테누의 기억 속에도, 나의 기억 속에도 우리의 봄 산책은 서로에게 각기 다른 모양으로 영영 빛날 것임은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