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부존재에 반대함

<프로젝트 헤일메리>(2026)

by 수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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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메리’는 미식 축구 등에서 역전을 노리고 마지막에 시도하는 ‘한방’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스트로파지가 지구에 도달해 태양에너지를 일부 흡수한다. 기후변화로 모두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서로 힘을 합친다. 인류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 우주선을 건조해 외계로 보낸다. 헤일메리 프로젝트 팀장은 “희박한 확률이지만, 아무것도 안해도 수십년 내로 모두가 죽으니까 그냥 지금 먼저 도전해보는 게 낫다”고 말한다. 적어도 경기가 지속되는 동안이라면, 마지막 슛 하나라도 던져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가능성도 창출되지 않으니 말이다. 팀장의 이 말에서 생각해볼 건 경기시간과 슛의 상관관계다. 규정에 따르면 경기의 지속은 선수들 간에 공을 패스하는 게 허용되는 시간으로 정의된다. 이에 따라 같은 공을 계속해서 점유하는 행위는 흐름을 저해하는 것으로 규정돼 ‘반칙’처리 된다. 농구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공을 넘겨야 하며 주변에 아군이 없으면 상대팀에게라도 줘야 한다. 이 게임규칙은 과학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서, 에너지 흐름이 아예 멈춰버린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너지는 계속해서 어느 한쪽으로 흘러야만 하며 이것이 멈출 때 우리는 ‘시간이 죽었다’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경기가 끝나버린 셈이다.


이 생각이 흥미로운 건 <헤일메리>가 큰 틀에서 볼 때 열역학을 다루기 때문이다. 열역학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 총량은 유지되지만 이들 간에는 항상 어떤 형태로의 ‘이동’이 벌어져야 한다. 에너지가 이동하지 않는다는 건, 위에서 말했듯이 아무런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에너지의 흐름이 관측되지 않으면 애초에 제로가 아니라 부존재로 취급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열역학은 항상 어떠한 경계에 서는 일을 중요시하는데, 관찰자가 관측 가능한 영역을 일정한 경계로 나누어 안과 밖을 구분할 때, 여기서 에너지의 순환을 선언하는 일이 바로 ‘심판’으로서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은 그 에너지의 방향에는 따로 지향성이 없다는 점에 있다. 에너지는 안에서 밖으로도 갈 수 있고, 밖에서 안으로도 갈 수 있다. 대개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외부와의 열 교환이 차단된 폐쇄계에 압력이 가해지면 내부 에너지가 일방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 이를 ‘단열 압축’이라 부른다. 열에너지의 직접적인 교환 없이도, 한계 지어진 공간 내의 압축 과정이 계 내부의 에너지를 비례하여 증폭시키는 원리다. 그리고 이 사실은 작중에서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그레이스와 로키가 서로 소통하며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과 닮아있다. 동일한 위기에 대응하는 두 존재는 인간이 나아갈 수 있는 경계에 선다. 이곳에서 그들은 아직 이 세계에 서로와 나눌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문명의 파괴와 종말은 소위 말해 ‘대안’은 없다는 말로 설명되곤 했다. 이를 위해 작중의 인류는 남극의 얼음을 녹여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고, (아스트로파지 번식을 위해) 사하라 사막 전체에 태양열 포집판을 깔아 열에너지의 흐름을 바꾸는 등 여러 형태의 ‘대안’을 수행한다. 궁극적으로 지구 멸망에 해법이 없으니 이런 것도 ‘멸망’에 대한 한 가지 대안이 된다. 적어도 아무런 가능성도 보지 못한 채 내부에만 갇혀있는 것보다는 낫다. 이런 상황에서 헤일메리 프로젝트에 차출된 주인공은 내내 실패자로서의 정서에 빠져있다. 애초에 시작부터 학계의 왕따를 자청하던 그는 헤일메리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유일하고 ‘독창적인’ 이론을 거부당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우주선에 오른 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실험 중 사고로 사망한 이들을 대체한 것에 불과했다. 뒤늦게 그는 자신이 프로젝트 팀장의 눈을 피해 도망가려다 붙잡혀 기억상실 상태로 우주선에 실린 걸 깨닫는다. 사태가 이렇게 되면, 우주선 안에서도 모든 걸 다 포기해버리고 싶을 법한데 ‘별수 없다’면서 차분히 임무를 수행한다. 이는 자신의 내면에 갇힌 사람이 중력이 자유로운 외부 환경에서 그만큼 마음의 이동을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희망이 부존재하는 지구행성보다는 그나마 더 ‘존재’하는 인간이 되었다고나 할까. 우주선의 한계가 곧 압력이 되어, 더 큰 힘을 탄생시킨 셈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그레이스는 창밖을 내다보는 것으로 이곳이 우주임을 알아챈다. 이후로도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기억을 되찾지만, 그렇게 되찾은 기억이 정말로 자신의 것인지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평소 자신을 알던 다른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없을뿐더러, 고립계에 있는 이 기억은 총량이 증가하기만 할 뿐 감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지구에서는 자신을 보여 줄 방법이 없어 서서히 죽어가는 쪽이었다면, 우주에서 그는 자신이 아닌 것을 찾아야만 한다. 적어도 우주선 안에서는 그 모두가 자신의 기억 안에 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안과 밖을 구분해야 하며, 새는 곳이 있으면 곧바로 틀어막아야 한다. 이후 그레이스는 로키를 만난다. 강한 압력으로 고립계를 지닌 생명체 ‘로키’와 비교적 낮은 중력과 밀도에서 탄생한 유기 생명체 인간은 서로의 환경에서 살 수 없다. 그래서 로키 쪽이 항상 제노나이트로 형성한 요람 안에 있다. 두 존재는 서로가 많이 다르다는 걸 알지만, 비슷한 상황과 처지에 놓였다는 점을 알고서 마음을 나눈다. 비록 아스트로파지가 한 세계를 점점 가둬 놓을지라도, 이 세계가 맞이하는 건 거대한 실패가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부재에 그친다. 어쩌면 두 사람은 자신이 떠나온 행성의 모두가 아니라 그저 자신을 말하고 싶었을 뿐일 수 있다. 사실 이 임무 수행은 ‘나’로서의 ‘너’를 인정하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종목은 다르지만 농구에는 ‘버저 비터’라는 용어가 있다. 버저 비터는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던진 공이 골대에 들어가는 것, ‘공이 날아가는 도중에 부저음이 울린 상황’을 가리킨다. 그 말인즉 이 게임에서는 시간이 지속하는 만큼 공을 다룰 수 있고, 한번 힘이 가해진 이후의 상황은 그런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너지가 이동하는 순간만을 시간이라고 본다고나 할까. 이 논리를 따르면 임무를 성공한 이후에는 지구로 돌아올 수 없으니까 사실상 거기서 시간이 끝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로키는 자신의 종족에게는 상대가 잠에 들었을 때 곁에서 이를 지켜주는 게 하나의 관습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만약 잠이 하나의 거대한 죽음이라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 상태로서의 ‘잠’은 자신이 의식하지 않는 세계의 한 면이다. 그래서 로키는 임무가 끝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 이후, 그레이스에게 동료가 잠든 동안에 지켜보아 주는 것이 관습이기에 자신 또한 기꺼이 임무를 위해 연료원을 나눌 것이라고 답한다. 정말로 잘 몰라서 그렇게 말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수행하는 관측은 한 경기의 끝을 결정하는 힘이 있다. 그걸 더는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느끼더라도 여전히 관측을 지속해야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애초에 그레이스가 소통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따금 우리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 속절없이 닥쳐오는 불행 등을 느낄 때가 있다. 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 없어서, 그냥 뭔가 나쁜 일을 했으니까 그만한 업보가 돌아오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이 일에 관해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면 그 세계는 고립계로서 ‘죽은 것’에 다름없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령 작품에서 그레이스가 발견하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아스트로파지가 잠식하지 않은 외계행성을 관찰하던 그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행성 내외를 오가는 아스트로파지의 총량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아스트로파지는 태양열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 생식하는데, 그 에너지원을 찾아간 행성 안에서 아무런 증식도 이루어지지 않던 것이다. 이유를 알아내기만 하면 이곳에 시간은 다시 흐를 수 있다. 멈춰가던 시간들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자신이 알던 바깥을 종말에서 꺼내올 수 있다. 이를 위해 행성에 접근해 임무를 수행하던 그레이스는 뜻밖의 위기를 겪는다. 그리고 로키는 자신을 보호하던 막을 찢고 나와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그를 구한다. 이 상황이 흥미로운 건 열역학에서 중요한 게 바로 경계에 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막을 찢는다는 건 대안을 찾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건 바로, 경계의 부존재(null)에 반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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