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시작하는 행위는 항상 설렘과 망설임을 동반하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부박했지만, 남겨진 것은 나의 누추함뿐인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너와 함께 걷던 길은 보이지 않고, 분홍빛 꽃잎만이 짙게 깔려있을 뿐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4월은 그렇게 끝이 난다. 나의 망설임도, 너의 설렘과 함께. 애니메이션의 제목이 <4월은 너의 거짓말>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작품의 시작과 함께 교복을 입고 검은 고양이를 따라가는 소녀가 보인다. 그리고 피아노를 치던 어린 “코세이”의 모습이 보이고, 중학생이 된 코세이의 모습을 연이어 보여준다. 과거에는 피아노의 천재라고 불렸던 코세이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피아노를 그만둔 상태다. 어렸을 때부터 해오던 피아노를 그만두었지만 소꿉친구 “츠바키”와 함께하는 일상은 평화롭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츠바키는 같은 동아리의 남자아이 “료타”를 소개해달라는 같은 반 여자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고, 코세이에게 같이 갈 것을 권유한다.
코세이는 친구와의 약속장소인 놀이터에서 멜로디언을 연주하던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에게 첫눈에 반한 코세이는 무심결에 사진을 찍다 오해를 사게 되고, 츠바키로부터 그 소녀가 료타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던 “카오리”였음을 알게 된다. 친구들과 함께 카오리를 따라간 곳은 바이올린 연주가 한창인 대회장이다. 무대 위에 선 카오리는 악보의 형식을 벗어나 제멋대로인 연주를 하고, 코세이는 연주에 감탄하면서도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리며 불편해한다.
코세이의 부모님은 자신이 꿈꾸던 피아니스트의 재능이 코세이에게 있음을 확신하고 코세이의 꿈을 지지해준다. 그러나 병이 깊어지며 죽음에 대한 공포와 꿈에 대한 열망이 간절해진다. 동시에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들을 걱정한 나머지 혹독하고 거칠게 연습을 시킨다. 그것이 코세이의 트라우마가 된다. 자신의 꿈이 부모님의 꿈으로 치환되고, 감성적이던 피아노의 선율은 마음을 잃고 메트로놈처럼 박자만을 추구하게 된다. 이성만을 고뇌하게 된다.
다음 날, 하굣길에 우연히 카오리와 단둘이 있게 된 코세이는 데이트를 하게 된다. 식사하며 즐겁게 지내던 중 두 사람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식당에 있던 피아노를 아이들이 치는 소리다. 카오리는 아이들에게 연주되는 피아노의 모습을 행복하다고 표현하지만, 코세이는 불행하다고 말한다. 피아노가 습기에 취약하다는 것을 들어 위에 올려진 화분을 지적한다. 두 사람의 가치관의 차이는 피아노를 통해 드러난다.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의 차이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인간 메트로놈과 악보를 벗어난 선율의 차이다.
좁은 식당을 벗어난 넓은 공원에서도 두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다. 같은 검은 고양이를 보며 코세이는 학대받던 과거를 떠올리지만 카오리는 작품의 인트로처럼 그저 고양이를 귀여워한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코세이와 현재만이 남은 카오리에겐 고양이가 그렇게 보인다. 두 사람의 삶은 고양이를 통해 교차한다. 불행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행복한 현재를 찾고, 불행한 현재에서 행복했던 과거로 회귀하는 두 인물이다.
코세이가 어렸을 적 키우던 검은 고양이는 부모님이 연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내다 버렸고, 그 고양이는 코세이의 마음속에서나 일상 속에서나 계속해서 나타난다. 카오리는 아픔을 간직하던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불행함을 안은 소녀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소년에게 손을 내민다. 다음 대회의 반주자로 나서 줄 것을 부탁한다. 소년이 거절하자 연주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제야 소년은 소녀의 연주를 보며 불편해했던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메트로놈의 박자 속에 갇힌 강박감이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소년은 자신을 이끄는 소녀의 뒷모습에서 부모님의 모습을 겹쳐 떠올린다. 자신을 향해 뻗은 손이 몰아세우는 것과 이끌어 올리는 것의 차이임을 깨닫는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코세이는 반주를 하던 도중 피아노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나 카오리의 자유분방함에서 자신이 피아노를 좋아했던 이유를 찾는다. 부모님이 강요했던 피아노의 소리는 외면에서 들려왔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피아노의 음은 내면에서 들려왔다. 코세이는 피아노를 사랑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엉망진창인 음으로 끝마친다. 그렇게 새 출발의 4월이 끝이 난다.
연주가 끝나고 쓰러져 입원했던 카오리가 퇴원하고, 두 사람은 다리 위에서 만난다. 두 사람은 다리 위에서 만나 다투다가 다리 아래로 떨어져 물에 흠뻑 젖는다. 어렸을 때 놀던 것처럼, 동심에 흠뻑 젖는다. 그리고 자신이 왜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카오리는 반주를 망친 코세이를 콩쿠르에 참가시키는 것으로 용서한다. 집에 가던 츠바키는 내내 좋아해 왔지만 졸업을 한 뒤로는 마음을 접었던 야구부 선배 “사이토”에게 고백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셋 다, 우리의 꿈처럼 방황하고 있었다.
소프트볼 지역 예선과 콩쿠르를 향해 연습은 계속되고, 콩쿠르보다 먼저 시작된 지역 예선에서 츠바키는 발목을 접지르고 게임에서 지게 된다. 예선 뒤에 만난 남자친구 “사이토”에게 분함을 털어놓으며 시끄럽게 떠든다. 그러던 중 사이토의 지적으로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허무하게 끝나버렸음에도 막상 자신이 하는 얘기는 코세이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시작된 콩쿠르에서도 코세이는 계속해서 환청에 시달린다. 어린 시절, 코세이의 연주에 감명을 받아 피아노를 치게 되고 그런 코세이를 라이벌이자 동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두 인물 또한 콩쿠르에 출전한다. 그러나 코세이는 “타케시”와 “에미”를 잊은지 오래였고 두 사람의 실력에 감명받을 뿐이었다. 반대로 두 사람은 코세이의 형편없는 연주를 보며 크게 실망하게 된다. 대회가 끝나고 두 사람은 추락한 자신의 영웅에게 한탄하지만 코세이는 그저 현실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답한다. 코세이 부모님의 친구이자 유명 피아니스트인 “히로코”는 코세이가 피아노를 치는 목적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부모님을 위한 연주도, 나 자신을 위한 연주도 아닌 누군가에게 보내는 사랑의 슬픔을.
어린 시절, 코세이라는 한 인물에게 감명을 받고 꿈을 가지게 된 세 명의 인물의 행보는 이렇게 갈린다. 에미와 카오리는 코세이처럼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연주를 하기 위해 연주자가 되었고, 그 목적성은 코세이와 함께하는 바이올린과 코세이를 넘어서는 피아니스트로 갈린다. 같은 동반자이지만 경쟁하는 것과 협력하는 것의 차이다. 반대로 타케시는 코세이의 내면의 피아노의 선율이 아닌, 부모님으로부터 단련된 외면의 선율에 감명받아 그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에미처럼 코세이를 동경하지만 넘어서고 싶어하고, 카오리 또한 코세이를 동경하지만 그의 옆에서 함께하고 싶어한다. 이 삼각형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코세이다.
다시 한번 콩쿠르를 망쳤지만 코세이는 실망하지 않는다. 카오리 또한 밝은 표정으로 다가와 새로운 콩쿠르에 함께 출전할 것을 권유한다. 친선경기이기에 부담감이 덜하고, 카오리를 향한 마음이 더욱 깊어졌기에 코세이는 흔쾌히 수락한다. 그런 코세이에게 히로코가 갑자기 피아노에 복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 묻자, 코세이는 누군가를 위해 새 출발을 하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그 후, 히로코와 마을축제를 둘러보던 코세이는 히로코에게 “부모님이 정해준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히로코는 코세이에게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고 충고한다. 죽음이 한층 다가왔던 코세이의 부모님이 이성적이고 엄격해질 것을 당부한 반면, 같은 죽음 앞에 서있는 카오리는 코세이에게 감성적이고 유해질 것을 조언한다.
우리가 앞을 직시하는 것은 현실에 대응하기 위함이고, 앞을 보지 않고 바닥만을 바라보는 것은 현실을 회피하는 행위이다. 카오리의 집에 놀러 갔던 코세이가 집으로 돌아오던 중, 카오리는 코세이에게 “고개를 들고 다니니 키가 커진 것 같다”고 말한다. 작품은 코세이의 성장을 이렇게 표현한다. 카오리의 집에 놀러 감으로써 그녀를 더욱 이해하게 되고,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인 코세이는 더는 바닥만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코세이가 성장하는 만큼 카오리의 빛은 꺼져간다. 다른 이들의 폭죽이 화려하게 완주를 하는 것에 반해 카오리의 폭죽은 중간에 꺼지고 만다.
시간이 흘러 친선 콩쿠르가 열리는 날이 되었지만 카오리는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당황하지만 반주자가 없음에도 코세이는 무대 위에 올라선다. 더는 상처를 회피하지 않게 된 코세이는 어린 시절 자기 자신을 피아노의 세계로 이끈 “크라이슬러, 사랑의 슬픔”을 연주한다.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던 것을 연주하고 내면의 순수함을 건반 위에 올려둔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마음속의 별은 눈부시게 빛난다. 그리고 부모님을 용서하고 이해하게 된다. 사랑이 가장 슬프게 다가올 때는, 시작과 동시에 이별이 상존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츠바키는 그 모습을 보고 코세이와의 이별을 두려워하게 된다. 시작하지도 못한 사랑이, 가장 슬프게 다가왔기에.
다음 날, 코세이는 츠바키로부터 카오리가 전날 쓰러져 콩쿠르에 오지 못했음을, 병원에 입원해 있음을 전해 듣는다. 코세이는 병실에 누워있는 카오리를 보며 돌아가신 부모님을 겹쳐 떠올린다. 카오리의 모습에 부모님을 투사하고, 이미 죽어버린 것과 죽어가는 것, 과거에 완료된 것과 현재에 완료되어 가는 것을 보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자신에게 주었던 사랑을 카오리에게 돌려주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사랑은 반대방향으로 향한다.
점심시간에 친구와 점심을 먹던 츠바키는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이 코세이를 향해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동시에 자신은 관계가 와해되는 것이 두려워 가만히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며 세계를 넓히고 내면의 성장을 이루어 내는 코세이와 카오리의 관계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연애관계를 의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츠바키의 모습은 코세이를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츠바키는 어릴 적부터 코세이가 피아노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서운해했고, 현재에 와서도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음악 이야기를 서운해 한다. 어릴 적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확연한 꿈이 있다는 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명확하다는 게 부러웠을 것이다. 코세이와 함께하는 카오리의 모습을 보며 꿈 없이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이 더욱 한심해 보였을 것이다. 그런 츠바키에게 코세이의 존재는 소꿉친구가 아닌 꿈 자체고, 주변 사람들은 츠바키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막연하게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인 사이토를 쫓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남동생처럼 가까운 꿈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무렵, 코세이 또한 어느 고교를 지망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하게 된다. 후에 이어지는 친구와의 전화통화에서, 친구가 츠바키에게 묻는 물음은 마치 우리를 향해 일갈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이토는 싫지 않고, 코세이는 좋고, 이 둘에 대한 물음이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누구나 하나쯤은 가슴속에 꿈을 품고 산다. 나이를 먹고 점점 성장해가며 꿈으로부터 멀어지기도, 가까워지기도 한다. 꿈에 가까워지기는 쉽다. 꿈은 꿈꾸는 자의 특권이니까. 그러나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꿈에서 멀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있어도,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내 모습이 그토록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재능이 넘쳐도, 죽을 만큼 헐떡이며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워진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이 둘의 차이가 싫지 않은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와 같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면 그것으로 끝인 건지, 내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건 단지 망상에 불과한 건지.
코세이는 꿈을 쫓아 현재 사는 곳부터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로 마음 먹는다. 츠바키는 사이토와 헤어진다. 달빛이 내려오는 학교 피아노실에서, 츠바키는 사이토에게 상처를 준 것을 괴로워하며 코세이에게 마음을 털어 놓는다. 츠바키가 가진 고민은 이 작품의 두 가지 주제 중 하나다. 작품을 관람하는 독자들 또한 두 입장 중 하나를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일수도 있고.
나는 츠바키의 편이다. 작품이 코세이와 카오리의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지만, 그 반대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버스를 탈 때 창문 너머로 팔을 뻗어보면, 움직이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버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이 변하는 게 아니고 내가 변하는 거다. 내가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내 뒤에 서는 거다. 그러나 창문 밖으로 내민 손을 한껏 움켜쥐면 덧없이 빠져나가는 것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필연적으로 뒤로 향하는 것이 우리 뒤편의 누군가다. 그들은 나보다 뒤에 있다. 물론 가만히 정체되어 있으면 도태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변화는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면 오히려 돌아오기 위해 시간을 더 소모할 수도 있으니. 아니면 아예 출발점부터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내가 극복했다고 해서 그들에게도 그것이 쉬운 일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고, 그래서 츠바키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극복하지 못하는 것과 뿌리 박힌 발아래서 두려워하는 소녀가 슬프다.
한편, 에미는 망가진 코세이를 대신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파하고자 한다. 평소에 특정한 목표의식이 없으면 실력 기복이 심하던 그녀는, 지금껏 꿈꿔왔던 코세이의 모습이 망가짐과 함께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게 된다. 반대로 타케시는 동경의 대상이자 라이벌이던 코세이가 추락하자 목표의식을 잃고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코세이는 꿈을 정하고 나아가지만, 확신이 없어 카오리를 만나지 못한다. 그러던 중,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누군가가 나무에서 떨어져 기절하자 자신의 집에 들이게 된다. 후에 깨어난 아이는 “타케시의 동생 나기”였고, 나기는 옆에 있던 히로코가 유명한 피아니스트임을 알아보고 가르침을 원한다. 그러나 히로코는 코세이에게 나기를 떠맡긴다. 이후 코세이는 평소에 카오리가 좋아하던 까눌레 빵을 사서 병실로 향하지만, 자신보다 먼저 온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선다. 카오리의 병은 계속해서 심해져 서 있기조차 힘들어지지만, 집으로 향하던 코세이에게 걸려온 전화 속의 목소리는 밝기만 하다.
코세이는 제자가 된 나기를 열성적으로 가르친다. 나기에게 악보가 전부가 아니고 악보에서 벗어나야만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나기는 그런 코세이를 못마땅해하며 그래서 그 꼴이 되었냐고 비아냥댄다. 다음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코세이 앞에 카오리가 나타난다. 죽음이 머지않음을 느낀 카오리는 죽음을 숨긴 교복 차림으로 코세이를 만난다. 카오리는 기다리던 사람이 오지 않는다고 핑계를 대며 코세이와 데이트한다. 한편, 집에서 코세이를 기다리던 나기는 코세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불만이 가득하다. 자꾸만 코세이를 비꼬는 나기에게 히로코가 왜 그러는지 묻고, 히로코는 자신을 왜 제자로 삼았는지 묻는다. 나기는 자신의 오빠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코세이를 적으로 생각하지만, 히로코와 코세이는 나기를 음악을 같이 하는 동반자로 생각한다.
무릇 경쟁이라는 것은 서로 치열하게 깎아내리는 것이다. 그래야만 위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깎아내는 요철은 방향을 바꾸어 결합할 때 비로소 완벽한 하나가 된다. 동반자는 경쟁 없이도 함께 올라설 수 있다. 작품은 아마 그런 것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쟁해야 하지만, 경쟁만 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
히로코가 나기를 받아들인 것은 코세이를 바꾸어 놓기 위한 일환이다. 지금껏 코세이에게 가장 친숙했던 곡이 “사랑의 슬픔”이었던 것을, “사랑의 기쁨”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다. 여태껏 코세이의 음악 세계는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카오리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제 곧 카오리 또한 사라지고 만다. 히로코는 코세이에게 더는 슬픔을 남기고 싶지 않아 했다. 지나쳐온 슬픔이 사라지면, 그 위를 나기가 기쁨으로 채우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이 탁월했음을 증명하듯,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나기는 자신이 오빠를 독차지하려는 것과 다르게 친구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는 코세이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코세이는 수동적이고 나기는 능동적이지만, 사랑의 근원이 같은 두 사람이 만나 좋은 시너지를 만든다.
우리는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꿈 앞에 무기력하지만, 그 꿈이 단지 나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그 뒤를 받드는 사람들이 있기에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내면의 분노가 외부로 화를 끼치기 시작할 때 세계는 무너진다. 죽음이 더욱 가까워지자 카오리는 신경질적이 된다. 그런 카오리를 보며 코세이의 마음 또한 처지게 되고, 나기의 과외를 하던 중 히로코에게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는 지적을 받으며 집으로 떠밀린다. 나기는 그런 코세이를 따라가 대화를 나눈다. 나기의 오빠인 타케시가 코세이를 동경했던 것처럼, 나기 또한 타케시를 동경했기 때문에 코세이가 무너지자 동시에 무너진 타케시를 안타까워한다. 타케시는 그 여파로 일어난 분노를 자신에게 돌려 슬럼프에 빠지지만, 나기는 분노를 코세이에게 돌려 상황을 극복하고자 한다.
추구하던 야망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우리는 좌절한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자괴한다. 그러나 정말로 무서운 것은 돌아갈 자리가 없을 때다. 백 보 전진을 위해 한 보를 후퇴할 수는 있지만, 그것조차 없을 때 우리는 한계에 부딪힌다. 그래서 카오리가 안타깝다. 자신이 죽어도 마음속 한편에서 살게 해달라는 어제의 카오리가, 오늘에 와서 모든 걸 잊어 달라는 게, 도망칠 곳 없는 청춘의 모습 같아서 안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세계 속에 살고있는 것이 단지 나뿐만이 아님을 알기에, 지나쳐온 모두가 내 마음속에 함께하기에.
나기를 과외하던 코세이는 나기가 다니는 중학교의 축제에 피아니스트로 출전하게 해달라 부탁한다. 동시에 나기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세간의 이목을 부담스러워한다. 공연을 앞둔 무대 앞에서 떠는 나기를 보며 코세이는 카오리를 떠올린다. 코세이는 나기에게 다가가 용기를 북돋아 주고 나기는 코세이 또한 긴장감에 떨고 있음을 알아챈다. 완벽해 보이던 것이 나처럼 결점을 가진 평범한 것이 되는 순간이, 나기에게 용기를 준다.
살다 보면 도저히 이루지 못할 것만 같은 것들이 있다. 장골이 거대하고 덩치가 산만한 사람에게 덤벼서 이기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 죽도록 노력해도 순식간에 나를 뛰어넘는 재능의 차이. 목이 쉬어라 외처도 변하지 않는 사회. 이런 것들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무기력해진다. 무간에 빠져 대상을 흠집만을 낼 뿐,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걸 뛰어넘는 순간은 온다. 나기처럼, 완벽해 보이던 것이 나처럼 결점을 가진 평범한 것이 되는 순간이 온다. 넘어서지 못할 꿈은 없다. 꿈을 노래하는 게 청춘이고, 작품 속의 연주가 우리의 삶이 된다.
연주를 끝마치고 병문안을 가자 카오리는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병이 악화되어 있다. 겨울은 다가오고, 죽음이 선명해지는 가운데 코세이는 카오리에게 마지막으로 제안한다. 여태껏 나를 이끌어주던 너와 함께 서게 해달라고. 코세이는 마지막 연주를 제안한다.
코세이의 제안으로 카오리는 희망을 얻고 삶의 의지를 찾는다. 살 확률이 낮아도 수술을 결심하고, 그만뒀던 재활치료 또한 다시 시작한다. 츠바키는 코세이와 같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에 열중한다. 시간이 흘러 겨울의 콩쿠르가 개막하고, 예선전에서 코세이는 자신을 동경하던 타케시와 에미를 다시 만난다. 타케시는 자신의 연주에서 동경하던 코세이의 모습을 흘려보낸다. 타케시는 자신이 쫓던 동경을 포용하며 슬럼프에서 일어선다.
타케시에게 코세이는 어떤 존재일까. 어렸을 때 한없이 높아 보이던 산은 막상 커보면 별것이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정복감은 다르다. 그 올망졸망한 발걸음으로 정복했던 정상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동네 뒷산에 불과할 뿐.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하나를 위해 죽도록 달려가던 사람들은 그 목표가 사라지면 마치 제 인생이 다한 것처럼 행동한다. 더는 뭔가를 할 수가 없으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계속해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고 목표다. 한계에 직면하면 필연적으로 좌절하기 마련이지만, 더 나은 것들은 그 앞에 있다. 그러나 좌절했다고 해서 그게 자신의 한계인 것은 아니다. 타케시에게 코세이는 그런 존재였다.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을 넘어서고, 이제는 나 자체로 연주하는.
츠바키는 점점 더 성적이 좋아져 코세이와 같은 대학에 갈 수 있을 정도가 되고, 코세이에게 좀 더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코세이는 둔감한 나머지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한다. 그리고 그날 밤, 카오리의 병문안을 간 료타와 코세이는 카오리가 발작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코세이는 집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 고양이를 발견하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간다. 위에서 말했듯, 고양이는 두 사람을 잇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표현하기도 한다. 초반부의 고양이가 코세이를 몰아세우던 부모님을 상징한다면 자기극복 이후의 고양이는 카오리를 상징한다. 초반에는 카오리가 고양이를 어루만지지만, 후반에는 코세이가 고양이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차에 치인 고양이의 죽음이 확인되는 동물병원 앞에서, 코세이는 본능적으로 카오리의 죽음을 확신하고 두려움에 빠진다.
다음날, 츠바키는 료타로부터 카오리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전해 듣고 큰 상심에 빠진다. 코세이 또한 자괴에 빠져 방안에 틀어박힌다. 그래도 코세이는 용기를 내어 카오리의 병문안을 가고, 카오리는 평소처럼 코세이를 맞이한다. 코세이는 카오리를 보며 슬픔에 빠지지만 그런 코세이에게 카오리는 자신도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너는 노력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코세이의 콩쿠르 본선이 시작함과 동시에 카오리의 수술이 시작된다.
코세이는 순서를 기다리던 내내 자괴에 빠진 모습을 보이지만, 카오리의 죽음을 예상한 피아노 앞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자신이 피아노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부모님이 건강해지기를 원해서였음을 떠올린다. 지금껏 자신의 꿈을 떠받들던 지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코세이는 마지막 약속을 지키지 못한 카오리를 건반 위로 불러낸다. 카오리가 반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아름다운 합주를 시작한다. 그러나 미소 짓던 카오리의 연주가 끊겼을 때, 그녀의 생이 끝났음을 직감한다.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 간의 관계는 자라나는 새싹을 보는 것처럼 굉장히 흥미롭다. 대표적으로 주인공 코세이와 코세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두 인물, 부모님과 카오리의 존재는 작품을 일반적인 시간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한다. 일반적인 작품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한쪽으로 진행되는 반면에, 본 작품의 시간 흐름은 편도로만 흐르지 않고 양쪽에서 진행된다. 코세이의 부모님이 어릴 적의 코세이로부터 중반부까지의 코세이를 견인하는 요소라면, 반대로 카오리는 작품의 결말로부터 중반부의 코세이에게 영향을 끼친다. 작품 내에서 코세이의 성장은 가운데가 툭 튀어나온 산 모양의 그래프로 그려질 수 있는데, 중반부까지 계속해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극복 후 정점을 찍고 다시 카오리가 죽음으로 향해가며 하향 선을 그리기 때문이다. 결국 양쪽에서 주인공을 밀어붙이는 두 인물의 존재는 마치 두 대륙판이 부딪혀 거대하게 융기하는 것과 같은 지각변동이다.
이러한 지각변동적 요인은 일반적인 서사구조에서 살짝 변형된 구조이다. 위에서 말했듯, 보통은 인물들의 고통, 슬픔이나 혹은 주어진 과업을 극복함으로써 계속된 성장을 그려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작품은 이러한 구조의 양 끝을 비틀어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형상을 완성한다. 두 인물, 부모님과 카오리는 죽음에 이른 자와 죽음으로 향하는 상반된 입장의 인물인데, 주인공 코세이를 양쪽에서 성장시킨다.
부모님은 이성으로서의 예술을 가르치고, 카오리는 감성으로서의 예술을 가르친다. 작품의 중반부 이전까지는 이미 죽어버린 부모님의 환청에 시달리고, 그것이 카오리의 존재로 극복된다면 반대로 중반부 이후로 카오리의 악화로 계속해서 엇나가는 방향성을 부모님의 존재가 되잡아 준다.
죽어버린 부모님이 다시 살아날 수는 없으므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부모님의 친구였던 히로코다. 물론 히로코가 부모님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다. 하지만 엄격함만을 추구했던 과거의 부모님도 자상했던 때가 있었고, 그 자상함과 엄격함을 적절히 분배해 놓은 성격의 인물이 히로코다. 그동안 코세이를 트라우마에서 구원하고 방향을 제시하던 카오리가 쓰러지고 난 뒤, 그 후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히로코다. 히로코가 엄격하게 코세이를 붙드는 한편, 카오리는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특유의 유함이 사라지며 죽어버린 부모님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작품에서 코세이를 성장시키는 것은 카오리 한 명의 인물만이 아닌, 죽어버린 부모님과 부모님을 대체하는 히로코를 포함한 세 명의 인물이다.
정리하자면, 전반부부터 중반부까지의 이야기는 부모님의 죽음이 카오리의 삶으로 이어지고, 중반부부터 결말부까지의 이야기는 카오리의 죽음이 부모님의 삶으로 이어진다. 이 사이에서 주인공은 양쪽에서 좁혀지는 압박을 통해 성장하고 나아간다. 결국 카오리와 히로코의 존재가 서로 역전되며 대칭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작품의 서사고, 이러한 대칭의 구조는 다시 두 인물의 죽음이 하나로 귀결되며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구조가 된다. 두 인물이 사실상 하나의 인물이라는 것인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코세이를 성장시키는 하나의 동일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어린 시절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던 코세이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두 인물이 나아가는 상반된 입장이 마치 한 인물이 가진 두 가지 양면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카오리는 부모님의 의지를 이어받은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는 부모님의 존재가 피아노를 통해 환생한 것처럼 보인다. 부모님을 잊기 위한 코세이의 몸부림은 카오리를 잊지 않기 위한 발판이 된다. 이러한 뫼비우스의 띠를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작품에서 흘러가는 봄과 봄의 그 사이에서 주인공은 성장한다. 그러나 이 성장이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주인공의 성장은 처음부터 주어져 있던 것이고, 성장이 아닌 그저 가지고 있던 올바른 내면을 밖으로 꺼내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미 처음부터 완성형의 인물인 것이다.
또한 꿈을 주고받는 관계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데, 그 상호성이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삼각형의 구도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삼각형의 인물 구도는 총 세 개로 모두 중심에 코세이가 있다. A그룹이 카오리와 츠바키, B그룹은 에미와 타케시, C그룹은 타케시와 나기, D그룹은 나기와 츠바키, E그룹은 카오리와 에미다.
A그룹인 카오리와 츠바키의 꿈은 코세이를 쟁취하는 것이고, 둘은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의 차이를 가진다. 츠바키가 예전부터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던 것이 자신의 꿈인 줄을 몰랐던 반면에, 카오리는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목표를 정하고 꿈에 다가간다.
B그룹인 에미와 타케시의 꿈은 코세이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둘은 순수함과 비순수함의 차이를 가진다. 에미가 코세이가 순수한 마음으로 연주하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꿈을 찾은 반면, 타케시는 코세이의 단련된 리듬감을 넘어서는 것이 꿈이 된다.
C그룹인 타케시와 나기는 누군가를 자신의 꿈으로 삼고 동일시하지만, 둘은 동일시와 투사의 차이를 가진다. 타케시는 코세이의 실력을 동경하지만 질투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넘어서야 할 대상으로 생각할 뿐이다. 이른바 타인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는 투사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기는 자신의 동경 대상인 타케시가 코세이에게 좌절하자, 자신과 타케시의 구도를 타케시와 코세이의 구도에 동일시한다. 동일시하기에 자연스럽게 오빠의 좌절하는 모습에 자기 자신도 좌절하게 되고, 그 좌절감을 없애기 위해 감정의 근본이라고 생각되는 코세이를 미워하게 된다.
D그룹인 나기와 츠바키는 꿈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 비슷하다. 나기가 원래 피아노를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그저 집안에서 내려오는 일종의 가업으로 생각했다면, 코세이와의 만남을 통해 피아노를 치는 목적의식을 확립하고 실현하게 된다. 츠바키는 그동안 코세이를 그저 남동생으로만 생각했지만, 사이토와의 교제를 통해 코세이에 대한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 점점 나아가게 된다.
E그룹인 카오리와 에미는 코세이의 순수한 연주에 감명받아 꿈이 생겼다는 점이 같지만, 그 꿈의 실현 방향이 다르다. 카오리가 코세이의 실력을 동경해 타인을 감동시키는 연주를 하겠다는 꿈에서 나아가 코세이를 자신의 꿈 자체로 만든 반면, 에미는 코세이를 자신의 꿈을 건설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또한, 두 인물은 연주하는 악기에서도 유사점을 보인다. 카오리가 코세이의 피아노 반주자가 되기 위해 피아노에서 바이올린으로 연주 악기를 변경했지만, 에미는 코세이를 넘어서는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여러 악기 중 피아노를 택한다. 피아노는 건반이 현을 때리는 독립적인 형태의 악기이지만, 바이올린은 직접 활을 들어 현을 울려야 하는 분리된 형태이기 때문에 두 파트의 협력이 중요하다. 이렇듯 작품에 나오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차이는 경쟁과 협력의 차이다. 작중에 나오는 두 악기,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차이는 인물의 성격을 대변하며 작중 유일하게 나오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카오리임을 생각해볼 때, 에미도 카오리처럼 코세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아도 마음속으로 열렬히 지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물들의 구도가 나에게는 꿈을 실현하는 여러 방법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인물들은 원형을 그리며 중심부의 코세이를 에워싼다. 또한, 작품은 봄에서 시작해서 봄에서 끝이 난다. 새 학기에서 새 학기로, 원을 그리며 한해가 지나간다. 주인공 코세이의 소꿉친구인 츠바키가 소프트볼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시간은 홈에서 달려 다시 홈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같은 곳에 서 있어도 시간은 앞으로 향한다. 그 항해 속에서 지나치는 풍경들이 우리를 성장시키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며 꿈을 꾼다. 그러나 꿈은 침대에 편히 누워 막연하게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꿈은 삶의 결핍에서 온다. 등 뒤에 물이 차오르기 전에는 숨이 가파르지 않으며, 아래로 불이 번지기 전에는 뜨거움조차 모른다. 죽을 것만 같은 위기감이 우리를 추격할 때, 꿈은 풍선처럼 떠오른다. 그것을 붙잡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인생에 수많은 위기가 있었고, 꿈은 어렸을 때부터 나를 줄곧 따라다녔지만 어렸기 때문에 나는 알 수 없었다. 우리의 꿈은 성장해가며 계속해서 모습을 바꾼다. 꿈꾸는 자에겐 대통령도, 의사도 그 무엇도 나 자체였다. 나이가 들며 현실에 부딪혀 멍이 들고 울고 지치고 쓰러져 모든 것을 포기하며 앞으로 걷기만을 반복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소녀가 나를 일으켜 세워 다시 한번 피어나게 하고, 붙잡고 싶어도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꿈만 같다. 따라다니던 꿈이 사라진 후에야 발판삼아 도약하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 신기루들이 마음속에 기억되는 순간이 4월이라 생각한다. 나는 작품이 꿈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