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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차미 Jul 04. 2018

사람은 언제쯤 졸업하게 될까

1. 

게임 용어 중에 '졸업'이라는 게 있다. 어떤 콘텐츠에서 최상위로 올라와 더는 할 게 없다는 뜻이다. 이 용어는 여러 곳에 쓸 수 있다. 리니지와 같은 RPG 게임이라면 가장 좋은 아이템을 가졌다는 것이고, 오버워치와 같은 AOS 게임이라면 랭킹 1위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정상에 도달했기에 기분이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더는 할 게 없다는 무료함이 있고,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면 다시금 최상위에 도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여기에, 오버워치나 스타크래프트처럼 순위를 다투는 게임이라면 순위를 '방어'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있다.

이처럼, 게임에서 '졸업'이라는 용어엔 대략 세 가지 감정이 있다. 무료함도 있고 부담감도 있고 위기감도 있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삶을 사는 우리도 그 세 가지 감정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졸업'을 겪었고, 앞으로도 숱한 졸업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에서 졸업의 무게는 게임보다 훨씬 무겁다. 게임은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삶은 아니다. 삶에서 한 번 졸업하게 되면 그걸로 끝이다. 이때, '돌아갈 수 없다'는 시간의 문제가 우리를 괴롭힌다. 전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잘못된 선택으로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 대학은 나왔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무료함'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더는 어린이가 아니며, 대학교를 졸업하면 더는 학생이 아니다. '학생'이라는 이름이 사라지면 어엿한 사회인으로 취급받고, 그 무게감이 두 어깨에 실린다. 여태까지 잘 해오던 일을 뒤로하고 다시금 출발선에 서야 한다는 건 무척 부담스럽다. 새로운 출발은 '새로운' 일이기에 모르는 것투성인데, 지금껏 해왔던 건 '지나간' 것이니 더는 먹힐 것 같지도 않다. 대학교 졸업반 학생들이 '졸업'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영화 <졸업>의 작품 포스터ⓒ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2. 

마이크 니컬스 감독의 영화 <졸업>이 그런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대학교를 막 졸업한 벤저민 브래독(더스틴 호프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밴저민이 고향 마을에 와보니 어렸을 적 소꿉친구인 일레인 로빈슨(캐서린 로스)도 와있는 상태다. 그렇게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했던 두 사람이 고향 마을에 모이게 되는데, 두 사람 모두 하는 일 없이 매일 빈둥거린다.

밴저민은 미래에 대한 고민 반, 일레인에 대한 사랑 반으로 하루를 때우곤 한다. 그러던 중 일레인의 어머니(앤 밴크로프트)가 밴저민을 유혹하고, 두 사람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사이가 늘 그렇듯 끝이 좋지 못하다. 게다가, 일레인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되어 밴저민과 일레인의 사이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밴저민은 연애와 취업으로부터 멀어지고야 만다.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결혼식장에 난입해 두 손을 붙잡아 버스를 타고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결말로도 유명하다. 결혼식장에 난입해 "일레인! 일레인!"하고 돌고래 같은 괴성을 지르며 십자가를 휘두르는 밴저민의 모습은 폭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싫다고 할 땐 언제고 신부 일레인도 기쁜 얼굴로 밴저민을 따라간다. 그렇게 일레인과 밴저민은 버스 뒷좌석에 타서 서로를 향해 웃는데, 유독 밴저민의 큰 코가 눈에 들어온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코로 시작해서 코로 끝나는 이 영화는 '졸업'을 중심 삼아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룬다. 영화의 오프닝에는 비행기 안에 멍하니 앉아있는 밴저민의 코가 있고, 영화의 엔딩에는 버스 안에 멍하니 앉아있는 밴저민의 코가 있다. 하지만 오프닝과 결말은 각각 버스와 비행기, 솔로와 커플, 땀이 나고 안 나고, 집으로 오고 떠나고의 차이가 있다. 영화는 수미상관으로 대비가 명확한 두 가지 단어를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먼저, 오프닝과 결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야 한다. 말하자면 졸업 직후 그리고 결혼(도피) 전까지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밴저민은 자기 앞날을 나지막이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 걱정을 일레인 어머니의 유혹에 응하는 것으로 덮어버린다. 이때, 소꿉친구 부모님과의 연애관계는 불안정하고 부적절하다. 그러니 말하자면 불안정한 사랑이 불안정한 앞날을 대체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불안정한 사랑이라는 건 그만큼 확신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확신은 없지만, 일단 다가온 기회이니 붙잡아 두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마치, 꿈에 대한 확신이 없는 젊은이들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 초반에 집에 돌아온 밴저민을 환영하는 파티가 열리는데, 밴저민은 진로문제를 고민 중이라고 말한다. 그다음 장면에 일레인의 어머니가 밴저민을 유혹할 때, 밴저민은 일레인을 떠올리며 거부한다. 하지만 끝내 유혹에 넘어가고야 만다. 말하자면 "어디로 가야할지"라는 진로문제는 꿈뿐만 아니라 사랑에도 적용된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그래서 이 영화는 꿈과 사랑 모두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밴저민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실은 진정한 꿈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기도 하다. 일레인의 어머니와 연애하는 동시에 일레인과도 연애하던 밴저민이 부적절한 관계를 들켜 두 사람 모두와 헤어지게 되는 것은, 여러 꿈을 시도하다 모두 망쳐버리고 마는 것처럼 보인다.

막장 드라마에 가까워 보이는 이 영화에서 '일레인=꿈'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탄식을 내지르게 된다. 영화에서 '일레인'이라는 이름과 일레인을 위해 행동하는 밴저민의 모습에 꿈을 대입해 보면 놀고먹는 게 아니라 고군분투하는 것에 가깝다. 예를 들어 밴저민은 일레인의 어머니에게 "나라고 이런 관계가 좋은 줄 알아요?"라고도 하고, "우리 부모님은 저에게 모든 걸 해주셨어요. 그런 분들에게 이럴 수는 없어요."라고도 말한다. 이런 것들은 마치 "나라고 이런 꿈이 좋은 줄 알아요?" 혹은 "부모님이 만족할 직장을 가져야 해요."처럼 들린다. 

3. 

비행기에 있던 밴저민은 몸이 편하지만 마음이 불안한 상태다. 반면 버스에 있는 밴저민은 몸이 불편하지만 마음이 편한 상태다. 교통수단이 더 나빠졌지만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아 보인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옆에 일레인이 있기 때문이며, 그건 곧 꿈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렇지만 웃다가 정색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꿈'조차 희로애락이 확연해 보인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비행기는 빠르지만 중간에 내릴 틈을 주지 않는다. 중간에 내릴 수가 없다는 건 그만큼 한정적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런 면에서 버스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 내릴 정류장이 많다는 건 그만큼 꿈을 향해갈 방법이 많다는 것이다. 정류장마다 문이 열리고 신호등에 걸려 시간이 지체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천천히 창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기도 하다.

집에 오는 것에서 시작해 집에 떠나는 것으로 끝나는 이 영화의 제목이 <졸업>인 건, 졸업이 "끝이자 시작"이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과는 달리 대학교를 졸업한다는 건 다음 진로가 명확하지 않아서 불안하다. 영원히 '졸업' 상태로 살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졸업'의 의미가 고등학생 시절까지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삶에서 '졸업'은 항상 '끝이자 시작'을 뜻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언가를 끝냈다면 새로이 도전할 것을 찾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고3 수험생활이 끝나고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방황하곤 하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춘은 방황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꿈을 찾아 방황하기엔 현실이 너무 다급하다. 영화는 그런 다급함에 동반자와 함께하라고 말한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비행기 안 승객이 여러 명이지만 밴저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때 밴저민의 표정은 굳어있다. 반면, 영화의 엔딩에도 버스 안 승객이 여러 명이지만 밴저민과 일레인이 함께다. 이때 밴저민의 표정은 모호하지만 밝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꿈과 사랑을 찾은 밴저민의 성장이 있다. 그건 곧, 확고한 꿈이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을 둘러싼 버스 승객들의 눈초리가 '경이'일지 '조롱'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영화 중반에 밴저민은 수영장에 잠수해 앞으로의 진로를 걱정한다. 말하자면 수영장이란 밴저민에게 꿈을 구상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물'이란 손안에 고이지만 금세 빠져나가는 '꿈'의 일종이다. 밴저민은 꿈 위에 둥둥 떠다니지만 정작 아무것도 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물 밖의 어른들이 밴저민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밴저민은 아무 말 없이 어른들의 말을 듣는다. 그리곤 그곳에 잠수함으로써 현실로부터 도피한다. 말하자면 꿈 속에 잠수해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현실로부터 도피한 밴저민이 현실로 돌아오는 장면이 영화에 두 번 있다. 비가 내리는 장면들이다. 첫 번째 비 내리는 장면에서 밴저민은 일레인의 어머니와 이별하고 일레인에게 사실을 고백하게 된다. 두 번째 비 내리는 장면에서 밴저민은 일레인의 아버지에게 협박을 듣게 된다. 물에 잠긴 것도 아니고 물 밖에 있는 것도 아닌 빗속에서 밴저민은 현실로 돌아온다. 손에 잡히는 꿈이자 피할 수 없는 꿈이기도 한 일레인을 깨닫게 되고, 그녀의 결혼식을 향해 달려가는 계기가 된다.

모호한 사랑 관계는 모호한 진로, 아예 꿈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고하지도 않은 꿈이다. 그리하여 영화 내내 두 여인 사이에서 뛰어다니던 밴저민의 얼굴은 땀으로 흥건하고, 그건 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속에서의 몽상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체득한 꿈이야말로 진정한 꿈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땀이 흥건한 밴저민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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