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넓은 은하수 위로 불꽃이 퍼진다.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by 수차미
IE002268844_STD.jpg ▲영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의 작품 포스터, 이 작품은 본디 드라마였으나, 인기를 얻어 2년 뒤인 1995년에 영화로 개봉했다.ⓒ 후지 TV



한여름 밤의 넓은 은하수 위로 불꽃이 퍼진다.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보며 자연스레 소원을 빌곤 한다. 그때, 보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다. 불의 열기는 사랑의 마음, 무언가를 원하는 '열(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열망하고,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한다. 그러나 손 위로 피어난 불꽃은 무척 아름답지만, 통제되지 않는 불꽃은 무섭다. 사랑의 열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꽃놀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세계 어디를 가도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여기, 불꽃놀이가 보고픈 아이들이 있다. 불꽃이 퍼져 나오는 중심부가, 납작한지 동그란지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한다. 학교는 '불꽃의 색이 어떤 원소에서 비롯되는지'만 알려준다. 아이들은 살아가는 데 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실을 두고 논박을 벌인다. 하지만 학교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사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사랑이 어떤 상황에서 비롯되는 지'만 알려준다.

<러브레터> <4월 이야기>의 이와이 슌지 감독이 만든 1993년 작 드라마,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이후 인기를 얻어 1995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됐다)는 그렇게 시작한다. 두 초등학생, 노리미치와 유스케가 한 여자를 사랑하며 벌인 내기 수영의 결과에서 시점이 나뉜다. 현실 시점에서 노리미치는 내기 수영에 져 친구들과 불꽃의 모양을 검증하러 간다. 꿈 시점에서 노리미치는 수영에 이겨 나즈나와 사랑의 도피를 한다.

현실 시점. 수영에 우승한 유스케에게 나즈나가 '사랑의 도피'를 제안하지만, 유스케는 친구들과 불꽃을 검증하러 간다. 홀로 남은 나즈나에게 노리미치가 다가가는 순간, 나즈나의 엄마가 달려와 나즈나를 데려가고 만다. 나즈나의 부모님이 이혼해 더는 이곳에 머무를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 없이 사랑을 검증해야 할 처지에 놓인 노리미치, 눈을 감고 '만약'을 떠올려 본다. 아주 간절하게. 꿈 시점에서 노리미치는 수영에서 이겼고, 나즈나와 노리미치는 학교 수영장에서 불꽃놀이를 본다.

쏘아올린 불꽃, 난쟁이가 쏘아올린

아이들의 세계처럼 50분 남짓의 러닝 타임을 가진 이 영화는 사랑의 양가감정을 동시에 드러낸다. 사랑의 도피를 하는 두 사람과, 사실 검증을 위해 동네 등대로 가는 친구들을 교차로 보여준다. 사랑을 열망하는 그룹과 사랑을 검증하는 그룹을 보여주는 셈이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사실에 집착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도피 그룹'과 대비되어 소소한 웃음을 준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그것은 '왜 사랑을 검증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영화는 아이들보다 50배는 큰 수영 트랙을 사건의 발원지로 삼으며 사랑의 넓이와 폭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현실 시점에서 낮의 학교 수영장이 풋풋한 느낌이라면, 꿈 시점에서 밤의 학교 수영장은 무르익은 느낌을 준다. 꿈 시점 수영장 장면은 검증 그룹이 불꽃놀이를 놓쳐 아쉬워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 수영장에서 나즈나는 노리미치의 소원처럼 "다음 학기에 만나자"고 말한다. 하지만 검증 그룹은 불꽃놀이를 놓쳤고, 노리미치의 사랑도 현실에서 미완으로 끝나고 만다.

꿈 시점에서 검증 그룹의 아이들은 아무나 붙잡고 '불꽃놀이 장인'으로 삼는다. '가짜'가 던진 말을 두고 자기가 이겼다며 좋아하는 아이들, 하지만 꿈 시점에서 나즈나와 헤어져 시장을 걷던 노리미치는 '진짜' 불꽃놀이 장인을 만나 대답을 듣는다. 노리미치는 장인의 도움으로, 마지막 남은 단 한발을 통해 '검증'의 기회를 얻는다. 그것은 하늘을 수놓던 불꽃과 대비되어 사랑의 끝자락이라는 의미를 준다. 노리미치는 마지막에야 사랑을 검증할 수 있던 셈이다.

재밌는 점은 이 영화가 철저하게 아이들의 시점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불꽃의 모양에 물음을 던지는 엉뚱함부터,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몸집이 큰 그 나이 또래의 모습까지. 게다가 이별을 다루는 여타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 두 남녀를 갈라놓는 건 '부모의 이혼'이다. 죽음처럼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도 아니고, 집안의 반대나 재력의 부족처럼 현실적인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 부모의 의지는 절대적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헤어짐은 '어쩔 수 없는' 일에 해당한다. 즉 노리미치에게 나즈나의 전학은 자연재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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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의 한 장면.ⓒ (주)미디어캐슬


자연재해에 피해를 당했다 해도 그 감정은 분명 슬플 것인데, 노리미치는 울지 못한다. 그건 노리미치가 남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뭔지 몰라서다. 이 영화는 사랑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이 사랑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영화다. 떠나간 것이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떠올리는 영화다. 그 상상을 통해 노리미치는 불꽃의 모양을 찾아낸다. 그 상상을 통해 노리미치는 사랑의 모양을 찾아낸다. 이 영화에서 불꽃은 사랑의 양태이며 수영은 자아의 표상이다. 불꽃놀이 이후의 축제처럼, 풋사랑은 그렇게 무르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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