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숨겨놓은 명작에 대하여

영화 '하우 투 비 싱글'의 장르는 로맨스가 아니다

by 남수돌

제목만 보고 B급 로맨스물인 줄 알았던 영화


바로, 영화 '하우 투 비 싱글(How To Be Single, 2016)'의 이야기다.

넷플릭스를 1년 넘게 구독하고 있는 헤비 유저로서 내 고민은 늘 한결같았다. 어떤 영화를 볼지 찾다가 넷플릭스 메인화면에서만 30분 넘게 머무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중도하차하지 않을 정도로 재밌으면서도 적당히 교훈이 있는 영화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넷플릭스가 숨겨놓은 명작, 그 이름도 찬란한 영화 '하우 투 비 싱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저 일요일 저녁에 잠드는 것이 아쉬워 봤을 뿐인데, 영화는 내게 [울림]을 주었다. 단순히 킬링 타임용 영화인 줄 알았던 내게 마음에 새길만한 교훈을 주다니. 이럴 때 사람 앞일은 정말 모른다고 하는 건가. 이런 명작을 혼자만 볼 수 없어 친구들에게 소문내고 다닌 결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게 만들었다.

앗싸 영업 성공!

하우투비싱글.PNG 출처: 넷플릭스(하우 투 비 싱글을 검색해주세요)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그래?


이 영화는 로맨스물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연애 서사가 적당히 있는 '동기부여' 장르랄까. 주인공 '앨리스'는 원피스 지퍼를 올리는 일도 대학시절부터 사귀어왔던 남자 친구 '조시'에게 맡기던 사람이었다. 대학 입학 후 혼자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앨리스'는 조시에게 잠시 떨어져 지내며 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이별이 아닌 '잠시 떨어져 지냄'을 선택했지만, '조시'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며 이별은 현실이 되었다. 이를 예상하지 못했던 '앨리스'는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자신을 후회하며 원피스 지퍼를 채워줄 누군가를 찾아서 다시 연애를 하게 된다.

HowtoBeSingleChristianDitter.jpg 출처: http://moveablefest.com/christian-ditter-how-to-be-single/

여기서 끝이 아닌 영화


만약 영화가 여기서 끝났다면, '시간 때우기엔 나쁘지 않았는데 다시 볼만한 영화는 아니네'라고 생각했겠지만 다행히도 러닝타임은 더 남아있다. 남자보다는 자신의 커리어를 중요시했던 '앨리스'의 언니 '메그'의 연애사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앨리스'의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로빈'의 코미디 연기가 더해져 종합 선물 세트처럼 러닝타임을 채운다.


여기에 데이팅 웹사이트를 통해 결혼할 남자를 찾는 '루시'와 그녀가 자주 가는 술집 주인인 '데이비드'의 쌈과 썸을 오고 가는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둘이 이어지길 기대하게 만든다. (둘이 이어졌는지 여부는 넷플릭스에서 확인해주세요:D)

How-to-be-single-movie-2016.jpg 출처: Uselessdaily(https://bit.ly/3hrZgku)


조연은 없고 주인공만 있는 영화


영화를 인생으로 비유하자면 조연은 없고 주인공인 '나'만 있듯이, 조연이 없는 이 영화에는 비중에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깨달음을 얻는 주인공들만 있다.

how_to_be_single_06712r.jpg 출처: https://www.warnerbros.com/movies/how-be-single (최고의 궁합이었던 세 사람)

'앨리스'는 여러 번의 연애 끝에 결국 원피스 지퍼를 채워줄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싫어 늘 달아나던 그녀의 언니 '메그'는 결국 관계 속에서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자로부터 구속받기 싫어 원나잇으로만 끝내던 '데이비드'는 '루시' 덕분에 싱글을 탈출할 준비를 한다. '로빈'과 '루시'는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영화는 끝난다.

how_to_be_single_08013.jpg 출처: https://www.warnerbros.com/movies/how-be-single (데이비드와 루시의 그림 같은 모습)

관계, 집 그리고 그랜드캐년


도시의 반이 사랑을 하고, 나머지는 사랑을 찾으러 다니는 사랑의 도시, '뉴욕'에서의 싱글라이프에 대한 철학을 담은 이 영화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관계(그 관계 말고 이 관계)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과 속하고 싶은 이들이 조화를 이루는 이 영화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겠다. 관계에서 벗어나 고독한 싱글을 즐길 것인지, 아니면 관계에 속하더라도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하며 스스로를 아껴주고 사랑할 것인지 영화는 주인공들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든다.


#두 번째는 집.

극 초반 "집으로 가죠, 손님?"하고 물은 택시기사에게 '로빈'은 "집으로는 절대 안 가요."라고 답했었다. 그러나 극 말미에 "어디로 가나요, 손님?"하고 묻는 택시기사에게 앨리스는 "집으로 가주세요"라고 답한다. (물론 택시기사는 앨리스의 집을 알지 못해 주소를 다시 불러줘야 했지만:D) 홀로 고독감을 맛보고 싶지 않았던 '로빈'과 달리 '앨리스'는 여러 번의 연애 끝에 고독한 자신을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싱글로 거듭났기에, 집에 가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은 그랜드 캐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해낼 수 있는, 그리고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 진정한 싱글이 된 '앨리스'에게 엔딩 장면에서 등장하는 그랜드 캐년은 그녀가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그랜드 캐년에서 두 발로 서있는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는 것처럼, 어쩌면 싱글이란 '내'가 주인공인 인생에서, 성취를 통해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How-To-Be-Single-Dakota-Johnson-Final-Scene.jpg 출처: https://straightfromamovie.com/how-to-be-single-review/(그랜드 캐년에서의 엘리스)

하우 투 비 싱글. 진정한 싱글이 되는 법에 대하여


내게 추천받아 이 영화를 본 A라는 친구는 '자신이 이미 누구인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아는 로빈이 진정한 승리자다'라고 했고, 다른 B라는 친구는 '오... 근데 현실에선 앨리스같이 생겼으면 고독한 싱글이 될 틈이 없을 텐데'라고 했다. 그저 가벼운 존재인 줄로만 알았던 '로빈'이 가장 사기 캐릭터였고, 가장 진심인 줄 알았던 '조시'가 전형적인 구남친이었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이라니. 놀랄 일이다.


영화 제목이 '하우 투 비 싱글'이 아니라 '하우 투 엔조이 마이 라이프'가 되었다면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여기서 리뷰를 마무리해야겠다.


끝으로, 남은 연말 행복해하는 연인들을 부러워하며 집에서 홀로 고독을 맛보게 될 싱글이라면.

연인이 있지만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다시 말하지만 그 관계 말고 이 관계.)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면.

오늘 밤은 이 영화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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