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가되기보다는피해자로 살겠습니다
요즘 지인들과의 대화 중 가장 핫한 주제 중 하나는 바로 '학폭'이다. 메신저 단톡방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야, 걔도 학폭 떴더라!", "그 연예인 기사 봤어? 학폭이라며?" 하며 학폭과 관련된 연예인의 소식이나 기삿거리를 누구보다 빠르게 접할 수가 있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어 매번 놀라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본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거나 자숙하는 길을 선택하지만, 일부 연예인들은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 그저 그 사건 속에 있었을 뿐이다'하며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회피하려 한다. 물론 한쪽 입장만 듣고선 그 말이 사실이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물며 학창 시절이라니, 졸업한 지 5년만 넘어도 학창 시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억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우선은 '피해자'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100%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아예 진실이 날조된 100% 거짓말일 수도 있다. 그동안 학폭 논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인이 연예인이 되어 잘 나가는 것을 시기한 옛 친구의 질투심이 만들어낸 거짓된 사건이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일반인이 연예인을 상대로 이슈를 터트리는 데 대한 부담감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자신의 학폭 피해 사실을 공개한다는 게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기에 앞서 최대한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잘잘못은 그다음에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피해자의 편을 들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 또한 학폭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주변 지인 중 한 명이 내게 농담 삼아 이렇게 물었다. "남수돌, 작가 활동해야 하는데 논란거리는 없겠지?" 평소 내가 글 쓰는 것을 지지해주는 지인이기에, 농담 겸 나중에 작가 활동하다가 학폭 가해자로 폭로당할 일 없겠냐는 염려가 담긴 물음이었다. 그런 지인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 학폭 한적은 없고 학폭 피해자는 된 적이 있어서 논란거리는 없을 듯하네요. ㅎㅎ"
학폭. 학교폭력을 겪었던 건 내가 14살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같이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이 A라는 친구를 따돌렸는데, 그런 A가 불쌍했던 나는 다른 친구들에겐 며칠 동안 은행 간다, 학원 간다 하며 거짓말을 하곤 A와 등하교 길을 함께 했다. 그러던 중 다른 친구들이 내가 그동안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거짓말을 폭로한 이는 다름 아닌 A였다.
게다가 그런 상황 속에서 반 친구인 B에게 펜을 빌렸다가 돌려주기 전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엔 친한 친구들끼리 예쁜 펜이 있으면 함께 쓰는 게 유행인 시절이었다. 펜을 잃어버린 후 찾고 있는 내 앞에 '무엇'을 찾느냐는 B의 물음에 잃어버린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내 펜'을 찾고 있다고 한 뒤 그날 저녁에 문방구로 달려가 똑같은 펜을 사서 다음 날 등교를 했다. 그날 B의 필통 속에서 나는 그 펜을 발견했고 그날부터 따돌림은 시작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펜은 주인이었던 친구 B가 가져간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거짓말쟁이자 도둑으로 반 아이들에게 낙인찍히게 되었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의 대상이 되자, 다른 친구들마저도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탓에 체육대회에서도, 반 단합대회나 소풍 때에도 나는 늘 혼자여야 했다. 그렇게 소위 말하는 왕따가 되었다. 무시만 하면 다행이었겠지만, 그들은 내게 언어폭력을 일삼았다.
체육 대회 때 간식으로 햄버거가 나왔는데 배가 고프지 않아 포장도 벗기지 않고 실내화 위에 잠시 올려두고는 다음 순서를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나를 왕따 시킨 친구들이 "거지가 땅바닥에서 음식을 주워 먹네" 하며 내 앞을 비웃으며 지나갔다. 그때 다른 반 친구들도 그 말을 들으며 저마다 수군거렸고, 나는 햄버거를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고선 화장실로 울기 위해 달려갔었다. 그때의 내 삶에 남은 건 수치스러움과 절망밖에 없었다.
선생님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태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공감 없이 빨리 화해하라며 여러 활동에 그들과 팀으로 묶어놓은 탓에 나는 지속적으로 언어폭력과 무시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가 그 친구들 중 정말 친했던 친구와 우연한 기회로 화해를 하게 되어 그들의 학교 폭력의 그늘에서 간신히 벗어나게 되었다.
신체적으로 맞은 적은 없었지만 늘 나를 무시했던 그들의 대화, 내 뒤의 수군거림, 나를 벌레 취급하던 그들의 언행들로 인해 심리적으로 난 큰 상처를 받았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는 따돌림을 당하기 이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당당하고 항상 자신 있었던 나의 모습은 결국 대학생이 된 후로도 한참이 지나 되찾을 수 있었다.
학폭은 주변 지인들에게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나만의 비밀로 남고 말았다. 괴롭힘을 당했던 일을 말하면 그것이 언젠가 사회생활할 때 발목 잡힐 수도 있다는 부모님의 조언 때문에 정말 가까운 지인 외에는 학폭을 당했던 일을 함구하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연예인들의 학폭 가해 사실이 터지면서 중학교 1학년 상처 입었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차라리 나를 괴롭혔던 이들이 연예인이었으면 나도 다른 피해자들처럼 학폭 사실을 공론화하고 이슈라도 일으켜 그들이 죗값을 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라도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에게 큰 상처를 안겨줬던 친구들이었던 이들은 어느새 하나 둘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일부는 어디서 사는지 소식조차 끊겨서 복수를 꿈꿀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에겐 늘 꼬리표가 붙었었다. "쟤, 1-1반 왕따였던 애지?" 그래서 중3 때 내 과거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 마음먹고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지원했다. 집에서 버스로 30분 거리를 통학해야 해서 같은 중학교 출신은 거의 없겠다고 안심했었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예비 고1 선행학습으로 참여한 수업에서 같은 중학교 출신인 여자아이와 짝꿍이 되었다.
같은 학교였을 뿐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던 그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며 앞으로 친하게 잘 지내보다 하니 "너 같은 왕따였던 애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라고 적힌 쪽지를 받기도 했다. (이것은 100% 실화이며, 1년 뒤 이 친구로부터 그날의 행동에 대한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고등학교 때 좋은 친구들을 만나 중학교 시절 학폭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대학시절부터 지금 사회생활까지 인간관계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학폭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어떤 잘못이든 모두 내 잘못이라 여겼고 후배들에겐 텃세 부리지 않는 선배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친구들과는 그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고 물리에 겉도는 친구가 있으면 먼저 다가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항상 스스로 상기시켜다며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 뒤로 학폭의 가해자가 된 적은 결단코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차라리 학폭의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였기 때문에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피해자였기에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덕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가해자가 되었다면 이러한 성장은 없었을 것이다.
학폭을 당했던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적도 있었는데, 학폭의 논란 속 가해자였던 연예인들에게 가해지는 대중의 시선이 단호한 것이 참 좋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행동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으면 철이 들고 나서 사과했어야지 하고 책망하며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학폭 논란 속 연예인들의 활동 중단을 외치는 우리의 모습이 정말 좋다. 아마도 그들은 혹은 소속사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 차라리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였으면. 오히려 동정이라도 얻었을 텐데' 그들이 진심으로 죗값을 받고 뉘우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