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어학연수, 그 끝무렵에 나에게 남은 건 무엇이었을까?
2017년 11월. 나는 약 1년간의 프랑스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 나는 모두에게 그냥 즐거운 여행을 하고왔다고 우스게 소리로 얘기하지만, 그게 나의 첫 실패였다.
꿈을 꾸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20대였지만,
계획없는 꿈 앞에서 나는 시작이 과감한 만큼 무너지는 것도 과감했다.
브런치나 블로그에 수많은 글들은 어학연수나 해외생활에서 새로운 길로 가감없이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을까.
사람은 생긴대로 살아야된다며 나를 자책했다. 나는 역시 예술가이기보다는 설계자에 가까웠다.
계획하고 살아야된다는 것을 그때 더 확실하게 느끼며 MBTI도 없는시절에 나는 진정한 INTJ가 되었다.
어학연수 끝무렵의 나의 일기는 누구보다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그때의 글들이 지금의 내 모습과 겹쳐보이며, 이번엔 위로보다는 안쓰러움으로 남는다.
어쩌면 더 큰 우울로 지금의 불안함을 투영하기도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쓴다며 또다른 자극제로 남기는 것도 방법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의 과거를 동정하기보다는 그때의 기억으로 지금 더 나아가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20대까지의 나는 누구보다 실패없이 살았다. 그때 나는 실패를 맛보았다.
그때의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쩌면 무너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2017년 7월 11일
잠깐 넘어졌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뒤로 보이는 풍경이 이렇게나 좋았던 걸 이제야 깨닫게 되는 순간. 어쨌든 나아가야 하겠지만, 조금 더 천천히 걷고 가볍게 걷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상실감과 공허가 날 흔들어 놓을 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한국에 들어갔다 왔을 때, 많은 것들이 변했고 내가 보는 세상도 변했다. 인간은 역시나 적시나 미개하기 때문에 자기가 볼 수 있는 것만 보게 되는데, 내가 딱 그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다. 웃기는 건 생각하는 대로 보여지기도 하는 신기한 세상. 그치만 예전에는 가능했던 상상하는 일들이 지금은 조금씩 어려워 지기 시작했고, 상상보단 설계를, 크로키보단 스케치를 하는 현실주의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한국에 들어왔을 때, 나는 제주도에 갔다.
제주도는 항상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인생에 대한 영감이랄까.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바보로 만든다.
힘든 인내 뒤에야 값진 것을 얻을 수 있고, 누구도 무시 못할만한 이름과 valeur 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나는.. 정작 값진일이나 가치에 대해 경험해 보지고 듣지도 못해놓고 말만 뻥뻥 잘하는 허상이었다. 제주도에서 만난 대부분은 노랫소리에 젖어 맥주 한캔에 자기의 웃픈 과거를 말하는 낭만자들 이었다. 동경이나 후회없이 또 너무나 솔직하게 자기네 인생을 털어놀 수 있는 삶. 내가 원하고 또 좋아라한다.
안도다다오의 공간은 단순하지만 솔직하다.
꾸밈없고 시적으로 표현하는 의도가 내 맘에 그대로 스며들어왔다. 처음 안도를 알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건축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는 건 변함없다.
그렇게 나는 공간디자이너로 살고싶다.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 예술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예술을 하는 사람. 그깟 학위를 얻으려고 온게 아닌데 어느새 집착하는 내모습도 여간 바보같다. 몰라 ,다 놓아버리면 진짜 알맹이들만 내 손에 남지않을까?
그래도 아직까진 나는 나를 너무 믿으니까 가라앉을일은 없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또
너무나 커지면 무서운 것이 하나 찾아왔다. 아직까지 나는 찔리면 온몸이 떨리는데. 기대하면 상처만 커지고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며 꾹꾹 눌러담은 도시락처럼 답답한 나에겐 이 마음이라는 것은 이십오년을 받고 주어도 늘 처음처럼 두렵고 설렌다.
2017년 9월 7일
즐겨운 여행이 끝나고 혼자 있게된지 며칠이 지났을때쯤에.
여행도 이제 지쳐가고, 가고싶은 곳 보고싶은 곳 다 가면서 심심하면 친구를 불러 소주한 잔 할수있었던 우리집이 그립다.
숱한 여행들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풍경을 보고 놀라기보다는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내 감정에 불에 데인듯 두려워지는 나다. 좋은 것들을 당연하게 바라보다가도 내가 이것들을 전부 담을 수 없음을 일찍이 알아버렸고, 항상 예쁘지만 좋은 사람들과 봐야 더 좋다는 걸 알아버렸다. 혼자서는 가질수없는 것들이 훨씬 많고 목표없는 희망은 둥둥 떠다니는 돗단배처럼 자유롭지만 애처럽다.
작년까지만해도 왠지 유행하는 흔한 곳들을 가는 친구들의 심리가 너무 유치하고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예뻐보이는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고 싶어한다는 마음은 너무 당연한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익숙한 곳들이 얼마나 소중했던지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그리고 내 교만했던 시선의 틀은 본능을 이기려는 헛된 과시였던 게 아닐까?
여기서는 낮이나 밤이나 마음 졸이며 살아야하는 것이 너무나 싫기에 더욱 비교되는 삶.
남은 시간을 헛되지 않게 잘 쓰려고 하는데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 일상은 내가 프랑스에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허무하게 돌아간다.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무엇을 위한 삶이고 어떻게 이뤄나가야 할지.
다음 글부턴 이제 과거의 일기가 아니라, 현재의 나의 나아감에 대해 쓰려고 한다.
다시 이런 열정을 느낄 수 있을까? 과거의 실패가 현재의 성취에 대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까?
이 떨림이 불안이 아니라 설레임 일 것이라고 나의 마음을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