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을 벗어난 화초의 자아발견
어린시절부터 실패없는 나에게, 비교의 대상이나 성공의 기준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한번은 대기업 최종면접을 간 적이 있다.
1차, 2차 면접까지 분위기가 분명 좋았고, 다른 실무진들은 모두 나를 합격시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 최종보스가 갑자기 나를 보고 너무 온실 속 화초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 아니라고 부정하는 나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기분나쁘다기 보다는 왠지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온 것이 맞다.
화초도 나름의 고통이 있지만, 그 고통은 결코 상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서 고통은 스스로 충족되지 않는 오묘한 감정의 골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원인이 사림이나 돈이 될 수도, 직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어서 회사는 그저 나에게 자아를 만들어주는 수단이다.
아마 그 최종보스는 그런 나의 떡잎을 알아봤던 건지, 호락호락하게 맞춰질 것 같지 않았나보다.
그런 나에게 아직도 한국의 경쟁사회가 적응되지 않는다.
30+n년째의 경쟁이지만, 언제나 경쟁은 이해할 수 없고 괴로운 일이다.
남들처럼 살아야지 라는 마음보다는
나로 살아야겠다는 그런 다짐이 오늘의 나를 한번 더 준비하게 만든다.
지금의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언젠가 나는 내 일을 준비할 것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그런 일이, 나라는 가치를 잘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장소에서 일어나길 바래본다.
[오늘의 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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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리스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