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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Mar 23. 2020

강제 연차가 가져온 것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보내기

내 평생에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몰랐고 설마 이 회사도 그럴까? 했던 게 지난달 말이었다. 뉴스에 나오던 강제 연차와 무급휴가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매출이 떨어질 건 예상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매출은 급락했다.


3월 초. 자발적 연차를 가장한 강제 연차 사용을 해야 했다. 처음엔 그래 뭐 부당하지만 다들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사태가 빨리 진정되기를 바랐다. 더 쓰고 싶지 않으니까.


매일 급속도로 증가하는 확진자 수를 보고 점점 더 회사에 타격이 크다는 걸 체감했다. 이후에  흉흉하게 무급 휴가 또는 강제 연차 사용을 권한다는 이약기가 떠돌았다.


직접적으로 사장님과 회의를 했던 몇몇 팀에게는 상황이 이러니까 알아서 잘 연차를 남김없이 사용하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였으니까. 그 안에 나도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번 쉬었는데 또 쉬라고? 덕분에 근로기준법도 알아보고 이참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부당했지만 어쩔 수 없이 회사의 요청에 따르게 되었다.

가뜩이나 그만두고 싶었던 회사인데 이참에 확 신고하고 퇴사해?라고 생각했다가도. 아무 준비 없이 퇴사하는 건 또 아니야.라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들었다.


휴식기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떤 걸 잘했지?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뭘까? 또 찾아온 휴식 기간에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뤄뒀던 걸 하나씩 해보면서 나를 알아가기로 했다.

한때 빵 만드는 걸 좋아해서 자격증도 취득했는데 다시 한번 해볼까? 그래서 쉬는 내내 매일같이 빵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만지는 반죽과 도구들이 낯설기도 하면서 금세 익숙해졌다. 진짜 시간과 물질만 허락한다면 매일매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맞아, 나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 재능은 꽝이지만 마음의 안정을 핑계로 구매해뒀던 오일 파스텔과 색연필을 꺼내 색칠 공부도 했다.


작년엔 그래도 달에 4권 이상은 읽었는데. 올해는 영 별로네. 하면서 책장 속에 묵혀둔 책을 꺼내 읽었다. 날씨가 아무리 안 좋다고 해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를 위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꼭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앉아 정오의 햇살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래, 어쨌든 이직을 하려면 공부도 필요해. 미뤄뒀던 자격증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제일 빠른 시험일이 6월이니까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만 않으면 충분해.


여행이라도 갈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했다가도 익숙한 곳에서 온전히 내게 집중하기는 오랜만이라 낯설기도 하면서 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도 맞고 충분히 법적으로 신고도 가능한 상황이지만. 어쩌면 이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쉬는 기간 동안 느꼈던 감정들을 놓치지 않아야지. 메말랐던 감정들을 다시 깨워야지. 다른 사람이 소중한 만큼 나 또한 소중하니까.


그리고 개미는 일단 다시 회사로 복귀. 뚠뚠

할많하않을 속으로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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