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킹은 리브랜딩을 스스로 본연에 좀 더 다가가는 기회로 삼았다.
버거킹이 20여 년 만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리뉴얼했다. 처음 새로운 비주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사실 나도) 그다지 탐탁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존 브랜드에 대한 큰 불만이 없었다면(기대 이하가 아니었다면) 나올 수 있는 흔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후에 이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좀 더 보게 되었는데, 알고 나니 대단히 흥미롭고, 브랜드 리뉴얼 결과물이 꽤 멋지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 시작했다. 그 생각의 궤적을 남겨볼까 한다.
워낙 브랜드 전문가도 많고, 비즈니스 영역 전반을 통틀어서 브랜드를 해석하는 경향이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딩의 정의는 이것이다.
- 브랜드 아이덴티티: 조직 또는 해당 브랜드의 정체성
- 브랜드 이미지: 소비자나 고객을 대표로 하는 조직 또는 브랜드의 이해관계자들이 해당 브랜드에 대해 느끼는 인상
브랜딩은 바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이미지의 교집합 영역을 넓히는 일"이라는 개념이다. 이 둘의 교집합을 넓힌다는 것은 브랜드가 드러내고자 하는 정체성을 고객 등 이해관계자가 얼추 비슷하게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시를 들어보겠다.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듀오링고라는 언어 학습 서비스가 있다. 세계 1위의 언어 학습 앱이고, 개인적으로 프랑스어를 배워보려고 애써본 적이 있다. 이 앱의 톤은 항상 cheerful 하다. 그림 카드나 같은 표현 반복 등으로 처음 접하는 내용도 쉽게 학습할 수 있도록 돕고, 내가 설령 틀린다 해도 좌절하지 않도록 귀여운 이미지와 응원하는 문구로 쉴 새 없이 격려한다. 할 말은 많지만, 대략 이 정도까지 경험하고 내가 듀오링고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는 이 정도 느낌이 떠오른다: '캐릭터인 연두색 새, 활기차다, 북돋워준다, 아기자기하다'.
듀오링고는 실제로 듀오(연두색 새 캐릭터)가 브랜드 인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하고 있다. 더불어 듀오링고의 브랜드 보이스는 아래와 같다. (참고: 듀오링고 브랜드 가이드라인)
Expressive - We use simple words and phrases to convey big feelings.
Playful - We bring creativity to the conversation.
Embracing - Whoever you are, we're your biggest cheerleader.
Worldly - We are interested and knowledgeable, and we have a broad worldview.
실제로는 더 정밀한 브랜드 오딧(brand audit: 현재 브랜드에 관한 진단이나 조사)이 필요하겠지만, 몇 가지 표현들을 봤을 때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이미지는 꽤 겹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듀오링고는 브랜딩이 잘 되어 있는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다.
보통 브랜딩/리브랜딩은 보통 이 교집합이 충분히 넓지 않다고 판단될 때, 즉 조직의 현재나 근미래의 지향점이 고객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될 필요가 있을 때 실시한다.
Burger King evolves visual brand identity marking the first complete rebrand in over 20 years.
New Modernized Branding and Logo Signals the Brand’s Evolution in Food Quality, Sustainability and Digital. (버거킹 공식 유튜브)
버거킹 리브랜딩에 관한 핵심은 위의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특히 아래의 세 가지 핵심이 중대한 리브랜딩의 필요성인 동시에, 실제 브랜드 리뉴얼 작업 시 주요한 특징으로 다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 흐름을 보면 버거킹의 조직 정체성, 비즈니스 전략이 어떻게 고스란히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이어지는지를 조망할 수 있다.
품질 (Food Quality)
버거킹은 최근 인공 조미료와 발색제, 보존제를 모든 메뉴에서 제거했다. 패스트푸드라도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먹거리를 제공하려는 의지였을 것이다. 본인들이 판매하는 식품 자체에 대한 진심을 브랜드로 충분히 잘 전달하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다고 판단한 결과 대대적인 리브랜딩이 시작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식품 자체에 관한 고민이 결과적으로 브랜딩에 중요한 요소로 드러났는데, 자세한 건 아래에서.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
전염병, 기후위기 등 인류에게 크고 나쁜 영향으로 돌아올 일들에 관해 버거킹 또한 손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버거킹은 나름의 책임감을 가지고 본인들이 판매하는 식품에서 더 나아가 지구 환경, 그리고 인류 공동체가 맞닥뜨린 현실 앞에 일련의 약속들을 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0년 7월에 나온 한 기사에 따르면 버거킹은 소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줄이기 위해 레몬그라스를 먹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소의 메탄가스(일명 '방귀') 배출량을 하루 33%까지 줄일 수 있다고. (엄청난 성과인데 뭔가 귀엽고 웃기네..) 미국 오스틴, LA, 마이애미, 뉴욕, 포틀랜드 지점의 와퍼 메뉴에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러한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은 곧 조직의 정체성이 되고, 브랜드 아이덴티티에도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기존의 BI가 버거킹의 이러한 주요 방향성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면, 리브랜딩을 단행할 수 있다.
디지털 (Digital)
코로나19로 더 분명해진 비즈니스 흐름이 있다면, 사업/창업을 한다면 그게 어떤 것이든 온라인 비즈니스도 병행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위주였던 많은 조직이 발 빠르게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시도하고 있고, 패스트푸드라는 분명한 물성이 있는 버거킹도 그 흐름에 예외일 수 없다.
그럼 버거킹에는 어떤 디지털 접점이 있을까? 가장 기본적으로는 디지털 채널을 통한 마케팅이나 프로모션 등 커뮤니케이션이 있을 것이다. 버거킹은 웹사이트뿐 아니라 앱으로도 주문을 받는데, 웹/앱을 통한 주문과 배달 서비스 제공도 디지털인 버거킹을 만나는 데에 중요한 흐름이다. 매장에서는 점차 더 보편화될 키오스크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버거킹은 매장과 모바일 디바이스에서의 고객 경험을 위해 기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브랜드를 디지털에 좀 더 친화적인 형태로 조정하는 일은 역시 이들에게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영상으로 브랜드 리뉴얼의 서머리를 경험할 수 있다.
어떤 느낌인가? 뭔가 어색하고 좀 레트로한 것도 같아서 괜찮은 것도 같고 그래도 로고는 이전이 나은가?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관전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1. 심볼이 심플해졌다.
햄버거 번 사이에 빨간 글씨로 적힌 BURGER KING. 이 심플한 심볼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원래 버거킹의 상징이었다. 특히 아래 이미지와 같이 1969-1999년을 풍미한 로고의 형태, 색상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렇게 브랜드의 헤리티지(heritage)를 끌고 가는 것은 원래 버거킹이 버거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자부심을 드러내는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전부터 옳았고 그 정신을 이번에도 계승한다,랄까.
"우리는 1969년부터 1998년까지의 아이덴티티 영감을 얻어 의도적으로 로고를 재설계했습니다. 당시의 아이덴티티는 진정성 있고, 자신감 있고, 단순하며, 진정한 버거킹이었습니다." 버거킹의 모기업인 RBI의 글로벌 디자인 헤드이자 부사장인 라파엘 아브루(Raphael Abreu)가 한 기사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편 1999년부터 20년 넘는 시간 동안 버거킹의 상징이 되었던(우리에게 익숙한) 심볼은 '속도'라는 미덕이 중요했던 때의 비즈니스 니즈와 조직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파랗게 두른 원은 어쩐지 음식보다는 신속, 스피드를 드러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도 그런 탓일지 모른다.
다만 90년대까지의 로고와 달리 추가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이 작은 심볼이다. 기본 심볼과 별개로 디지털 세상에서의 무한한 작아짐(?)을 위해 준비한 병기로 보인다. 리뉴얼된 웹사이트 파비콘에는 그냥 기본 심볼을 활용했는데, 요 작은 심볼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2021년의 소비자로서 기대된다.
2. 컬러가 자연스러워졌다.
이전 로고와 놓고 비교했을 때, 심볼에서 특유의 쨍한 컬러는 확실히 사라졌다. 이는 버거킹이 의도한 것이 맞다. 버거킹은 전에 비해 인공 첨가물을 쓰지 않는 현재의 메뉴가 확실히 더 '자연스럽다'라고 느낄 것이고, 이를 커뮤니케이션하길 원했을 것이다. 이 니즈를 반영한 것이 바로 심볼을 비롯한 브랜드의 컬러 팔레트로 보인다. (물론 다른 색들은 기존의 팔레트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듯하다.) 눈에 띄는 색을 택하기보다 실제 음식에 더 가까운 색을 택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선택이 '음식에 진심인' 버거킹의 의지를 디자인으로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근거가 있는 브랜딩은.. 정말 쿨하다.
아래는 센스 터지는 브랜드 컬러의 명칭이다.
- 메인컬러명: Fiery Red, Flaming Orange, BBQ Brown
- 서브컬러명: Mayo Egg White, Melty Yellow, Crunchy Green
3. 타이포그래피, 메시지 등에서 드러나는 개성이 강해졌다.
치토스 같은 게 폰트가 되면 이런 느낌일까? 예사롭지 않다. 대담하다. 버거킹은 타이포 자체가 '맛있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메뉴의 맛과 품질에 집중한 것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타이포가 상당히 플렉서블하다. 여기서의 플렉서블은 말 그대로 이미지가 유연하게 늘어나기도 짜부라지기도(?) 한다는 것. 마치 햄버거 소스가 중력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인상을 준다. 시각적으로 드러난 이런 개성은 브랜드 성격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개성이 철철 흐르는 타이포그래피는 일러스트나 브랜드 메시지와도 무리 없이 align 되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위 이미지에서는 색깔을 최소한으로 쓰면서도 감각적 표현이 함께 쓰이면서 풍성한 느낌을 줄 수 있게 됐다. 심플하지만 자연스럽고, 대담하지만 다양한 느낌을 전달하는, 개인적으로는 버거킹 브랜딩의 어떤 정점같이 느껴진달까.
버거킹의 이번 리브랜딩을 비즈니스 관점부터 시작하여 찬찬히 톺아보았다. 덕분에 이전에 작업했던 프로젝트도 이렇게 저렇게 떠올려볼 수 있었다. 추후에 웹/앱 서비스의 UX/UI 차원에서 어떻게 브랜드를 적용하고 있는지나 세부적인 브랜드 메시지에 대해서도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가장 핵심적인 교훈은 역시 그냥 '예쁜 브랜드', 그냥 '새로운 디자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우리 비즈니스나 서비스의 초점과 핵심을 잘 관통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 1년쯤 후에 버거킹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이미지의 교집합이 어느 정도가 되어 있을지 새삼 기대된다.
참고링크
CNN Business - Burger King's latest sustainability effort: reduce cow f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