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 한 벌목꾼의 사랑과 상실에 대하여
기억과 편집
거대한 구조 속 개인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
1.
“20년이 통째로 그냥 ‘쓱’ 지나가요. 엄청 긴 시간인데도. 반대로 행복했던 짧은 시기는 되게 따뜻하고 자세하게 묘사되고요.”
영화 <기차의 꿈>은 로버트의 삶과 기억을 담고 있다. 목적 없이 방황했던 20년은 거의 점프컷처럼 지나가지만, 결혼 후 가족과 함께했던 짧은 시간은 따뜻하고 세밀하게 묘사된다. 산불 이후 상실 속에서 반복적으로 지쳐 잠드는 장면 역시 일부러 압축하지 않고 길게 보여준다.
어떤 시간이 자세히 느리게 묘사되고 어떤 시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지, 또 어떤 기억이 반복적으로 소환되고 등장하는지를 보며, 그의 기억 속에서 어떤 경험이 얼마나 강하게 남아있는가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겪은 삶과 기억(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실)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플롯이 적은 영화이기에, 이러한 편집 자체가 영화의 중요한 스토리이자 구조가 된다.
“로버트의 기억은 애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타인의 삶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으로만 단순화해요.”
한편, 이 기억의 편집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비판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로버트의 가족과의 기억이 신성화된 여성과 돌봄의 이미지로 회상되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실제 삶의 복잡한 관계나 타인의 경험은 지워지고 주인공의 고독과 상실만 중심에 남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누군가를 혹은 타인은 나를, 어떻게 기억 속에서 선택하고 재구성할까.
2.
“기차가 사회 발전, 시대 변화, 영화 속 산불처럼,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영향을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또, 기차가 앞으로만 가듯이 시간과 인생은 흘러가잖아요. 개인에게는 역부족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맞닥뜨리는 영향들이 너무 많고요."
영화는 개인의 삶을 거대한 구조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 기차는 멈출 수 없는 흐름을 상징하고, 인간 역시 거대한 시대와 사회적 변화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을 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영화 속 중국인 노동자 사건은, 각자의 욕망과 사연이 있었을지라도 결국 관객에게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채 남는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삶을 견디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삶을 사는 건 아니다. ‘안’이라는 인물은 벌목이라는 노동의 현장 속에서 나무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피할 수 없는 현실과 지키고 싶은 가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3.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산다'는 걸 알겠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삶을 무엇이라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라는 질문이 들었어요. 로버트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살았고… 근데 ‘결국 사랑뿐이야?’라고 하기엔 더 담고 있는 얘기가 많아 보였거든요.”
"저는 ‘안’이 죽기 전에 벌목 현장에서 나무와 자연을 보면서 ‘너무 아름답지 않냐’고 하는 장면이 주인공 ‘로버트’가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장면'과 겹쳐 보였어요. 저는 그게 핵심 같거든요. 내가 이 세계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삶과 현실, 자연을 조망하고 아름다워할 줄 아는 시선과 태도요."
영화 속에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반복되지만, 동시에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게 하는 장면들이 있다. 벌목 현장에서 죽음을 앞둔 노인이 주변 풍경을 조망하며 “너무 아름답지 않냐”라고 말하는 순간이나, 불탔던 숲이 다시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며 경이를 느끼는 연구자의 시선은, 삶의 아픔이나 고통을 지워버리기보다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채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처럼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발 딧고 선 땅에서 벗어나 하늘 위에서 자신의 세계를 내려다보는 순간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순간이라기보다, 자신이 거대한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처럼 보인다. 그렇게 보면, 때로는 환희와 고통으로 뒤섞인 세계와 함께 존재하고 있는 우리가 이를 온전히 바라볼 줄 아는 것이 곧 아름다움임이 아닐까.
영화는 다양한 장면과 대사를 통해 계속해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시대의 변화와 내가, 거대한 자연과 내가, 내가 속한 세계와 내가, 그리고 서로가 서로와. 그리고 그 연결 속에는 분명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 일부임을 알고 그 속에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기를.
ps. 본 영화의 원제는 기차‘의’ 꿈이 아니라 <Train Dreams>라고 한다. 기차와 관련된 꿈, 기차 같은 꿈, 기차의 꿈을 다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영화는 ‘기차처럼 지나간 꿈들’의 이야기 같다. 지나간 꿈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무엇이 남고 무엇이 지워지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기억을 가지고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