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들을 음악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료 후쿠이의 Scenery를 듣는다. 주변 소음은 싫고, 마음을 평평하게 유지하고 싶을 때 자주 찾는다. 생전 알지도 못하는 피아니스트의 음악을 계속 찾아 듣는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지만, 이제는 루틴한 일이 되었다. 들을 음악을 찾는 것조차 힘이 든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만, 알 수 없는 귀찮음이 몰려올 때면, 이렇게 귀에 익힌, 아는 리듬과 멜로디가 좋다.
요즘은 피곤함에 절어있는 것 같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워낙 진이 빠지는 계절인 것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마음졸임이 있어서 그런 듯 하다. 아주 감사하게도, 내 글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 미약하게나마 원고를 지속해서 쓰고 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표현력의 부재와 글 에너지의 부족이 날 괴롭게 한다. 예전보다 긴장하며 일하고 있지만, 좀처럼 깊이감이 더해지진 않는다. 표현을 위한 도구들을 사지만, 쓰는 이의 역량 부족으로 활용도는 떨어지는 듯하다.
무엇이든 양적 성장이 바탕이 되어야 질적 성장이 있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주관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는 이 판에서는 내가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파악이 잘 안된다. 내게 아무리 좋은 글을 쓴다고 한들, 봐주는 이들이 없거나 읽는 이들에게 감흥이 없다면 그 또한 힘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시대적인 트렌드가 '말줄임'과 '빠름' 그리고 '선명하고도 직관적인 자극'이 된 시대에는 나처럼 느릿한 사람들은 반대로 역행하는 사람들이 되어 뒤쳐지게 된다.
오늘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했던 것 중 하나. 재미를 요약한 것이 더 재밌는 시대가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영화를 요약하거나, 이야기를 통째로 요약한 유튜브 콘텐츠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해가 간다. 그 긴 서사를 읽기엔 너무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피곤하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따라가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세상에 쏟아지고 있다. 지속해서 반복되는 짧은 영상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을 느끼기도 한다. 엄마가 유튜브 숏츠 영상을 틀어 놓고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빠름을 전파했다는 것에 대해 놀라기도 한다.
회사에 출근하면 어떤 프로그램을 봤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연애 프로그램들에 관해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주인공의 테제는 기존 연예인에게서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로 넘어왔다는 것을 느낀다. 프로그램에서 보아야 할 사람들이 늘어났다. 각자의 취향은 전파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특정 취향이 모두를 감염시키는 듯 하나의 취향이 강요되기까지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금의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이 느릿하고 다른 생각에 빠지길 좋아하는 나에게는 피곤함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