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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와 앤

리보와 앤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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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힘든 일들이 많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동화를 읽을 수 있을까 싶은 요즘이었다.

그러다 생각치도 못하게 오랫동안 언젠가 보여고 염두에 두고 있던 작품을 보게 되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리보와 앤'이다. 힘든 시기에 오히려 이런 동화에서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준 힐링과 치유의 이야기를 오늘 리뷰해 보도록 하자.


리보는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을 도와주는 사서 로봇이다. 리보는 정해진 알고리즘과 명령, 기능에 따라

도서관에 찾아오는 아이들을 안내해주고 아이들의 독서를 도와주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런데 어느날 그 평화가 깨진다. 플루비아라는 전염병으로 도서관은 폐쇄되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어진다.


리보는 사람이 없는 도서관에서 움직이는 로봇, 자신과 앤만이 남겨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관에서 리보는 끝없는 기다림으로 누군가 찾아오고 도와주기를 바라지만 그런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이 흘러간다.


리보는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기능을 최소한으로만 가동하고, 독서 지도 로봇이어서 다소 감성적인 앤과의

교류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알아간다.


그러다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건 항상 자신을 친숙하게 대하던 소년이었고,

리보는 그 소년과 닿을 수 없는 유리창 너머의 소통을 통해 고립되고 외로운 시간에 희망을 발견한다.


하지만 도서관 로봇과 아이의 힘은 한계가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방치된 리보와 앤의 기능은

점점 멈춰가고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년과의 소통마저도 과도한 접속을 피싱으로 의심한 기능 제한으로

차단이 되고 점점 리보는 홀로 남겨지고, 어느 순간 그 시간이 끝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리보는 과연 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고독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될까?

세상을 고립과 외로움으로 가득 채운 이 세상에 재앙은 과연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맞이할까?


뭐... 내용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겪었던 그 사건, 판데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경험했던 바이러스의 무서운 재앙, 단순히 아프고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이 단절되고 고립되는 끔찍한 기억을 공유하게 만든 그 사건은 이래저래 문학에서 많은 여파를 남겼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서 말하는 극 I성향이라고 해도

누군가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사는 것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끔찍한 가정이 현실이 된 시간 속에서,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과연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였을까? 그 감정을 이 책에서는 그리움으로 묘사하고 있다.


항상 시끌벅적하고 까르르 떠드는 소리로 가득한 생동감이 넘치던 어린이 도서관,

거기에 익숙하던 리보가 판데믹으로 홀로 남겨지고, 만날 수 없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기억하는 과정은

그리움이라는 아련하고도 아픈 감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방금 전에 던진, 이 사태에 대해 아이들이 느꼈던 감정에 대한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얼굴도 알아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다가갈 수도 없는 고립과 단절.

아이들은 처음 겪는 그 생경한 경험을 겪으며 그런 마음으로 그 시간을 기억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리보와 앤은 도서관에 속한 로봇이지만,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 두 아이는 사실은 로봇이 아니라, 어른들이 만든 외로운 세상을 홀로 견뎌내야 했던 아이들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런 관점을 통해 두 아이가 겪어가는 쓸쓸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묵묵히 감내하는

시간의 단조로움과 서글픔이 글귀 하나하나, 내용 한곳한곳에 빠짐없이 배여있었다.


우리가 그 시간, 약 2년 동안의 시간 속에서 아이들에게 한 짓은 그저 학력 미달과 소통 부재가 아닌

너무 일찍 알지 않기를 바랬던 고독함과 쓸쓸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항상 동화를 보면서 내가 느끼는 그 생각, 어른들에게도 이건 깊은 마음의 울림이 일었다.

비단 아이들만이 아닌 우리 어른들은 그런 고독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세상에 참 나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소통하기보다는 강요하려 하고, 대화하기 보다는 힘으로 깔아뭉게고

배려하기보다는 배려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자들이 성공한 자로 세상에 칭송받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하려 하고, 주어진 고독과 단절을 이 아이처럼 성숙하게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려 하였을까? 스스로에게 되묻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런 질문에 대해서, 진솔한 성찰이 아닌 비웃음만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쩌면 작중에서는 지독한 적막과 고립된 공간으로 묘사되는 도서관, 오롯이 리보와 앤만이 기다려주던

그곳이 나에게는 차라리 머물고 싶은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낙원처럼 느껴졌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많은 순수함을 잃고 죄악을 동영상으로 찍어 자랑하는 괴기한 시대를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앤이 조심스럽게 추천해주는 그 책들과, 그 책속에 나오는 마음을 치료하는 말들을 다시 한번 되뇌이며

부질없는 소망을 해본다. 부디... 나 자신만이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를.


그리고 과시하고 보여주고 강압하는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누군가를 기다려주고 치유하고 도움이 되는

소통을 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기를... 마치 태풍 속에 켠 촛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그런 소망을 되뇌이며 이 책의 리뷰를 마친다.




P.S 여러모로 성찰을 많이 하게 해준 작품이었지만, 마냥 진지한 것만은 아닌 소소한 웃음도 있기는 했다.

그 중에 하나는 표지 오해였는데, 난 표지에 나온 두 아이가 리보와 앤인줄 알았다.

그래서... 되게 사람처럼 만든 로봇이구나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하하... 오해해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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