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
새해의 시작을 뭔가 샤방샤방하고 발랄한 것으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어쩌다보니 첫 작품이
다소 그런 가벼운 분위기는 아닌 작품,'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로 시작하게 되었다.
음... 뭐 세상이 항상 희망찰수 만은 없겠지. 조금 시리어스함이 진득하게 배여있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오히려 우울한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통해 성장하고 밝은 꿈을 꾸는 기분으로 리뷰를 시작해보자.
사실 이번 작품은 이래저래 인상이 깊은 작품이다. 일단 제목이 참 길다.
거기다 최근에 나온 속편이랑 제목도 비슷해서 어쩌다보니 참 송구스러운 이야기지만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기 어렵다는 걸로 기억이 선명하게 박히는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작가님도 범상치 않으신 분이다. 최근에 리뷰하기도 했던 동화 작품들 중의 화제작
리얼 마래의 황지영 작가님이 쓰신 작품이다. 그래서...
그때 느꼈던 아이들의 세계에서 쉽게 나오기 힘든 범상치 않은 시리어스의 페이스트가 진하게 풍겨오는 작품이다.
이런 강렬한 인상으로 일단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보자.
작품은 등장인물 3명, 유나, 건희, 민설의 시점에서 서로 교차하는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이어지는 형식이다.
친구 사이지만 교류의 방식이나 성격의 차이로 셋이 같이 친구는 아닌 세 사람,
그래서 유나는 따로 친구인 건희와 민설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느라 항상 고생한다.
거기다, 민설과 같이 다니는 난타반에서 센터의 자리를 둔 미묘한 갈등이 겹치면서 세 아이의
복잡한 관계는 점점 더 깊은 갈등의 골을 파게 된다. 그런게 그런 갈등을 부추기는 요소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햇빛초의 익명게시판인 대숲에서 오가는 미묘한 익명의 글들이다.
진실과 거짓, 변명과 고발이 교묘하게 뒤섞인 그 쓰니를 알 수 없는 글들 속에서 아이들의
오해와 의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그러다 축제를 앞둔 공연 준비에서 결국 유나는 사고를 당한다.
그것을 통해 결국 고조된 갈등은 폭발한다.
과연 유나는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의심과 오해 속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이 이야기들 속에서 아이들은 옳바른 결말에 다다를 수 있을까?
예전에 좋아하던 영화 중에 베스트로 꼽는 작품 중에 라쇼몽이란 작품이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걸작으로 나생문을 배경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서로 엇갈린 증언 속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은 점점 모호해지고 진실은 멀어져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이런 부조리한 인간 군상들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창작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창작의 무한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이 작품도 그런 부조리한 사람의 본성과 거짓과 진실이 교묘히 섞인 증언을 동화의 형식으로 풀어냈다.
그래서 감탄사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사소한 초등학교의 일상일지도 모를 이야기에
어떻게 이런 깊고도 깊은 상상력의 나래를 달아 라쇼몽 같은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었을까?
볼수록 작가님의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지난번에 소개한 리얼 마래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황지영 작가님은 이런 아이들의 마냥 순수할 수 만은 없는, 사람이라면 가질 수 밖에 없는 깊은 감정의
변화와 갈등을 섬세하고도 수려한 느낌으로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왠지 배경을 그대로 성인으로 바꾸고, 에세이라는 거짓말을 해도 읽는 이로 하여금
속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고도 깊은 이야기가 거기에 있었다.
역시나 매번 이야기하는 내가 생각하는 창작의 화두이자 가치관이지만,
오히려 동화에서 더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이번에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이 이야기가 과연 아이들만의 이야기라고 유치하게 치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의 정서적 지능을 비웃어도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라는 생물에 대한 이야기고, 사람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회라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어쩌면 어른들을 배경으로 하였다면 결코 답을 내릴 수 없는 이 갈등의 결말을
오히려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함으로서, 해소하고, 치유하고, 일어서고, 이겨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가볍게 읽을 수 있을까? 보면서 다시 한번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던 작품이었다.
거듭 언급하여 이제는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러모로 우울한 세상이다. 얼마 전에 인재를 넘어서는
사고마저도 벌어져서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슬픔이 가득한 연말이었고 새해가 되었다.
우리는 그런 시간 속에서 슬픔과 아픔을 견뎌내기 위해, 작품의 아이들처럼 현실이 아닌 익명게시판에
진실이 담기지 않은 글을 배설하면서 어거지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힘든 시간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억지로 견뎌내는 시간을, 때로는 이 책을 통해 답을 찾고
거기서 성장하고 이해하고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그래서 시작은 우울했지만 그 끝은 찬란하고 행복한 2025년이 되기를 희망하며 올해 첫 리뷰를 마친다.
P.S 1 속편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 작품이다. 근데... 스포일러일지도 모르지만
소문을 들어보니 주인공 3인방 중에 유나만 빼고 나머지는 교체라고? 아니... 리뷰에서 차마 밝힐 수 없는
그분이 안나오면 내용을 어떻게 전개시키려고 그래? 그게 궁금해서라도 어서 읽어봐야 할 듯
P.S 2 일러스트의 느낌에서 조금 복잡한 기분이었다. 작중의 인물들의 건조한 감성을 표현하기에
백두리 작가님의 그림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기분 탓일까? 아니면 애매한 타이밍 탓일까?
나 왜 여기 나오는 애들이 오징어 게임 2에 나오는 영희 처럼 보이지? 시리어스한 중에 쪼끔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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