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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

죽이고 싶은 아이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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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이제 거장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꽃님 작가님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죽이고 싶은 아이다.


뭐 독서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는 생소할지 몰라도 집에 아이가 있거나 독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만한 청소년 문학의 가장 이슈인 작품이어서 사실 리뷰가 좀 난감하기는 하다.


이미 어지간한 작품의 감상이나 분석, 그리고 디테일들은 여러 블로거들과 비블리오 매니아에게

소개된 바가 있어서, 조금 늦은 감상을 적으면서 어떤 식으로 내용을 쓸까 고민해봤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주제넘을지도 모르겠지만 작품의 구조적인 부분과 매력에 대해서 객관적인 관점이 아닌

철저하게 주관적인 입장에서 한번 느낀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다소 편협하고 부족한 입장에서 쓰는 것에 이의가 있을지 몰라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임을 감안하고 봐주었으면 좋겠다.


일단 내용 소개는 최대한 간단히 하도록 하자. 이미 알 사람은 다 알테니깐.

주인공인 주연과 서은은 절친이다. 그리고 어느날 두 사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크게 다투었고

다음날 학교 공터에서 서은이 사망한 상태로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가장 의심되는 용의자인 주연을 둘러싸고 의심과 추긍을 하게 되고,

주연 역시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더듬어 그날의 진실에 대해서 상기하려 시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먹이를 문 미디어는 이슈를 입맛에 맞게 재단해서 무분별하게 확산하고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사건의 진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느낌으로 전개된다.


음... 일단 이 작품을 보고, 그 다음에 이 작품의 평을 보면서 느낀 첫번째 인상은...

모두다 이 작품에 대해서 기존에 보기 힘든 신선한 전개 방식과 최고의 미스터리와 반전,

그리고 10대들에게 주어진 가혹한 고통에 대한 부분들을 포커스로 맞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흠... 일견 동의한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면,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그런 보편적인 감상 역시도

어쩌면 작중에서 묘사되는 진실과 상관없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씩 짚어보자면, 일단 작품의 전개는 확실히 신선하다. 여러 시점이 교차되면서 거기서 발생되는

거짓과 진실이 교차하고 지나가듯이 언급된 단서와 증거들이 엮이면서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방식은

확실히 기존 우리 청소년 문학에서는 좀 보기 힘들었던 구성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독창적이냐고 하면, 또 그렇지는 않은 것이... 의외로 일반 소설들, 특히 르포 형식을

많이 취하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서는 은근히 자주 사용되는 형식이라서,

그 대상을 청소년들로 한 것은 나름 신선하지만 전개 자체가 아주 신선하다고 하기는 좀 애매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예상하기 힘든 미스터리와 반전... 하아, 이것도 좀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아마도 나처럼 한때 추리소설에 잠시 미쳐 있던 사람이라면,

읽으면서 어느 정도 진상의 윤곽은 보인다는 점을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정확히 누군지는 몰라도 무대의 조명이 일부러 비춰주는 이는 아닌 걸 이내 알아챌 것이다.

사실 무리도 아닌 것이 이미 이쪽 장르에서 너무 오래 사건과 범인의 의외성을 연구한 기성들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업적작을 달성했고, 그래서 신선한 것을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나 다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몰랐던 청소년들의 의외의 잔혹한 세계와 그 관계에 대한 언급도...

이게 예전이라면 동의하고 싶은데 요즘은 좀 그렇지 않은 느낌이다.


확실히 작가님의 필력이 필력이다 보니, 읽으면서 절로 피폐함이 넘쳐나는 문장에 매료되기는 하는데,

이게 청소년들의 고민과 아픔을 다룬 문제작이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요즘 보는 의외로 무서울 정도의 평온하게 전개되는 청소년 문제작들의 트렌드가 그런 생각을 반감하게 한다.


예를 들어보자면, 아파트 철문 밖에 전기톱을 든 사람이 서 있는 것은 무섭다.

하지만 그보다는 평소에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맨날 불화를 일으키던 아빠 재혼녀가 어느날 갑자기

저녁상을 차려주고 화해하자며 먹으라고 권하면서, 자신은 한술도 안뜨는 상황이라면?

왠지... 후자가 더 소름돋는 공포가 아닐까? 근데 요즘 청소년 작품들이 은근 후자가 많다.


그냥 평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 침범하는 SNS의 강박이나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별거 아니지만 사람의 정신을 말라 비틀어지게 만들어버리는 기괴한 은따라던가...


요즘 그런 쪽으로 특화된 장르를 보다보니, 오히려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아픔과 고민은 오히려

솔직해 보이고 차라리 해결할 여지가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무서운 세상이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간판으로 내밀고 있는 요소들이 주관적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다 그 정도는 아니어서 이 작품은 그냥 그런 것일까? 근데 그게 또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가지는 진정한 매력은 그 아이들이 말하는 지금의 현실, 당장 우리 주변에 있는

리얼 청소년들이 느끼는 거칠고도 정제되지 못한,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순수한 문체로

토해내는 리얼한 생동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이꽃님 작가님에게 정말로 넘사벽을 느낀 것은 작품의 문체와 어휘였다.

세신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잘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꽃님 작가님 작품들은 항상 보면 그 어휘가

어른이 청소년을 보는 것이 아닌, 청소년들 본인이 스스로 하는 말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게 말이 쉽지 은근히 만만치 않은 필력이다. 나 역시도 청소년이었기는 하지만, 시간이라는 무게는

항상 거기에 불필요한 더깨를 얹어서 그 시절의 순수함을 희석하고 늙은 퇴적물을 남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아이들이 정말 현실 속에 있는 우리 청소년들과 같은 느낌으로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날것의 느낌 그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진정한 청소년 문학의 정수이고 그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어쩌면 그래서 위에서 언급된 내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요소들 마저도 여기서는 처음 보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독특한 구성, 미스터리와 반전, 아이들의 고민 모두가 이 정도로 청소년들

본인들의 날것으로 쓰여진 경우가 드물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많이 고민했던 추리소설이라면 응당 해야 할 범인 찾기와 트릭 깨기보다

이 아이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고뇌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야 이토록 순수한 느낌의 아이들의 언어로 글을 쓸수가 있을까? 이미 늦었을까?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매번 작품들을 소개할 때마다 어른들에게도 보기를 권하는

작품들이 많지만 이번 작품은 더 그런 느낌이 강했다. 예전에 우리가 쓰던 정제되지 못하였지만 순수했던 그

언어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다면, 이 작품의 첫 페이지를 펼쳐보기를 권하고 싶다.


분명, 그 시절 후 잃어버린 우리의 언어와 생각들이 거기 있을 것이다.





P.S 근데 다 읽고 나서 되게 궁금한 점도 있기는 했다. 이거... 어떻게 속편이 나오는 거지?

사건으로서는 사실상 완료된 상황 아닌가? 더 나올 것이 없을텐데?

그런 의미로 되게 속편이 궁금해지는 작품이었다. 정말로 뭐가 나올지 모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봐도 될 것 같다.







#죽이고싶은아이 #이꽃님 #우리학교 #청소년소설 #미스터리 #교차식전개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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