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강하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김청귤 작가님의 올해 신작인 '달리는 강하다'이다.
한동안 안좋은 일이 많던 시기였고, 작품들도 뭔가 생각할 것이 많은 것만 집히던 시기에 간만에 접하게 된
작가님 성함과 작품명처럼 새콤하고 활기차기 그지 없는 작품을 한번 리뷰해보도록 한다.
일단 이 작품을 읽고나서 머리 속에서 딱 든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순례주택 in zombie land'
걸출한 두 작품을 동시에 모독하는 발칙한 짓이라 돌을 던지고 싶으신 것은 이해하지만,
주관적인 감상으로 정말로 저런 생각이 확 들었다. 소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자들의 세상 같은 순례 주택에
좀비떼가 나와서 거기 나온 등장인물들이 대응을 하기 시작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왠지 등장인물의 구도도, 순례씨와 수림이가 그대로 이 작품에서
끝순 할머니와 하다로 돌아온 느낌? 왠지 영상화를 시킨다면, 같은 배우가 그대로 배역을 맡으셔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즐거운 평행 세계의 연결 고리 같은 것을 느낀 것이다.
일단 내용을 소개하자면, 주인공 소녀 하다는 할머니와 같이 사는 당차고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좀비 사태가 터지고, 신기하게도 65세 이상의 노인들만 좀비로 변하는 상황이 확인된다.
정부에서는 사태가 발생한 도시에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봉쇄하지만, 하다는 같이 있던 할머니를
두고 갈 수 없어서 그곳에 남게 된다. 그리고 고립된 도시에 지내면서 자기 말고도 이런저런 이유와 사연으로
남게된 생존자들을 찾게 되고, 먹을 것을 확보하며 생존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사실 좀비 사태라는 전제가 범상치는 않지만, 내용은 표지의 느낌 그대로 발랄하기 그지 없다.
따지고 보면, 부모님의 이혼과 고립된 도시에서 언제 좀비로 변할지 모르는 할머니와 살아가는 하다의
처지가 만만치 않게 불행하지만, 하다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면서 상황을 이겨나간다.
그리고 주위에 자신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남사친 은우와 동네 꼬마 지민이,
갓난쟁이인 사랑이와 은혜 이모 등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동시에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해나가고
하루하루를 밝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보는 독자들에게 즐거운 청량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좀비 사태라고 하지만, 작중의 분위기는 마치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시골 동네에 내려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합숙하며 즐거운 일상을 보내는 느낌과도 다르지 않게 진행이 된다.
여기서 참 신선한 느낌이었다. 요새 좀비 사태와 같은 아포칼립스 소재들이 상당히 희화화 되는 것도 익숙해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우리 청소년들의 밝은 면모와 결합시켜서
마치 그들만의 즐겁고 행복하고 배부르고 따땃한 공동체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는 작품이 나오다니...
사실 청소년 소설을 내용으로 큰 범주를 나누자면,
어느 정도의 오락성과 흥미를 추구하는 작품, 아이들의 내면과 고민을 담고 있는 작품,
그리고 세상과 어른들과의 갈등과 해소를 다룬 작품, 이렇게 크게 3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는 느낌이다.
이 작품은 놀랍게도 이 3가지를 동시에 다 갖추고 있다.
좀비 월드에서 종횡무진하며 달리는 오락성과 흥미도 충분히 가지고 있고,
가족의 의미와 선의에 대한 고민 등을 다룬 내면의 이야기도 있고, 노인 문제와 소수의 고립에 대한
이 세상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담고 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이 포괄적인 내용들을 자연스럽고 무리하지 않게 녹여내다니.
작가님의 고민과 필력이 상당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단편 기획을 할때 생각하셨고
후기에도 적으셨던 김치 만드는 방법에서 엿보이는,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주제도 유쾌했다.
그래, 사실 사는 거 별거 아니다.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사람들과 같이 지내고,
작은 일들에 웃을 수 있으면 그게 사는 것이고 행복한 것이다.
그건 놀랍게도 좀비 월드에서도 다르지 않고, 오히려 평화롭고 안전한 지금보다도 더 그때가 좋을 수도 있더라.
그런 선명한 주제 의식이 제대로 와닿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청소년 소설이 아닌, 위에 장난처럼 언급한 순례주택과 같은,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담은 이야기였다.
너무 표지와 제목의 첫인상에 오해해서,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번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제 65살 멀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결코 남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살면서 뭘 해야 할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P.S 1 제목이 의외로 헷깔리게 만들 의도로 잘 지어진 것 같다.
스포일러라고 하긴 뭐하지만, 난 주인공 이름이 처음에는 달리인줄 알았다.
밝히지만 주인공 이름은 하다다. 강하다.
P.S 2 역할의 정체성 부분에서도 좀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작품들이었다면 하다는 남자 아이고, 은우가 여자 아이였을텐데,
이제는 역할이 뒤바뀌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구나. 그 변화가 오히려 좋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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