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소닉3
오랜만에 영화 리뷰로 돌아왔다. 2025년 들어서 처음보는 영화는 이번에 소개할 슈퍼소닉3였다.
원래대로라면 연초에 바로 개봉하자마자 보려고 했는데, 우리 아이들의 예상치 못한 독감 덕분에
일정이 미뤄져서 이번에야 겨우 보게 되었다. 눈물나는 독감...
오랜만에 보게 된 소닉의 스피디하고 신나는 이야기를 약간 작가적인 관점에서 본 리뷰를 시작해보기로 한다.
사실 소닉 시리즈와의 인연은 지난번에 소개한 모아나처럼 좀 꼬인 느낌이다.
예전에 첫 영화가 나왔을 때 아이들과 같이 보고선, 어른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그 특유의 스피디함으로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보았더랬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속편이 개봉했을 때는 보지 못하였다가, 이번에 3탄이 개봉하고 나서는
좀 짬이 나서 보게 되었으니, 한편 건너뛴 감상이 되어버렸다.
어디가서 무비 매니아나 소닉 팬이라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못할지도...
중간에 끊어진 이야기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워낙에 작품이 작품인지라 내용에 대해서는 그리
보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소닉은 여전히 명랑발랄하고 전작에 합류한 마일즈와 너클즈도 귀엽고 재밌는
요소를 추가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즐겁게 하였다.
그리고 결코 빠질 수 없는 악역, 에그맨 짐캐리도 여전히 그분 특유의 미워할 수 없는 독창적인
영역의 악역을 멋지게 소화해주었다. 여담이지만 난 짐 캐리는 악역에게 가장 괴이하고도 설득력있는 서사를
부여하는 배우라 생각한다. 예전에 리들러나 케이블 가이를 보면 딱 그런 느낌을 확신하게 된다.
아무튼 워낙에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고전 게임의 레전드였고, 영화에서도 전작부터 우려와는 달리
생각보다 탄탄한 스토리와 재미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보고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었다.
쿠키 영상을 보면 4편도 제작 확정인 모양인데, 소포모어 징크스는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 얘긴가보다.
뭐 그래서 영화만으로 보면 더 말할 나위 없는 재밌는 작품이라 할만한데,
이번에 리뷰를 쓰면서 조금 담고 싶었던 재미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어서 한번 적어보고 싶어졌다.
어떤 부분이었냐 하면, 의외로 단순한 즐거움을 주는 내용 깊숙히 담긴, 악당들의 서사가
작가의 입장에서 놀랄 정도로 풍부한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악당은 총 4명이다.
최초의 에그맨인 이보 로보트닉,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인 이번 작품의 빌런 제럴드 로보트닉
거기에 소닉과 대치하는 섀도우와 이보의 조수인 스톤이다.
얼핏 보면 그냥 이런 장르에서 적당히 나올법한 악당 조직의 구성원들인 것 같은데,
의외로 작품 속의 서사들을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은 점이 이색적이었다. 하나씩 살펴보면...
이보는 원래 소닉의 아치 에너미다. 가장 전형적이면서 보편적인 악당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욕심과 야망, 그리고 그걸 뒷받침할 과학기술과 권력,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손에 넣으려 한다.
그런데, 그 세상이 만약에 부숴져버릴 수 있다면? 그 가정에서 그는 상당히 독특한 입장이다.
'가질 수 없다면, 지키기라고 해야지.'
의외였다. 어지간한 악당들이 욕심많고 파멸적이어서, 주인공과 대립하다 결국 모든 것을 잃는
순간이 되면 내가 못가질 세상을 파괴해버리는 것이 통상적인 것에 비해서,
적어도 이보는 이 세상에 욕심을 가지지만, 그래서 소멸과 파괴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찌보면 그또한 악당의 행동 과학에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멸에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는 것에서는 소닉과 코드를 같이 한다.
그에 비해 제럴드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그는 이 세상은 바라지 않는다.
과거 정부 시설의 사고로 잃은 손녀 마리아가 없는 세상은 없어져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하고
그런 세상 자체를 응징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보와 똑같이 생겼지만 정반대의 입장인 것이다.
그래서 대단히 신선했다. 얼핏보면 이보와 똑 닮은 모습에 개그도 비슷한 수준이라 그냥
어설픈 노인 악당으로 생각했던 인물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앗아간 세상에 대한
절망과 응징이라니. 솔직히 이 작품에서 가장 반전이었다는 생각이다.
섀도우는 얼핏보면 제럴드와 코드를 같이 한다. 그는 제럴드의 손녀인 마리아만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 주었고 그런 마리아가 없는 세상에 덧없음과 무가치함을 느낀다. 그래서 제럴드의 편에 서서
세상을 파괴하는 일에 동참한다. 하지만 그것이 해답이 아닌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래서 소닉과의 대립에서 섀도우는 훨씬 더 능숙하고 강력한 힘을 보여주지만
내면의 흔들림을 진정하지 못하고, 결국 힘이 아닌 의지와 설득에 의해 소닉에게 굴복하고 자신의 입장을 바꾼다.
묘한 울림이 있는 장면이었다.
얼핏보면 흔한 소년만화의 연출과도 같은 느낌이지만, 이것이 소닉의 보호자인 톰이 했던 말,
'옳은 선택만이 있다'는 말과 어울어지면 상당히 깊은 울림을 던져준다.
사실 선과 악은 상대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세상을 지키려는 이보와 손녀를 앗아간
세상을 벌해야 한다는 제럴드에게 쉽게 선과 악의 잣대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쉬울까?
그런 복잡한 관념에서 결국 존재하는 것은 근본적인 선과 악이 아닌, 어떤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을 선택한 것이
옳은지에 대한 스스로의 자답이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은 그걸 말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스피드홀릭 축생들의 배틀에서 논해질 수준의 선악 논쟁이란 말인가? 웃픈 감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스톤도 상당히 흥미롭다. 전작에서도 그렇기는 했지만 묘하게 악당 축에서 해야 할 일들 충실히 다하면서
그러는 와중에 사람들도 챙기고 조직 내 살림 돌보는 엄마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최후의 상황에서 이보의 마지막 당부를 듣고 후일을 기약하는 오카에릿 캐릭터이기도 하고.
이거... 생각해보면 예전에 고전 판타지에서 모험을 떠난 용사를 기다리는 마을 처녀 포지션 아닌가?
근데 그걸 저 아저씨가? 하하하... 악당이라지만 3편 한정으로는 뭐 하나 나쁜 짓도 한 것도 없고,
그냥 살림만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뻔하고 이보랑 브로맨스 찍은 이 MZ한 악당에게도 격한 신선함을 느꼈다.
아무튼 이렇게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서사를 가진 악당들이 등장하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어우러지며 이야기의 든든한 배경을 만들어내는 부분이 뭔가를 창작하는
입장에서 신기할 정도로 조화롭고 아름답게 보였다.
마치 연극 무대에서 주연들을 최고로 빛나게 해주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구르는
숙련된 고참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그런 느낌? 하나의 작품이 빛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배경과 악당의
서사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나중에 많이 영감을 받을 것 같다. 요즘 트렌드가 모호한 경계와 거리라는 측면에서
창작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높은 수준을 요구받는 세상이지만, 이런 식의 복층으로 구성된 입체적인 인물의
서사가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고 계속 재밌게 이어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 하루의 창작 영감 100%를 충전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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