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조앤 롤링의 성공담을 좋아했었다.
이민, 이혼, 육아와 병행한 근로, 그 와중에 카페에서 힘겨운 글쓰기, 수많은 투고 반려.
그리고 마침내 세상에 인정받은 해리 포터.
인간이 무언가를 꿈꾸면, 그것은 그 어떤 가혹한 환경에서도 반드시 할 수 밖에 없다는
나태한 글쟁이들에 대한 교훈으로 깊이 새겨 듣고 되새겼었다.
문득, 아이들의 책을 정리하면서, 조앤 롤링의 위인전을 보며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그 소녀를 만났던 시간이 떠올랐다.
회사에서 조금 힘든 시기가 있었다.
일과 인간 관계도 그렇지만, 문제는 상당히 먼 곳으로 출퇴근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고된 경험이었다.
새벽에 일찍 잠을 깨서, 몇시간 거리에 있는 일터로 지하철과 광역버스를 세번 갈아타고 가서
정신없이 업무를 챙겨야 하는 일은 기존에 하던 업무와 비교해 확연히 힘들었다.
몸도 많이 고되었고, 정신적으로도 지쳐갔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의외로 출근길의 시간이었다.
무가치하고 잉여한 출근 시간은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저, 교통수단에 실려져 있을 뿐이고, 폰으로 뭘 보는 것도 한계가 있는 시간 속에서
많이 피폐해져던 것 같다. 공허하고 지루한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통이 한동안 포기하고 있었던 창작이라는 내 작은 소망에 불을 붙였다.
솔직히 그것 밖에 할 것이 없었다. 멍한 머리로 지친 몸을 이끌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상상 뿐이었고, 그 상상 속의 이야기를 가능하면 날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닌,
날 행복하게 하는 걸로 채워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때 생각치도 못한 만남을 하게 되었다.
내 머리 속에 우리 아이와 닮은 한 아이가 나타났고, 나완 좀 다를지 몰라도 어처구니없는 곤경에 처하였다.
하지만, 그 발랄한 아이는 나처럼 피폐해지지 않고 상황을 바꾸기 위해 행동했다.
내가 출간한 이야기의 주인공, 시현이는 그렇게 나에게 짠하고 나타났고, 나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조용히 바라보며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아이와 만났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참 씁쓸한 미소가 드리워진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난 그때 정말 많이 힘들었고
스스로만 그걸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난 것은, 일종의 기적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나는 이 이야기를 쓰며 공허한 삶에 한가닥 의미를 찾았고,
그것이 내 우상 조앤 롤링과 마찬가지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책으로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그때처럼 공허한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여전히 일은 고되지만, 그래도 조금은 적응하고, 과거의 시간을 반추해 스스로를
괴롭히려고 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더 행복한 길도 찾았고.
요즘 더위가 절정을 부려 기운이 빠지면서, 창작에 대한 열의도 조금 약해져서일까?
문득 그때의 시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걸 떠올리니, 마치 입가에 머금은 매실처럼 기운이 나는 것 같다.
오늘도 나에게 와준 나의 사랑스러운 뮤즈 같은 아이에게 감사하며
의미없는 글이라도 조금은 끄적이며, 작가라는 스스로 바라는 소명을 걸어갈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고마워, 나의 뮤즈야. 네가 나의 해리포터였어. 항상, 그 행복한 마음으로 내 머리 속 창작의 공간에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렴. 항상, 너를 응원하고 지켜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