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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Oct 13. 2024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지난번에 셰이커를 읽고나서 이희영 작가님의 글에 대한 여운이 이어졌다.

그래서, 지난번에 조금 속독으로 읽었던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를 다시 읽고 그에 대한

리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작품은 주인공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우리의 주인공은 예전에 터울이 많이나던 형을 잃고 그 아픔을 끌어안고 사는 집에 살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 입학해서 그 형의 그림자를 느끼게 된다.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선생님들의 이야기에서 들은, 어쩌면 형이 메타버스 세계에서

접속했을지도 모르는 게임 가우디를 알게 되고 거기에 형의 아이디로 접속했다가 생각치도 못하게

형이 남긴 비밀의 집과 그곳에서 형을 기다리고 있던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비밀의 집과 형을 기다리던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형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인공은 그 비밀에 한걸음한걸음 다가가며 가슴이 저미는 진실에 가까워진다.


음, 뭐 이렇게 말하면 스릴러 소개처럼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아주 청량한 청춘의 이야기다. 그리고 단순히 나이브한 것만은 아닌 복잡하고 어려운

청춘의 고민과 감정도 충실하게 담겨져 있어서 현실과 격리되지 않고.


최근에 대세라는 이희영 작가님은 역시 이런 청춘의 이야기를 마치 본인이 그 나이대에 

당사자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어색하지 않게 풀어내는 것이 특기인 것 같다.

그래서,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어느새 몰입해서 학창시절로 돌아가 있는 나 자신을 느끼고 놀라곤 한다.


그리고, 단순히 그 나이대의 감정만이 아닌,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듯한 메타버스의 세계와

거기에 남겨진 오래된 데이터와 정보로 이루어진 굿즈에 대해서도 익숙하게 사용해서 결코 촌스럽지 않은

최신 버전의 신상을 보는 듯한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고.


그래서 이 작품은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지만, 마치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일러스트가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 비쥬얼 노벨을 보는 것 같은 환상을 느끼게 해준다.

작중에 그려지는 나와 그 사람만을 위한 작은 집은 마치 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리고, 오래전 있었던 추억과 회한을 담은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소년의 행보는

보면서 전개를 느슨하지 않게 해주는 긴장감을 유지해주고.


어쩌면 스릴러 매니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아쉬움이 남을지도 모르겠지만 

닫혀진 문을 열고 거기에 남겨진 자신과 닮은 형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동생의 이야기로서 이 정도의

긴장감은 딱 좋은 밸런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중에서도 가장 읽는 독자들의 가슴을 아련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나 이뤄지지 못한, 달콤하지만 시린 첫사랑의 이야기일 것이다.


아마도 독서를 좀 하는 독자라면 중간에 대충 복선과 반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조리며 그 이야기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에 네타하기 곤란한 반전의 키워드가 되는 그것을 보며 탄식을 내지를 것이다.


어째서 항상 첫사랑의 이야기는 이리도 아름다우면서도 시리게 가슴을 아리는 걸까?

지난번 셰이커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회한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첫사랑의 시린 맛은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남을 여운을 새기고 무심하게 돌아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나는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책표지에 나오는 삽화처럼 내 시야에 보이는 그 집의 환상과 함께 

여름의 귤의 달콤하고 시린 맛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운 공허함이었다. 아마도 예전에 영화 러브레터에서 도서실에서 스치는

커튼 사이로 보이던 이츠키의 모습과 서표에 그려진 그림을 보았을때 느꼈던 그 느낌이었다.


그 시절의 청량함과 아련함을 여전히 마음 속에서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마도, 결코 후회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여름의귤을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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