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우는 기술
오늘 소개할 책은 수상한 시리즈와 구미호 식당으로 유명한
박현숙 작가님이 쓰신 잘 싸우는 기술이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던 수상한 시리즈의 작가님의 책이기는 해도 이제 고학년이 된 우리 아이들이
보기에는 많이 저학년 대상 동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심결에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보다 아이가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 좀 눈여겨 보게 될 내용이 있다는 말들이 있어서 한번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알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주인공 소년 도룡이가 학교 바자회에 집에서 굴러다니던 출처를 알 수 없는
오래된 호랑이 그림을 내놓으면서 시작된다.
사실 도룡이는 그걸 내놓을 생각이 없었는데, 친구 수용이의 말에 그걸 내놨고
별로 인기가 없던 그 그림을 반에서 제일 껄끄럽게 생각하던 소녀 성은이가 500원에 사고 나서
어쩌면 이 그림이 오래된 유물이라 엄청난 가격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 말을 듣고 혹시나 자기가 집안의 가보를 엄마 몰래 팔아버린 것이 아닌가 겁에 질린 도룡이는
그 그림을 돌려받으려고 하지만, 욕심이 많던 성은이가 그걸 절대로 곱게 주지
않을거라고 친구 수용이가 말한다. 그러면서 수용이는 그걸 돌려받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성은이가 먼저 그림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도룡이는 수용이의 말에 따라 성은이의 주변을 맴돌면서
성은이에게 호의를 살 방법을 궁리하고, 수용이의 납득하기 어려운 조언을 따르고,
동시에 집에서는 엄마가 없어진 그림을 찾는 것을 보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말은 따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지만,
아이들 동화치고는 제법 놀랄만한 반전이란 것만 말해두고 싶다.
사실 생각보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아이들 시점에서 벌어진 실수, 고민, 갈등, 해법 모색, 그리고 결말로 이어지는
아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전개의 작품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던 이 동화가 생각보다 고민할 거리를 많이 안겨준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아이들 세계에서 벌어지는 가스라이팅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세계가 결코 단순하지 않고
그 안에 수많은 갈등과 복잡한 인간관계가 이어지고, 때로는 좋지 못한 일들도 벌어지는 것은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느끼는 것은, 그런 아이들의 세계에서 단순한 폭력이나 폭언 같은 직접적인 행동보다
불링이나 가스라이팅같은 간접적이고 교묘한 형태의 좋지 못한 일들이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위험성을 이 책은 동화의 눈높이에서 자뭇 유쾌한듯 하지만 부모늬 입장에서는 심각하게
볼 수 밖에 없게 그려내고 있다. 작중에서야 결론적으로 주인공 본인에게도 나쁜 결과는 아니었고 오해도
풀리기는 했지만 이 작품의 숨겨진 빌런이 저지른 행동을 보면서, 혹시 우리 아이도? 라는 고민을
해보지 않을 부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만, 엄연히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존재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존재에게 우리 아이가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속터지게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 있으려나?
단순해 보이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 작품은 아이들 세계에서 자칫
사소하게 치부될 수 있는 아이들 간의 가스라이팅에 대한 무서움과 파급력을 절제된 느낌으로 잘
묘사한 것 같아 동화이자 동시에 르포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책을 읽다보면 묘하게 심각한 갈등과 대립을 다룬 고학년 아이들의 작품은
오히려 순수함과 인간 승리를 추구하지만, 순수하고 해맑다고 생각한 저학년 아이들 대상의 작품에서
되려 인간에 대한 고뇌와 사회의 부조리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깐 말이다.
아무튼 15분이면 다 읽을 수 있지만, 읽고 나서 1시간반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 이 동화 속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모든 부모님들에게 말하며 리뷰를 마친다.
#잘싸우는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