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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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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소개할 작품은 야기사와 사토시 작가의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이다.

예전에 모리카와 서점의 나날로 출판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복각판으로 재출시 되어 나온 작품이다.


오래된 종이 향기와 블렌딩한 커피 향기가 풍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힐링 소설의 세계를 오늘 한번 소개해보도록 하자.


작품은 주인공 다카코가 애인에게 버림받고 실의에 빠져 있다가 우연히 어린 시절 자기를 예뻐해준

외삼촌의 연락을 받고, 헌책방의 성지로 불리는 진보초에 위치한 헌책방으로 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상처를 받은 다카코는 그저 멘붕한 기분으로 헌책방에서 살게 되고

처음에는 곰팡내나는 책 더미에 두통을 느끼지만,

점점 그곳에서의 삶에 적응하고 응어리지고 아물지 않는 상처를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낡은 책들에 숨겨진 문학의 향기에 취하며 성장하고

나중에는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 나간다. 내용은 딱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다.


사실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조금 고민이 많았다.

애초에 워낙에 힐링 소설로 명성이 자자한 작품이라 굳이 내가 언급할 내용은 다른 리뷰어들이나

독서가들에게 이미 많이 다뤄져서 재탕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리뷰에서는 작품의 소개나 힐링 팩트보다는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사적인 감상과 이 작품이 풍기는 분위기를 위주로 적어보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지만 헌책방은 나에게 있어서 보물 창고와 같은 곳이다.

번쩍번쩍한 신간은 감히 손대서 더럽히기 망설여지는 것에 비해, 헌책은 왠지 모르게 친숙하고 정감이

있어서 마치 누구라도 자유롭게 읽어달라고 권유하는 것 같다.


그래서 솔직히 알라딘보다는 보수동 같은 곳의 오래된 헌책방에서 먼지 속에 파묻힌 오래된

보물들을 찾아서 감동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거기 산미가 진한 블렌드 커피까지 곁들여진다면 천국이 따로 없고.

이 작품은 그런 내 보수적인 취향을 만족시키는 최고의 작품이었다.


사실 의외로 일본 쪽 작품들이 이런 묘하게 오래된 풍미의 진보초를 배경으로 하는 헌책 이야기에

묘한 경쟁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과거에 여러번 경험한 다양한 형태의 헌책방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보면서 단 한번도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단순히 내가 그런 곳을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래된 책이 주는 정적이고 차분해지는 분위기. 그리고 고독하지만 무한히 넓은 세계.

거기에 자신의 취향을 만났을 때, 마치 나밖에 없는 세계에서 또 다른 존재를 만난 것 같은 기쁨.

이런 독서가들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즐거움이 그곳에서는 제대로 발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지금의 시대는 독서의 시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다 책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열심히 읽었다고는 자신하지 못하고,

그나마 읽는 책들은 뭔가 자기 계발이나 재테크와 같은 뻔히 보이는 사람만을 배불리는 것들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하고 봐도, 유감스럽게도 쓰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을 제대로 읽는 사람은 없는

텍스트의 사막이라고 평하고 싶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모래알처럼 많은 텍스트는 넘쳐나지만,

그것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눈여겨 보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런 시대이기에, 나는 여기서 보여주는 책이 본연의 책으로서 읽혀지고 공감되고

사람의 마음에 감동과 회복을 주는 이상의 공간에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힐링을 느꼈다면, 그건 단순히 주인공 다카코가 멘탈을 회복하고

일어서는 일반적인 과정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을 있게 만든 지극히 편안한 공간,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회복하고

텍스트로 인해 치유받고 그 속에서 추스리는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학교 교과서도 책이 아닌 뷰어나 패드로 전환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기술의 발전에 맞춰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동시에 막연한 서글픔도 느꼈다.


어쩌면 우리는 화씨 451이 그려낸 책이 사라진 시대를 강제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향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식의 플랫폼은 기술로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책이 만들어내는 그 분위기와 느낌은 결코 기술로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부질없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소리치고 싶다.


부디, 구닥다리 페이퍼북일지라도 그것을 손에 쥐고 넘기며 보던 그 느낌을 다음세대들이 포기하지 말기를...

의미없을지는 몰라도 그 느낌만이 줄 수 있는 힐링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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