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3
골목.
그곳은 박동과 동작이 있어 따뜻하다.
인기척이 전하는 온도와 더불어
고양이와 강아지의 누긋한 재롱과
마른 겨울이파리의 파삭한 표정까지
이 골목의 주인이다.
의도하지 않은 주제로 담기는 동작.
찰나를 포착한 것이 아니라
포착에 찰나가 끼어들었다.
느긋하게. 느리게. 천천히를 누릴 때
많은 이야기도 따라오는 골목.
나에게 골목이란,
감성과 이성의 균형감각을 배우는 곳이다.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덕분에
귀한 추억이 된 20180111. 오후.
[골목을 잊은 그대에게]중에서. 김수경
#부산골목 2018 #다정한 골목지도
골목에는 박동이 있다. 거창한 도시의 엔진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인기척이 만드는 은은한 진동 같은 것. 그곳엔 붉은 호흡이 피우는 동작이 있어 따뜻하다.
내가 사랑하는 골목의 주인들은 화려하지 않다. 담벼락 아래 몸을 웅크린 길고양이,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의 누긋한 재롱, 그리고 발길에 채여 파삭거리는 소리를 내는 마른 겨울 이파리의 표정까지.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하나의 '골목'이라는 지도를 완성한다.
2018년의 어느 추운 겨울 오후였다. 나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골목의 수직과 수평이 만드는 미학을 쫓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은 주제들이 내 카메라 렌즈 안으로 들어오던 그때,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뚫린 벽면 사이로 고개를 내민 주황빛 고양이 한 마리.
나는 그 순간을 포착하려 애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찰나가 나의 시선 속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느긋하게,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그 공간을 누릴 때에야 비로소 말문을 여는 골목의 이야기들.
그날의 고양이는 나에게 그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러 온 전령사였다.
나에게 골목이란 단순히 길이 아니다. 그곳은 감성과 이성의 균형감각을 배우는 학교다.
차가운 시멘트 벽면(이성)과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생명의 온기(감성)가 공존하는 곳. 버려진 것들이 세월의 옷을 입어
업사이클링되는 과정처럼, 골목은 낡음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눈을 갖게 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골목을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닿는 지면의 단단함과 코끝을 스치는 찬 공기의 비중을 재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성은 벽돌의 질감과 수직의 미학을 계산하지만, 감성은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온 마른 잎사귀의 흔들림에 마음을 속절없이 내어주고 만다.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덕분에 나의 2018년 1월 11일은 평범한 겨울날에서 '귀한 추억'으로 환치되었다.
찰나가 끼어든 그 사진 속에서 고양이는 뚫린 벽 너머로 나를 응시하며 묻는 듯했다.
그때도 지금도, 사실 답을 못하겠다. 아직 심장이 뜀박질하는 울림이 없어서다. 글쎄 그냥.. 채우기도, 비우기도, 애써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가 아닐까?
골목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속의 생명들은 각자의 속도로 변해간다. 그때의 고양이는 이제 어느 집 담벼락 아래에서 더 느긋한 하품을 늘어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찰나'가 되어 생의 균형을 선물하고 있을지도.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그 길에도, 어쩌면 당신의 일상에 끼어들 준비를 마친 찰나의 온기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골목이 건네는 다정한 인사에 귀를 기울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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