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보다 아름다운,

2018.01.13

by 종이소리
[골목을 잊은 그대에게]중에서

색채의 도시,

멕시코 산루이스의 어느 골목 같다.


요란한 벽화를 거부하던 이유를

바로 여기, 이 골목에서 만났다.


낡고 노약한 골목이라도

그 고유의 존재와 풍경을 존중하고

불편하고 위험한 구조를 개선하며

주변과 어울리는 색채로 단장하는 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 마을만의 가치가 아닐까?

#부산골목 2018 #다정한 골목지도


내가 골목에서 주저 없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바로 이런 환희를 만날 때이다. 다시는 찍을 수 없는 풍경. 시간이 지나가는 순간을 만날 때.


골목의 시간은 정지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하게 흐르고 있다.


붉은 벽돌이 오후의 햇살을 머금어 짙은 주황빛으로 타오를 때, 그 옆을 지키는 푸른 그림자가 길게 몸을 뻗어 서로의 영역을 확인하는 찰나. 이 색채의 대비는 인위적인 벽화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겹'이다.


요란한 그림으로 낡음을 가리기보다, 그 낡음이 가진 결을 존중하며 주변과 어우러지는 색을 입히는 일.


그것은 업사이클링 작가로서 내가 천을 짜고 만지는 마음과 닮아 있다. 세월에 마모된 모서리를 다독이고, 그 마을만이 가진 고유한 온도에 맞춰 색을 단장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존중'이자 '재생' 아닐까. 사진 속 고양이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존재의 환희'였다면, 이 붉은 골목이 내게 보여준 것은 '시간의 환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18년의 어느 오후, 그 빛과 그 온도는 이제 나의 프레임 안에 머물며 영원한 마을의 지도가 된다.


나는 그렇게 골목을 걷는다. 낡고 노약한 담벼락이 건네는 다정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이 지나가는 그 눈부신 찰나를 또 만날 거라는 두근거림으로. 그리움을 채우는 오후를 그런 설렘으로 누릴 수 있으니까.


#부산골목 #산루이스의색감 #시간의기록 #골목을잊은그대에게 #브런치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