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은 떠나고 꽃은 피고

2018.12.24

by 종이소리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한 40년 됐지요.

그때 이 집주인이었던 분들에게

두 아이가 있었는데 아마 열 살?

그 정도 또래였을 거요.


어찌나 울던지..

내 마음이 안 편하더이다.


그래서 언제든 오고 싶을 때

놀러 오라고 했더니

젖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 그래도 되냐 묻데.


그래서 걱정 말고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놀러 오라고 했지.

그리고 벌써 40년이 지났네.."


그래서 진짜 다녀 간 적 있느냐고 여쭈었다.

사람 좋은 인상의 아저씨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그러엄! 몇 번이고 왔었지요!

서울로 이사 가서 그렇지

부산에 살았더라면 아마 자주 왔을 거요.


올 때마다 으찌나 좋아하던지..

갈 때마다 또 와도 되냐 묻곤 했지.


한 2년 전인가?

그때 다녀가고는 연락 없었소.

아 참! 내 정신 좀 봐,

전화해준다고 해놓고서!!"


그리고는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여기 태양슈퍼..

아유~ 기억하시네요?

잘 지내시지요?

...... 저희야 잘 지내고 있지요.

그런데.. 좀 서운한 소식을

전하게 되었구려.

.........

예, 그렇게 됐네요. 결국...

어쩌나.. 그전에 한 번 다녀 가시는 게..

그래요... 그래도 연락은 합시다."


힘 없이 전화기를 닫던

아저씨의 마지막 인사는

습기 어린 목소리였다.


이럴 때는 어떤 말이 어울릴까?

어떤 동작이 적당할까..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음료 냉장고로 도망을 가야 했다.


아무거나 꺼내도 될 것을

브랜드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늑장을 부렸다.


서너 번의 숨을 내 쉬고서야

익숙한 캔커피 두 개 꺼내 들고

아저씨 앞으로 갔다.


"아저씨 이 커피 맛 괜찮아요.

제가 인사로 하나 사 드릴 게요."


그리고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사래를 치셨다.


" 선물은 내가 줘야지요!

덕분에 잊고 있던 책임을 찾았는데!

내가 고맙소."


미안하고 황망한 눈으로

계산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주머니에 잠긴 손을 덥석 가두시며

말씀하셨다.


" 내 커피 값, 사진으로 대신 줘요.

우리야 사진 찍는 법도 모르고

뭘 찍어야 할지도 모르는 늙은이들이라

안타까웠는데 대신 우리 동네

잘 좀 담아 줘요.

그걸로 퉁 칩시다. 됐지요?"


그리고는 곁에 계시던 부인께

안채 마당과 집 안을 구경시켜 주라는

주문을 하셨다.


마당에 들어 선 순간.

나도 몰래 축축하게 젖은 눈이 되어

40년 전 마당에서 울먹이던

아이들의 눈빛을 만나야 했다.


나도 그 아이들처럼

그 마당을

떠나기 싫어졌으니까..


"잘 가요, 서대신동 5 구역."


그리고 수고하셨어요.

부산 서구 서대신동 2가 471번지.

그 집과 추억들.


특별히 고맙습니다.

태양슈퍼 아저씨, 아주머니.


서대신동에서

마지막 성탄절을 보내지는 못하시겠지만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름에 장미꽃 한창일 때 찍으면

더 좋을 텐데.. 지금은 쓸쓸해.."


주인아주머니의 안타까운 말씀에

여름에 또 와서 찍겠다며

손등을 쓰다듬으며 약속드렸었다.


그 약속,

무더운 6월의 어느 날 지켜냈다.

속절없이 화사하게 핀

장미가 너무 예뻐서

나는 눈물꽃을 왈칵 피우며

서럽게 웃어야 했다.)

#서대신동 5 구역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