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골목 수호신이예요

골목동화 2018.10.23

by 종이소리

시간의 더께는

지상 최고의 예술이다.


그 진리를 깨우쳐주며

순식간에 발걸음을 멈추게 한

풍경 하나.


숨이 막힐 듯한 압도적인

눈빛이 잡아 끄는 그곳은

시멘트 화단벽이었다.


오른쪽으로는 어느 집 대문이,

왼쪽으로는 오르막 길이 있는

중앙 지점 조막만 한 터를

화단으로 꾸민 사람들.


말끔하게 처리할 수 없는

형편이었을까, 아니면

미장 솜씨가 없는 사람이었을까.

그마저도 이야기 무늬로 새겨진

골목 수호신이 아닐까.


나는 그 벽에서,

황금뿔 산양을 보았다.


서둘러 원본 파일을

포토샵에 불러와서

내게 말을 걸었던

그 모습을 강조했다.


바위와 절벽으로 이뤄진

험준한 산악 지역에 살아가는,

환경부 멸종위기의

야생생물 I급 천연기념물,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산양의 위엄을, 소중한 가치를

황금색으로 칠해 주었다.


무언가..

이야기를 담아주어야겠다는

소명 같은 의지가 솟았다.


그렇게 해 달라는 간청처럼 느껴진

이 멋진 풍경을 발견한 건

사실 내 개인의 영광이었다.


세상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동화,

세상 어디서도 태어날 수 없는

이 길만의 고유한 가치,


"우리 골목에는 수호신이 살고 있어요"


그 수호신, 황금뿔 산양이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며

이방인을 불러 세운 동화의

마지막 문장.


"이제 곧 이곳은

허물어지게 될 운명이지만,

이 길에 살았던 많은 걸음들이,

내내 씩씩하고 당당한 미래이기를,

더 건강하고, 더 많이 웃으며

행복하길 바랍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