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라는 무늬.

2016.12.18

by 종이소리
2016년 겨울의 서울역 거기.김수경

어떤 사람이 물었다. 사진을 어떻게 찍냐고. '사진 찍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그럼 뭐냐고 그가 다시 물었다.


"고백을 기록하는 거예요."

"고백이요?"

"내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해, 비, 바람의 동작들을
단 한순간도 놓칠 수 없어요.
해가 지나는 시간마다
사물의 표정이 다르죠.

또,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이,
비단 같은
꽃잎 한 장 끼워 넣거나,
늙은 잎 무리를 깔아 주거나
빗방울과 눈송이를
데려오기도 해요.

장소는 하나인데
시간마다 계절마다
순간순간 표정이 달라요.

근사하지 않아요?
그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요.

살아있으니까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 무수한 연출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제 눈이
그 순간을 발견한
찰나만큼은요."
2016.서울역. 김수경

그 무수한 연출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첫사랑을 마주한 듯, 설레는 순간마다 터져 나오는 고백을 숨김없이 담아내는 그 다정한 작업이.

그래서 내게 사진이란, 뜨거운 고백의 침묵된 언어이자 결코 바래지 않을 부동(不動) 추억이다.

2016.서울역 . 김수경

겨울의 서울역을 담은 사진들을 보며 그가 물었다.

"수천만 원이 드는 장비와 포토그래퍼라는
제 자격으로 찍은 작품보다, 휴대폰으로 담은
당신의 사진이
더 오래 눈길을 머물게 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피사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보여서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타고난 감각'이죠."


자격의 문턱을 넘어,

'감각'을 마주하는 일


촬영 자료가 담긴 폴더를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자격'을 묻는다. 어떤 학위를 가졌는지, 어떤 전문가의 인정을 받았는지, 이름 뒤에 붙는 수식어가 무엇인지 말이다.


물론 그 모든 시간의 축적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광활한 숲을 걷다 보면, 그 어떤 견고한 자격증보다 우선하는 본질적인 빛을 마주할 때가 있다.

바로 '타고난 감각'이라는 이름의 재능이다.


​이 재능은 결코 오만한 천재성이 아니다. 무언가를 지독하게 하고 싶어 하는 열정, 사물의 이면을 기어이 들여다보는 꾸준한 호기심, 그리고 그 발견을 두려움 없이 현실로 옮기는 추진력이 한데 어우러진 결정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은 말했다.

​"패션은 시들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Fashions fade,
style is eternal)."


여기서 말하는 스타일이란 결국 자격증이 아닌, 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감각의 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가끔 '전문가'라는 무게에 눌려 스스로의 감각을 의심하곤 한다.


그러나 예술의 진실함은 피사체와 사랑에 빠지는 그 찰나에 존재한다. 내가 찍은 사진이, 내가 짠 섬유 조직이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도록 머물게 한다면, 그것은 기술의 정교함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의 온기' 때문이다.


철학자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자신을 믿는 것이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이다"
라고 우리를 다독였다.

​그러니 기억하자.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보고 가슴이 뛴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이다.


이 찬란한 재능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당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잠재력을 찾는 여행 중에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발견하게 될 보물과도 같다.


나 또한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그리고 렌즈 너머로 고백한다.


'나는 전문가보다,
우주가 지닌
저마다의 무늬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여행가이고 싶어.

2016.서울역. 김수경

세상은 늘 정답인 방향을 찾으라 재촉하지만, 내게는 방향이 맞다 틀리다는 중요하지 않다. 삶이라는 지도 위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들의 안부를 묻지 않고 지나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가 본 길보다

가보지 않은 길이 더 많다


바로 그것이 나를 숨 쉬게 하고 다시금 렌즈를 닦게 만드는 유일한 동력이다. 미지의 길은 결핍이 아니라, 앞으로 채워나갈 무한한 가능성의 여백이기에.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고착된 시선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는
타고난 감각의 여행가로
살고 싶다.

​도전하는 응용의 실현이 때로는 고단할지라도, 나의 감각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고 걸어온 길.


내가 포착한 그 '부동(不動)의 순간'들이 모여, 어느덧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작품과 함께 나만의 무늬가 될 테니까.


그래서, 어느 하늘 아래에서 이 글을 보고 있을 이름 모를 어느 '박동'과, 서로의 온기보다는 적당한 거리가 더 익숙해진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도전하는 당신의 그 뜨거운 박동을 응원합니다.


당신은 이미,

존재만으로도

하나뿐인 예술이니까요.

2026년 1월 9일 김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