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1
"아가, 넌 어떤 게 제일 맘에 드니?"
"이거!!"
"왜?"
나도 이쁘니까 좋아.
그런데 어른들의 세상에는
"이쁘니까 좋아!"
할 수 만 없는 것도 있구나.
전시장의 공기는 정적이었고, 벽면에 걸린 조각들은 저마다의 심오한 해석을 기다리며 고요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 고결한 고요를 깨뜨린 건, 어느 이름 모를 아이의 명랑한 손가락이었다.
"이거!!"
망설임 없는 확신. 아이의 대답은 전시장 안의 그 어떤 평론보다도 힘이 세고 명징했다.
'이쁘니까'라는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잃어버린 가장 원초적인 진실이 담겨 있었다. 뜨끔했다. 마치 오랫동안 숨겨온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들켜버린 것처럼.
나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 벽면에 걸린 작은 소품들을 다시 마주했다. 작가의 고뇌와, 큐레이터의 의도와, 예술적 가치라는 이름의 복잡한 층위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과 교만을 반성하며 그저 아이처럼 '이쁘니까'만 챙기고서.
그 무거운 껍질들을 단번에 걷어내고, 오로지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제 온기를 내던진 아이를 따라, 나 또한 이제껏 감춰온 솔직한 심장의 뜀박질에 발을 맞추며 느릿하게 전시장 안을 걸었다
그 모습이 못내 부러웠던 건, 남들에게 근사해 보이고 싶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잘난 척을 늘어놓던 나의 '가식'들이 못 견디게 부끄러워서였다. 겹겹의 가식으로 포위된 채, 정작 내 안의 진심은 까맣게 잊고 지냈던 '어른'의 내가 서글퍼서였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가를 좋아하기 위해서 수만 가지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일이었다. 그것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가성비는 어떤지, 남들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그렇게 나 자신을 억지포장, 어울리지 않는 교만으로 잘난 척했던 어제를 완벽하게 들켜버린 그날, 집에 돌아와 편지를 썼다. 나중의 나에게.
"나는... 순수한 감탄의 자리마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검열하곤 해. 그저 예뻐서 좋다는 고결한 진심조차, 어른들의 문법을 통과하면 복잡한 수식어가 붙은 비문이 되어버리고 말아. 아이의 '이쁘다'는 말은 그 자체로 완벽한 마침표였어.
나는 한참 동안 아이가 가리킨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어. 무채색의 논리에 갇혀 있던 나의 시선이, 아이가 선물한 빛의 조각을 맞고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거든.
어쩌면 우리가 예술을 마주하고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 이 아이처럼 투명하게 세상을 사랑하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일지도 모르겠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속에 작은 캔버스 하나를 걸어두었어. 그리고 그 위에 적었지.
이유 없이 좋았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가장 찬란한 가치였다고. 그러니 너는 네 심장이 뛰는 쪽으로 웃으면 좋겠어. 그렇게 웃는 미소가 가장 찬란하게 반짝일 테니까. 네가 뿌듯하다는 뜻이 켜주는 빛일 테니까.
주눅 들지 말고 마음껏 제 진심을 따라 웃길 바라. 언제나 나는 내편일 테니까. 어떤 자격보다 타고난 감각과 인내와 끈기의 열정이 살아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