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7
건너편 빌딩을 담기 위해
조금 비켜서 찍고 보니
동그라미 창이 일그러집니다.
정면에서 본 창의 모습은
예쁜 동그라미였는데..
혹시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보지 못하고
그 사람 주변과 배경만 동경한 것은 아니었을까?
창 밖으로 반성과 성찰이 지나갑니다.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한강뚝섬유원지역, 자벌레에서 2019.01.03
다년간 마을사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겨 성함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교수님 한 분이 계신다. 그분은 평소 내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골목 사진들을 유난히 아껴주셨다. '골목'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맺어진 인연 덕분에 A 교수님과는 각별한 친분을 쌓게 되었고, 교수님은 종종 주변 분들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하시곤 했다.
이미 골목의 풍경과 서사를 담은 포토 에세이를 세상에 내놓은 뒤였기에, 교수님의 그 말씀은 단순한 칭찬이라기보다 내 작업의 궤적을 오롯이 알아주는 든든한 지지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전공'이라는 높은 문턱 대신, 내가 쌓아온 '시간'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지역 문화재단의 기획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는 한 사회적 기업의 대표가 나를 찾아왔다. '휴대폰으로 지역 사진을 찍으며 나도 사진작가'라는 강의를 준비 중이라던 그는, A 교수님께서 꼭 한 번 만나보라고 강하게 추천하셔서 찾아왔노라며 인사를 건넸다.
마을 사업의 대선배이신 교수님이 '재능이 많은 사람이니 서로 알고 지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자신을 내게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며, 기획 중인 프로그램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민망한 인사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그가 사실은,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평소 좋아하고 존경하는 교수님의 소개라는 말에, 어느덧 내 마음은 무장해제 되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가진 정수(精髓)를 아낌없이 꺼내 놓기 시작했다.
내 경험과 철학을 쏟아내는 동안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할 무렵,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아주 담담하게 목적을 꺼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방금까지 내가 했던 그 모든 이야기들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전문 작가님이라 함은, 어떤 이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무래도 사진 관련 전공자이거나, 사진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분이어야 하니까요."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A 교수님이 그를 나에게 보낸 이유,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열변을 토했던 이유가 서로 달랐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교수님이 저를 만나보라고 하신 건, 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셔서였을 텐데요."
그러자 그는 마치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주듯 못을 박았다.
그 말은 뼈가 시릴 만큼 아팠다. 전공자가 아니라는 것, 제도권 안에서 검증된 자격증이나 학위가 없다는 것. 그 문장 하나가 내가 골목을 누비며 흘린 땀방울과,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밤새 고민했던 시간들을 한순간에 '취미'의 영역으로 밀어내 버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취미가 맞다. 어떤 보상을 바란 것도 아니고, 순전한 내 마음이 움직여 낸 결과물이니 '취미'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취미'로 낸 책을 보고 어떤 분은 마을 사업의 교재로 사용해도 되겠냐고 물어오기도 했고, 마을 사업을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길잡이가 된다며 추천을 아끼지 않던 책이었다.
현장에서 숨 쉬며 만들어낸 '책'보다 서류상의 '전공' 한 줄이 더 힘을 얻는 세상을 마주하며,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제 책을 읽어 보셨나요?"
"아, 아직 읽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음..."
말을 고르는 듯하던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내 고개를 들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글이 좀... 너무 시(詩)라고 할까. 뭐 그런 글보다 사진에 대해 전문적인 용어나 구도를 어떻게 잡았다는 그런 전문적인 글이 아니라, 마치 일기 같아서요."
그의 무신경한 평에 나는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 프로젝트는 그런 이야기를 담는 수업이 아니었나요? 회원들이 골목을 돌며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 사진으로 기록하는 시간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정곡을 찔렸는지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어렵게 말을 이었다.
아, 그렇구나. 이 대목에서 나는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인기 있는 유명 인플루언서였다. 그 입장에선 '모집 인원'이라는 숫자가 중요했으리라 충분히 이해는 갔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를 찾아올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품을 팔아 그 잘난 인맥을 동원해 인물을 섭외했어야 했다. 왜 굳이 나를 찾아와 이런 모멸감을 던져주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 동안 서로 말없이 차만 마셨다. 찻잔 속의 침묵이 무겁게 가라앉았을 때, 나는 오래전 내가 쓴 글 한 편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내 글을 읽은 그의 표정에는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깨달음도, 미안함도 없이 그저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인 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응원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 그에게 보여주었던 그 글을 다시 꺼내 보았다. 한강 뚝섬유원지 '자벌레'에서 기록했던 문장들이다.
건너편 빌딩을 담기 위해
조금 비켜서 찍고 보니
동그라미 창이 일그러집니다.
정면에서 본 창의 모습은 예쁜 동그라미였는데..
그 대표가 말한 '전문가'는 어쩌면 정해진 위치, 즉 '전공'이나 '학위'라는 정면에서만 보아야 완벽해 보이는 동그라미 창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 정면의 반듯한 모양새를 보며 안심하고, 그것만이 정답이라 믿는다.
하지만 나는 조금 비껴선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것을 더 즐기고 또 그 위치에 서 있는 것이 좋다. 비전공자라는 빗겨 선 각도에서 세상을 본다는 뜻이 아니라, 비껴 서서 보면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그로 인해 내가 만나는 성찰의 의미가 더 값어치 있는 산책 이어서이다. 완벽했던 동그라미가 일그러지며 만들어내는 낯선 곡선, 그 뒤에 숨겨진 입체적인 진실들.
나를 전문가가 아니라고 밀어냈던 그 역시, 나의 알맹이보다는 내 배경과 이력이라는 '창의 모양'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보지 못하고
그 사람 주변과
배경만 동경한 것은 아니었을까?
창 밖으로
반성과 성찰이 지나갑니다.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현장을 발로 뛰며 기록한 서사보다 학위 증명서나 화려한 팔로워 수가 더 대접받는 세상에서, 그날의 통증은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아픔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정면에서 본 예쁜 동그라미는 아닐지라도, 비껴선 자리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삶의 무늬를 기록할 수 있다면. 나는 '전문가'라는 안락한 성벽 뒤에 숨지 않고, 오직 '감각'과 '진심'으로 증명해야 하는 이 길을 기꺼이 꿋꿋하게 당당하게 걷는 내가 너무 좋다.
무엇보다 그런 나를 기꺼이 이해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벗으로 곁에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세상이 말하는 '자격'보다 훨씬 더 소중하니까.
그러니 혹시 나와 같은 경험으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있다면, 기꺼이 당신을 위해 스스로 말해주길 바란다.
세상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일에 대한 깊은 고민과 경험, 그리고 그 결과를 가장 당신답게 도출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전문가라는 사실을 부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세계적인 배우 윤여정 선생님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건넨 그 울림 있는 메시지가 당신들에게도 똑같이 전해지길 바란다.
맞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이라는 무대에서 대체 불가능한 연기를 펼치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정해진 정답의 동그라미가 아니면 어떤가. 당신만의 각도에서 빚어낸 그 일그러진 곡선이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예술이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