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네가 있었는데, 어쩌면 그건.

네가 좋아서.

by 수지
서 있는 곳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



어떤 이가 가는 장소가, 그 사람의 신념과 가치관을 말해준다는 글을 보았다. 문장을 읽고 나는 문득 인스타그램을 떠올렸다. 내 피드를 다시 찬찬히 돌아보고 싶어졌고, 네 피드를 또 찬찬히 둘러보고 싶어졌다. 어딜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매번 궁금해 네 피드를 눌러보던 게, 나름 심리학적 이유가 있었다고. 그런 엉터리 같은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sns를 검색해 피드를 둘러보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인지. 선입견을 갖게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 사전 정보들이 주는 많은 것들은 나의 입장을 정립하는 데에 꽤나 유용하니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장소'에는 참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하는지, 취미나 여가는 뭔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조차도. 그 사람이 가는 장소 하나만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너는 영화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지식, 새로운 것에서 배울 것을 찾는 것을 좋아하고. 자연과 예술을 사랑해. 나는 네가 좋아하는 장소에 담긴, 네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을 덩달아 좋아했다. 인스타의 '좋아요'가 하트 모양인 건 참 마음에 드는 일이야.


나는 읽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걸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림과 사진, 여행. 때때로 발레, 라이딩, 수영. 카페나 친구들. 영화. 글. 만드는 것, 배우는 것. 달과 밤. 나의 20대. 그리고 너. 작은 사각형 피드 속의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너를 담고 있었다.


사진에 등장한 게 아닌데도, 내 인스타에는 곳곳마다 이상하게 네가 있어서, 여름까지 내가 서있던 '장소'는 많은 부분 네 안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기 스스로가 제대로 안다는 게, 과연 정말 가능한 일일까?' 그런 생각을 문득 한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나를 밖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하고.


"너는 이렇게 반찬 해 주면 좋아하더라."

"내가 이건 얘 먹으라고 매일 해 두는 거야."


아침 식사 자리에서 내 앞으로 반찬을 밀어주며 흘러가듯 이렇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아, 내가 그랬나?' 깨달았던 것 같다. 맞아. 나 이거 좋아했지. 하고.

그동안 나는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라고 물으면, 늘 대수롭지 않게 "글쎄? 뭐 떡볶이?" 하고 말았는데, 어쩌면 그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고. 그저 자주 먹고 즐겨 먹었을 뿐 '정말 좋아하는 음식'은 아닐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좋아하는 것들' 이란 건, 편안하고 잔잔한 순간으로 머물기 때문에 기억에 크게 남지 않는 거란 결론에 도달했다. 나쁘고 슬픈 기억은 오히려 뇌리에 강렬하게 남곤 하니까.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 대답하는 일이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고 희미한 과정이겠구나, 수긍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뱉어낸 그 문장들 조차, 과연 내가 '온전히 스스로, 좋아한다고 떠올린' 목록들 일지 나는 100% 확신할 수 없다.

나의 좋아함을 아직 확신할 수 없기에 나는 인생이 어렵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하물며 내가 좋아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조차도 나 스스로 명확히 알 수가 없으니.


그래서 그렇게 혼란하고 복잡하게 느껴질 땐 때론, 오히려 한없이 가볍게 바깥으로 튀어나와 버리는 것도 의외의 도움이 되겠다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게 내가 올려뒀던 지난한 장소들의 기록이, 평범한 일상들의 모음이 나를 더 명확하고 뚜렷하게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이니까. 사소한 순간에도 밖에서 드러나보일 정도로 내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 나에게 중요하고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애정하는 것일테다.


그래서 더 많이, 더 좋은 곳으로 걸어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더 즐거움을 주는 곳, 새로운 곳, 가보지 못한 곳,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곳. 그런 곳들로 여기저기 나를 채워가다 보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에 있을 때 내가 행복을 느끼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웃음 짓는지. 결국 답을 찾는 건 오로지 내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일테니. 나아갈 방향이란 건 지나온 나의 걸음과 흔적들을 뒤돌아 볼 때 비로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날 널 만나고, 너를 좋아하게 된 순간 순간들이, 그 많은 과정 중에 하나였던 것이라고. 그래서 난 언제든 널 떠올리며 고맙고 행복해 할 수 있다고. 내가 꺼내놓은 좋아함들 중 그거 하나만큼은 정말 확신하는 것이라고.

나아가는 걸음 끝에 어떤 예쁜 구름 아래서나 아름다운 파도 앞에서, 네게 그런 많은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직 내가 걸어가는 곳엔, 볕이 드는 자리마다 네가 있다.



12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