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도시 미술관이 가르쳐준 머묾의 구조
2019년 9월 29일 새벽 1시 21분.
나는 한 미술관에 대한 글을 쓰고 곧바로
비공개로 저장했다. 감동이 너무 날것이어서,
나만 알고 싶은 장소처럼
혼자 간직하고 싶었나 보다.
그 기록을 6년 넘게 지나
다시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계기가 미술관이 아니라,
한 작은 마을 요양원의 브랜딩 작업이 될 줄은.
그해 9월,
나는 영국 북부 요크셔 웨이크필드에 있었다.
보통 예술을 보기 위해 런던으로 향하지만,
조각의 뿌리를 마주하고 싶다면 북쪽으로 가야 한다.
요크셔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자라고,
헨리 무어가 태어나며,
바바라 헵워스가 자신의
조각 언어를 형성한 곳이다.
그 중심에 헵워스 웨이크필드
(The Hepworth Wakefield)가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드는 것은
바바라 헵워스의 조각들이다.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개념은 단순하다.
돌을 덧붙이는 대신, 돌을 비워내는 방식.
그녀는 형태를 만드는 대신,
형태 안에 공간을 만들었다.
그 구멍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창밖의 칼더 강과 수양버들이 스며든다.
헵워스는 조각을 덩어리로만 보지 않았다.
그녀에게 조각은 그 형태가 차지하는 공간과
공기까지를 포함하는 존재였다.
빛의 각도,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조각은 매번 다른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헵워스의 구멍이 내게 남긴 것은
조각의 형식만이 아니었다.
이 미술관이 시간을 건네는 방식도,
어딘가 그와 닮아 보였다.
은퇴한 BBC 방송 작가와 그의 배우자는
평생 모은 작품들을 이곳에 유증하기로 했다.
개인의 소유가 다음 사람의 시선과 만나며,
다른 시간으로 이어지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설명하는 짧은 문장 앞에
잠시 멈춰 섰다. 형태를 채우기보다,
누군가가 머물 자리를 내어주는 방식.
조각의 구멍과 이 공간의 태도가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6년이 지난 뒤,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공간에서
다시 같은 질문을 마주했다.
예술이 아닌, 어르신 돌봄의 현장에서였다.
웹사이트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고,
사업소개서의 서사를 정리하며,
공간의 얼굴이 될 로고를 다듬어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멈추게 되었다.
이 공간을 설명하는 문장을 쓰려 했을 때,
어떤 표현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장을 쓰려다 멈춘 날, 나는 병실 창가에 서있었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직원들,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
그리고 그 공간에 흐르고 있는 조용한 속도.
그곳에는 이미 충분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순간, 헵워스의 조각이 떠올랐다.
돌의 중심을 비워내던 그 구멍.
그 구멍은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머무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구조였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브랜딩 역시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가리지
않고 드러내는 일에 가깝다는 것을.
헵워스의 조각이 인간의 몸과 형태,
그리고 존재를 다루는 작업이라면,
요양원은 인간의 삶과 시간,
그리고 존엄을 다루는 공간이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질문 위에 놓여 있었다.
공간은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가.
헵워스가 돌 속의 공간을 드러냈듯,
나는 그 공간이 오랜 시간 지켜온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좋은 공간은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이 비로소 주인공이
되도록 조용히 자신을 비워둔다.
헵워스의 조각을 다시 떠올리며,
나는 비로소 선명해졌다.
내가 기록하고 싶었던 것은 예술 작품 자체가 아니라,
공간이 사람에게 어떤 자리를 내어주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지금 그 구조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언어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요양원이 예술과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연결은 내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아마도 이 질문은 앞으로도 오래,
내가 따라가게 될 기록의 방향이 될 것이다.
예술뿐 아니라 내가 있는 모든 공간에서
환대의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조용한 태도를 이어서 기록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