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와 프랑스 남자, 그리고 한국 고양이 두 마리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커플로 발전했다. 스테펜은 곧 교환학기를 끝내고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우린 장거리 연애를 이어갔다.
2019년 봄에는 스테펜이 다시 한국을 찾았고,
여름에는 한 달간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크리스마스는 프랑스 노르망디에 위치한 본가에서 스테펜의 가족들과 같이 보냈다.
우리의 롱디는 2020년 봄 끝이 났다. 졸업을 앞둔 스테펜이 서울에서 인턴십을 구한 덕분이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비자를 받고 비행기표를 구매하기까지, 모든 게 물 흐르듯 일사천리였다. 그렇게 스테펜은 2020년 2월 19일 한국에 입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로 그 일이 벌어졌다. 한국 땅에 역병이 창궐한 것이다.
대구에서 모 종교집단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퍼지던 바로 그 시점, 스테펜이 한국에 왔다. 원래 스테펜은 입국 직후 강남의 사무실 근처에 고시원 방을 얻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백 명씩 쏟아지는 신규 확진자 수에 겁먹은 우리는 우선 내 자취방에 같이 머물며 잠잠해질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장기전이었다. 잠잠해질 기미는커녕 감염 경로는 더 넓고 복잡해졌다.
점차 수도권까지 퍼지는 감염 확산 상황을 보며 우리 부모님도 걱정이 많았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이 우리 딸을 보자고 이 멀리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는데, 화장실도 없고 환기도 어려운 고시원에서 살게 둘 순 없다!' 그렇게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스테펜 그냥 너희 집에서 계속 지내라고 하면 어때?"
이게 웬 떡이야.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던 우리로서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커플이 함께 사는 것이 일상인 나라 프랑스에서 온 스테펜은 물론, 나 또한 동거를 원했었다. 난 그와 미래를 함께 하고 싶었다. (순례길을 함께 완주한 이후 더더욱) 나는 스테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함께 생활하며 그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싶었다. 다만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 부딪힐 거라고 생각했기에 부모님이 스테펜을 더 잘 알게 되면 슬쩍 말씀을 드려볼까 하던 차였다. 그러나 K-부모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쿨하게 동거를 허락했다.
하지만 난관은 더 있었다. 내 명의의 대출금으로 내가 계약한 내 집이지만 그 주인은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나의 반려 고양이들, 심바와 라떼였다.
고양이들의 마음을 얻는 건 K-부모님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 더 고차원적인 문제였다. 엄마는 스테펜의 인상이 맑고 순하다는 이유로, 아빠는 스테펜이 김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마음을 열었다. (사실이다.) 한번 마음이 열린 뒤에는 내 혼신의 통역으로 편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내가 그걸 느낄 수 있었듯, 우리 엄마 아빠도 스테펜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달랐다. 덩치도 큰 데다 심지어 처음 보는 다른 인종의 사람. 스테펜의 존재는 고양이들에게 큰 위협이었다. 하악질 이중창으로 스테펜을 맞이한 고양이들의 반응은 각자 달랐는데, 심바는 대놓고 싫은 티를 냈고 라떼는 꽁꽁 숨어버렸다.
심바는 스테펜을 때리고 물었다. 특히나 자신의 왕좌라고 여기는 소파에 스테펜이 앉는 것을 용납치 않았다. 심바는 스테펜이 소파에 엉덩이만 댔다 하면 부리나케 달려와 다리를 물고 허벅지를 밀어댔다. 라떼는 스테펜이 집에 있는 시간에는 극도의 긴장 속에 움츠러들었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집사인 나의 손길조차 피했다.
설상가상 스테펜이 나와 한 침대를 쓰기 시작하자 고양이들은 밤에도 나를 찾지 않았다. 고양이들과 나는 매일 자기 직전 침대에서 10분가량 궁디팡팡 타임을 가졌는데 그건 고양이들에게도 나에게도 큰 힐링이었다. 내가 침대에 오르면 쪼르르 달려와 내 손에 얼굴을 비벼대던 고양이들이 이제는 침실 문턱조차 넘으려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고양이들이 매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이유 없는 구토와 설사가 이어졌고 나 또한 점차 예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