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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Aug 01. 2016

어이, 거기 글 쓰는 학생

스물다섯, 나에게 글쓰기란




이야기 하나

 7살 때 느티나무가 주인공인 동화책을 읽었다.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느티나무란 단어가 머릿속에 한참 맴돌았다. 자꾸 시끄럽게 굴길래 느티나무가 주인공인 시를 썼다. 그리고 7살짜리 애가 무언가를 이룰 때마다 그러하듯 엄마에게 가져가 보여줬다.

'너 이거 베꼈지?'

사실 나는 느티나무를 본 적이 없는데 느티나무란 단어로 시를 쓰는 것을 조금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른의 다그침에 7살의 아이는 시를 뒤로 감춘다. 시상이란 단어 따위 알 턱이 없을 나이인지라, 느티나무란 단어가 나온 책을 읽고 나서 느티나무란 단어가 들어간 짧은 시를 쓰는 것은 베끼는 거구나, 그리고 베끼는 건 나쁜 거니까 내 글은 잘못된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버려진 7살 아이가 쓴 시는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꽤 잘 썼던 거 같은데. 쩝


이야기 둘

 중학교 때 백일장을 나가면 소소하게 상을 탔다. 학창 시절 반마다 고정으로 있었던 '백일장 상 타는 애' 중 하나가 나였다. 나는 그래서 백일장 시간이 좋았다. 글을 빨리 써내는 편이었어서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고 여유 있게 놀면 되니까. 생각해보면 글에 관심 없는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고역의 시간이었을까 싶다. 중 2 때였던가, 백일장 시간에 시를 금방 써내고 할 일없는 나에게 두 명의 친구가 부탁을 했다. 사춘기의 나는 글씨를 써 내려가는 속도만큼 시라고 불릴 만한 문장 뭉치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심심하니 몇 개를 더 지어줬다. 음, 근데 친구 부탁이라 좀 더 신경 써서 짓긴 했다.

 일주일 후 들뜬 표정의 국어 선생님이 반으로 찾아왔다. '이 반, 시인이 많던데?' 라며 백일장 학교 대표가 모두 자기가 담당한 한 반에서 나왔다며 싱글벙글한 목소리였다. 이름을 들어보니, 내가 대작해준 친구 두 명이었다. 상황을 아는 반 아이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당황스러우면서 재밌기도 했다. 두 명의 친구들이 직접 손을 들어 상황설명을 했다. 그때까지는 그냥 다들 얼떨떨하게 웃는 정도였던 것 같다.

 쉬는 시간, 국어 선생님에 의해 우리는 교무실에 끌려갔다. 상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사실 우리 국어 담당 선생님은 여자였는데, 우리를 혼내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는지 무섭기로 유명한 남자 선생님 자리로 우릴 데려갔다. 우린 호되게 혼났다. 아마 학교 대표 명단을 어딘가 위쪽에 넘겼을 텐데, 그걸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번복해야 했으니 위신이 좀 깎였겠다. 화가 난 것도 당연했다, 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좀 과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셋 중에 나는 '네가 제일 잘못했다'며 난생처음으로 주먹으로 머릴 맞았다.

혹시나 해서 얘기하는데, 전혀 '딱콩' 수준이 아니었다. '주먹으로 머리를 맞는다'라는 문장의 무게감만큼의 충격이었다.



그래서?

 사실 제도권 교육안에서 문창과도, 국문과 지망도 아닌 아이가 성장기 내내 글을 계속 써나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드라마틱하게 어떤 어른이 어떤 아이가 어떤 시를 써낸 것에 한번 주목해줬으면 지금 결과가 달라졌을까 싶긴 하다만, 내가 가진 작가 수준의 필력도 아닌 그 어정쩡한 무언가는 나와 글쓰기라는 것을 한참 동안 완벽히 분리시켰다.

 게다가 수능 교육이란 게, 언어 지문 접속사에 똥글뱅이치고 중심 문장에 밑줄 그어가며 글 읽기를 강요하는 그런 게, 어릴 적 책을 좋아했던 나의 독서 습관을 뿌리째 뒤엎어 놓았다. 재수 시절까지 거치며 강박적으로 수능 1교시를 위한 한.글.단.어.를 읽어내야 했던 끈덕진 기억 때문에 대학 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아무 글도 읽히지 않았다. 물론 핑계다ㅎ

 나에겐 독서는 글쓰기와 같은 선상의 것이어서, 새로운 글을 읽지 않으니 쓸 것도 없었다. 머릿속 생각을 단어로 어루만질 일이 없으니 뭐 내뱉을 것도 없었다. 분명히 어릴 적엔, 아니 저 이야기 둘 언저리까지만 해도 내 안엔 무수한 단어와 의미들이 넘쳐났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없다, 정말. 시가 무어냐!


 그러니까,

몇 달 전만 해도 누군가가 글쓰기란 너에게 무어냐 물으면 내 몸뚱아리를 반으로 잘라 도장을 찍는 일이라고 했다. 여실히, 적나라하게, 그리고 또 무기력하게 나의 장기까지 모두 꺼내놓는 느낌이라고 했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내가 쓴 글이란 게 너무 나여서. 그만큼 예전에 글쓰기는 나에게 나를 정체성을 확인하는 절박한 것이면서도 그래서 한없이 부끄러운 것이었다. 잡지 에디터 경험 이후로는 글이 담은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필요에 대해까지 고려하게 되어서, 더 이상 에디터가 아닌 내가 남에게 쓸모가 있지 않은 내 목소리의 이 글 뭉치들을 어딘가에 내놓을 자신이, 아니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어렴풋이나마 70살 즈음에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있겠거니 생각했다. 최소한 그때는 내 인생 뒤돌아 회고록이라도 쓰면 누가 화장실에서 읽을거리는 되겠지. 아니 남이 안 읽어도 나의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내 묏자리에 같이 묻힐 글이라도 나온다 치면 내 글쓰기도 쓸모가 아예 없진 않지 않겠는가. 어쨌든 그때 쯔음에는 내 글도 쓸만하겠지.



이야기 셋,

 그런데 돌고 돌아 25살의 나는 글을 쓴다. 비루한 나의 생각은 글이라는 틀에 담겨, 글이라는 일방적인 미디어에 실려 어딘가로 보내진다. 글이란 게 누군가 읽는 순간 송신자와 수신자가 워낙 직류로 연결되는 지라, 나는 사실 근본적으로는 아무도 관심 없는 나의 생각을 써내는 주제에 글 위에서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들릴까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그래 봤자 무인도 해변가에 놓인 유리병 속 쪽지처럼 수신자 미상의 기약 없는 끄적임일 수도 있다는 것또한 알고 있다.


 몇 달 사이에 운이 좋았다. 투명한 유리병을 주워  쪽지를 읽어보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가끔은 답장도 줌ㄷㄷ. 내 글을 보는 사람도, 봐주는 사람도 생겼다. 브런치라는 상상치 못한 독특한 플랫폼이 나를 무언가에서 자유롭게 만들었다. 오히려 글에 대한 부담감도 훨씬 가벼워졌다. 부끄러움이 줄으니 글을 쓰고 어떠한 피드백을 받는 것에 재미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은 나를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져서 두려워했을 텐데,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자신은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다며 자신을 말해줄 때가 요즘 제일 살맛 난다. 최근에 쓴 알파고 글을 보고 '그건 너 답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몇 있었다. 나도 아직 형상을 파악하지 못한 나다운 글 부끄 에 대해 누군가가 그리는 게 있다니! 70살에야 이룰 것 같았던 꿈을 25살에 이룬 느낌이랄까.

물론 나도 이야기 셋, 의 마지막 문장이 뭘로 끝날지는 아직 모른다. 이야기 하나, 둘처럼 그냥 잠시 글이란 걸 쓰던 때가 있었지, 그러나... 의 플롯으로 끝이 날지, 아니면 새로운 인생 국면에 접어들지는 알 길이 없다. 이 글의 부제 '스물다섯, 나에게 글쓰기란'을 적으며 ' 나 '라는 단어 앞뒤에서 잔잔히 흔들리는 '스물다섯'과 '글'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한다. 전자는 나와 친해진 지 고작 칠 개월 되신 분이고, 앞으로 오 개 월남음..ㅠ 후자는 지금껏은 조금 어색했지만, 앞으로도 몇십 년 동안 나와 서로를 이고 가실 분이다. 거부해도 소용없다 두 이질적인 단어가 나라는 축으로 한 문장에서 내는 묘한 불협화음이 재미가 있어 한참을 들여다본다.




 





이야기 셋의 끝은 어똫게 될까. 쩜쩜

영화 보고 리뷰쓰고싶드. 다음은 그것으로 쓰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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