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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Jun 27. 2023

서울 한복판, 축구장보다 큰 식물원

서울의 마지막 미개발지 마곡 평야를 뒤바꾼 곳



2km 떨어진 사거리에서도 식물원이 보여 직접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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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공항 아니야..?’

100% 사진을 믿지는 않았었다. 화면을 꽉 채운 거대한 규모의 풀과 나무가 눈길을 끌었지만 여느 SNS처럼 그럴싸한 부분만 잘라낸 장면일 거라 여겼다.

실제로 보니 몇 킬로 떨어진 건널목에서도 시원하게 보이는 규모에 마음이 설렜다. 주말 나들이 겸 가볍게 들린 마음이었는데 기대가 커져 일일 입장 인원 제한 수에 걸릴까 잰걸음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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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보다 높이 서 시야를 가리는 열대지방의 나무들
가느다란 이파리가 풍성하게 하늘로 뻗친 이국적인 풍경


2층에 올라와서야 나무 꼭대기를 볼 수 있었다. (c)헤럴드경제

온실 안은 찌듯 더웠다. 초여름 이상 고온에 35도를 넘긴 더운 날씨였지만 사람보다 식물이 중요한 공간이라는 듯 내부 온도는 열대 기후 식물의 기호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님이 많았는데, 어째선지 더위에 지친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신나 보였다. '살면서 이런 걸 본 적 없어'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감동이 더 커서일까.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적당히 꾸며둔 테마파크이겠거니, 했는데 가본 적 없는 싱가폴 같기도 태국 같기도 하고, 낯선 곳에 떨어진 듯한 환상을 자극하는 쥬라기 공원에 더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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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lottehotelmagazine.com

밖이 보이지 않게 사방이 크고 생경한 나무로 뒤덮여있어 미로처럼 꼬인 길을 걷다 보면 나무 너머로 온실 벽이 아닌 이 숲이 계속 펼쳐져있을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한 바퀴 둘러보기가 끝이 날 때쯤 2층으로 올라가는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방금 걸은 그 온실을 공중에서 가로지를 수 있는 철길(스카이워크)이 나왔다. 녹음된 소리인 줄 알았던 새소리의 살아있는 주인도 보게 되고 사방에서 뻗어 나오는 물안개가 살짝 뿌옇게 시야를 가려 이곳의 환상성을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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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페이퍼*에서 선정한 주목해야 할 세계 건축가 20인

-현재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축가 김찬중


*영국 유명 디자인지


‘이걸 누가 만들었을까?’

가끔 너무 좋은 걸 보면 자연스레 어떤 부지런한 사람이 이걸 만들었나, 하고 궁금증이 든다.  ‘어쩌다 간 식물원이 의외로 엄청 좋더라’로 헛헛하게 요약될 뻔한 개인적인 감상이 철저한 기획 설계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다녀오고 나서  홀리듯 찾았던 건축가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였다.


오목한 형태를 만들면 가장자리가 더 높아져 그 둘레에 키 높은 나무를 배치하면 더 많은 식물들을 주인공으로 대접할 수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더 풍부한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죠


*헤럴드경제 인터뷰 중

런던의 큐가든 (c) wikipedia (좌)와 서울식물원 조감도 (우)

실제로 식물원 가장자리 쪽에 높은 열대나무가 배치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키가 작은 나무들이 있었다. 둘러보았을 때 키가 큰 나무들이 시야를 채우고 나무를 따라 시선을 올리면 하늘과 이어지니 자연스레 이 숲이 계속해서 연장되어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세계 최초의 접시형 식물원이라고 했다. 보통 식물원은 볕을 받도록 외장재로 유리를 쓰고 가운데가 볼록한 형태로 설계된다. 원래 공법상 유리로는 오목한 천장을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가운데 몰리는 하중과 눈과 비의 처리가 문제 되기 때문이다. 관람객의 시각경험을 위해 접시형 식물원을 짓기로 결심했지만 기존 기술로는 구현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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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을 이루는 3180개의 삼각형

(c) 서울시

건축가는 고민 끝에 신소재로 이를 해결했다. 이티에프이(ETFE)라는 특수 소재가 답이 되었다. 유리보다 가시광선 투과율이 20%쯤 높은 데다가, 두 개의 얇은 필름 구조로 안에 공기를 품기 때문에 단열은 물론 외부의 충격이나 눈, 비를 견딜 수 있었다. 또한 천장 가운데 집수할 수 있는 구멍을 뚫었다. 비나 내부의 따뜻한 공기와 접촉하면 녹은 눈이 가운데로 집수 되어 조경수로 재활용되도록 했다. 식물원의 외벽은 삼각형 ETFE 318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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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의 구조를 본떠 만든 건축


왜 식물의 세포는 육각형인가를 설계를 진행하며 알게 됐다. 그게 가장 안정적인 구조더라

*헤럴드경제 인터뷰 중

via ifdesign.com


재밌는 것은 흔히 서울 식물원의 온실은 꽃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세포의 구조가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되려 건축가는 ‘꽃을 닮은 식물원’이라는 단순한 접근을 경계하는 듯했다.

건축가가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에 식물의 세포에서 인사이트를 받아서 진행한다면 자연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야기를 인공적인 것까지 끌고 오는 것
 - 이는 형태를 본뜬 단순한 직물적 접근이 아니다

*헤럴드경제 인터뷰 중

서울식물원의 건축 구조는 생물의 가장 근원적인 구조에서 영감 받았다. 천장은 세포의 육각형 구조를 닮은 183개의 육각형 틀로 덮여 세포 구조의 안정성까지 담아냈다.

천장도, 외부 엘리베이터를 감싼 흰색 구조물도 세포의 모습을 본땄다. via twitter.com/archilife802(좌), (c)헤럴드경제 (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식물의 체관의 모습을 따왔다. (c)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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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미개발지에 새워진

축구장 70개 규모의 식물원

서울식물원 전체 조감도 via botanicpark.seoul.go.kr


사실 야외 정원도 세밀하게 나뉜 구역마다 조경이 다르게 되어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감탄하게 되었다. 체력이 된다면 하루 종일 구경하고 싶었지만 첫 방문은 온실에 만족해야 했다. 면적 7,602 제곱미터의 온실 하나만으로 축구장보다 크다. 온실 외에 호수원, 습지원, LG아트센터 등 전체 시설을 합치면 여의도 공원 면적의 2배, 축구장 70개 규모와 맞먹는다.

마곡 지역은 2000년대 지역까지 벼를 재배하던 서울의 마지막 곡창지대였다. 대규모 미개발지로 2007년에서야 개발이 본격화됐다. 이 글에서는 온실의 건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마곡평야의 장소성을 살려 구역을 기획한 조경기획과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낸 총괄 기획가의 이야기 모두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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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규모 안에 숨은 기획자의 의도와 감각적으로 구현된 결과에서 느껴지는 집착과 수고에 작은 짜릿함을 느낀다. 마치 잘 짜인 영화의 숨은 상징을 몇 번이고 돌아보는 마음이랄까.

서울식물원은 한 도시에 오래도록 살며 광장과 공원 하나로 도시의 풍경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보고 자랐다. 개장 한 달 만에 60만 명, 4년 만에 2천만 명이 방문한 이 거대한 식물원은 서울의 기억을 앞으로 더 얼마나 바꾸어 놓을까.







참고기사


'서울식물원의 오목한 접시 온실…온 식물이 주인공',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95384.html


'[건축] 식물, 도시의 문화가 되다', 대학원신문

http://gspres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21889


'오목한 천장을 어떻게?.. 도심에 새긴 '건축스토리', 헤럴드경제

https://v.daum.net/v/20220329114443915


'땅으로 시를 쓰고 철학해온 1세대 조경가이자 뜨거운 현역! 정영선의 맹렬한 삶', 엘르

https://www.elle.co.kr/article/67101


'상전벽해 꿈꾸는 `마곡지구`, 목동 뛰어 넘을 채비하다', 매일 경제

https://www.mk.co.kr/news/realestate/9986966


'식물이 주는 안식, 서울식물원!' , dbblog

https://www.dbblog.co.kr/1788


마곡워터프론트→식물원+도시공원 ‘보타닉공원’, 조경 뉴스

https://www.lafent.com/inews/news_view.html?news_id=110023&wrter=%EB%B0%95%EC%86%8C%ED%98%84



2022년 기준 2천만 명이나 다녀갔다는데, 왜 난 여기를 이제야 다녀왔을까.

조경 기획 이야기도 흥미로운데 써볼 기회가 (에너지 ^^..) 가 있으면 좋겠다.


다 못본 야외정원이 아쉬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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