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마주친 친구 셋. 우린 인연일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린 인연일까? 운명일까?

by Sooki Moon

#1
2017.7.21.
누군가를 기다리며 길거리를 배회하던 중 익숙한 얼굴이 지나쳤다. 본지가 5년은 된 것 같은데도 분명히 A임을 알 수 있었다. 날 못 보고 지나쳤는지 지하철역으로 쌩 들어가려고 하는데 A의 뒷통수에 대고 이름을 불러댔다.

돌아보고 나임을 알아차린 A는 반가워했다. 내 이름을 불러대며 한 번 안아보자고도 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근황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그런데 나를 돌아보며 이름을 부르는 모양새가 못 본 척 지나쳤는데 내가 억지로 불러세운 듯 했고, 그 반가워하는 모양새는 마치 과장된 것 같았다. 지난 시절 내가 매우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사이가 잠시 안 좋았다. 이후 서로 앙금을 풀었지만 사이는 예전만 못 했다. 가끔 보고 싶어 연락을 하고 보자고 했었는데 매번 기회가 닫지 않았다. 나만의 느낌인지 실제로 그 친구가 날 멀리하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날 내가 느낀 반가움에 비해 그가 느낀 반가움이 덜한 건 틀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근황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A의 근황에 대해 내가 물었고 그는 대답했을 뿐이었다. 확실히 그는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2
2017.7.23.
퇴근을 하고 약속을 가는 길.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탔다. 승강장 가운데 쪽으로 이동하는데 낯익은 뒷모습. 그 뒷모습만 보고도 난 B임을 직감했고 곧바로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인사를 했다. B는 이런 생소한 곳에서 그것도 쉽게 지나칠 수 있었음에도 나를 만난 것을 매우 반가워했다. 나도 신기하기도 했고 B와 1호선에 같이 올라 이야기를 하며 목적지까지 갔다.

목적지까지는 겨우 3정거장. 그런데 그 7분가량 되는 시간이 어쩐지 길었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주고 받아도 그 짧은 시간 속에 생기는 잠깐 잠깐의 침묵들이 어색했다. 아주 가깝진 않아도 친한 편인 B였는데도 말이다.

#3
2017.7.26.
집에 가는 길 버스 안에 앉아 있었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C가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는 서로를 금방 알아봤고 C는 받고 있던 전화도 끊으며 서로 깔깔대며 신기해하기 바빴다.

난 왕십리에서 영화를 보고 꽤 긴 시간 길을 따라 걷다 지쳐 집쪽으로 가는 버스를 무작정 탄 거였다. 평소라면 이 버스를 타지도 않았을 터. 그건 C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건대 쪽에 왔다가 아무 버스나 탔더랬다. 그런데 심지어 C는 버스번호를 잘못보고 다른 버스를 탄 것이었다. 목적지에 금방 도착해 잠깐 밖에 이야기 나누지 못 하고 금방 헤어졌다.

집에 잘 도착한 뒤 카카오톡을 통해 '우린 진짜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있나보다'며 또 한 번 깔깔댔다.

#4
7년 전 일본 여행에 갔을 때 난 중학교 동창들을 만난 적 있다. 중학교 졸업하고 처음 본 친구들이었다. 낯선 장소에서 보는 친구들이기에 그 순간만큼은 정말 기뻤다. 서울에 돌아오고 난 뒤로 지금까지 그들을 본 적이 없다.

4년 전 스위스에 갔을 때도 우연히 대학 때 친구와 마주쳤다. 그때도 같이 늦게까지 이야기 나누며 반가운 마음을 나눴었다. 역시나 그 뒤로 그를 보지도 심지어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머나먼 땅에서 어쩜 그렇게 약속한 듯 친구를 만났을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혹자는 이 정도 우연이면 인연을 넘어 운명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타국에서 이들을 만난 경험을 토대로 인연이란 것이 매우 능동적인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섯 다리만 건너면 이 세상 사람들 다 안다는데, 친구들을 불현듯 만난 건 그저 우연의 극치였을 뿐이다. 정말 극단적인 우연 말이다. 우연 뒤 인연으로 만들어가는 건 바로 당사자들의 몫인 것이다.

20170627_201935.jpg?type=w580 길에서 마주친 이 고양이. 인연일까? 내가 이 곳을 지나지 않았다면, 고양이가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 했을 터. 하지만 우린 인연이 아니다. 서로 인연이길 원치 않기 때문

난 A가 매우 반가웠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난 이제 A를 놓아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난 그를 내 인연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A는 그렇지 않았다. B와 내 사이는 양쪽이 모두 미온적이었다. 그리고 C와 나는 이미 서로를 인연이라 생각했고 서로에게 더욱 소중한 인연이 되고 싶어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은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사코와의 세번째 만남을 후회했다. 그는 몰랐던 것이다. 인연이 아닌 것은 가끔 놓아줘야 한다는 것을. 우연을 붙잡고만 있다가 끈질기게 인연으로 만들고 싶어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끈질기게 인연의 끈을 잡으려던 그는 변해버린 아사코의 모습에 결국 실망하기에 이르러 버렸다.

우연은 절대로 인연이 아니다. 그저 우연일 뿐이다. 운명이란 건 없다. 결국 사람 사이의 일은 스스로가, 서로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