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인식: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힘
아이가 울면 우리는 이유를 묻습니다.
"왜 울어?"
"무슨 일이야?"
하지만 아이는 대답 대신 더 크게 울곤 합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아이가 울고 있었던 건 '설명할 말'을 몰라서였습니다. 감정을 느끼지만 그 감정이 무슨 이름인지,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SEL에서는 이런 능력을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라고 합니다.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아차리는 힘입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사회정서학습(SEL)을 통해 '마음을 배우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SEL의 첫 단계는 자기 인식, 바로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힘입니다.
올해 저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을 대상으로 그림책을 활용한 사회정서학습(SEL)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아이들이 자기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며 협력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림책을 고르고, 함께 읽고, 질문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의 근육을 키워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역시, 마음이 자라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저는 수없이 화를 참으려 했습니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 나쁜 말을 하지 않으려 애써 침묵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이유 없이 날선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는제 반복되다 보니 부끄러워지고 자책하게 되었습니다. 고민의 끝에 만난 결론은 나는 아이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팠던 것이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예민하게 되고, 내가 예민하면 인내심의 한계치가 낮아졌습니다. 그것을 알아채고 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 후로는 틈틈히 끼니를 잘 챙겨먹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감정의 이름을 알려주듯, 어른에게도 감정의 원인을 파악하는 일이 늘 필요합니다. "화가 났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는 피곤해서, 혹은 인정받고 싶어서 화가 났다." 그 감정의 근원을 따라가는 연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사실 감정을 인식하는 것은 아이만의 숙제가 아니라 어른에게도 평생의 과제인 것입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 그림 그리기 시간에 기분이 좀 나빴어."
"그랬구나. 어떤 느낌이었을까?"
"음... 친구들은 다 잘 그리는데 내 그림만 이상해 보였어. 나만 못 그리는 것 같았어."
"그래서 마음이 답답했구나. 잘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면 속이 꽉 막힌 느낌이지?"
"응. 그랬어. 선생님이 '괜찮아, 잘했어'라고 했는데 그 말도 그냥 싫었어."
저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그럴 때도 있지. 괜찮아, 잘했다는 말보다 '답답했겠다.'는 말이 더 먼저 필요할 때가 있어."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밤,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나 그림 배우고 싶어. 미술학원 다니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그 한마디는 깊은 떨림으로 남았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는 건 '나, 답답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럼 나는 무엇을 해볼까?'로 나아가는 힘을 기르는 일임을 아이의 입을 통해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 입에서 들은 친구의 한마디에 엄마가 먼저 가슴 아픈 날이 있습니다. 아이보다 내가 더 속상하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먼저 앞서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기억해야 합니다. 이 감정은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상처가 아니라, 마음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아이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먼저 아파오는 건 늘 엄마의 마음입니다. 저도 그런 날이 많았습니다. 아이의 속상함에 내가 더 속상하고, 아이의 눈물에 내가 먼저 무너질 것 같았던 날들.
하지만 그 마음을 꾹 삼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의 감정에 내가 그대로 휩쓸려버리면 아이는 자기 마음을 바라볼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부모가 느끼는 아픔과 아이가 겪는 감정은 때로는 조심스럽게 분리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거리만큼 아이는 스스로 숨을 고르고, 자기감정을 스스로 다루는 법을 배워갑니다.
감정을 겪는다는 건 약함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을 아이가 스스로 내딛도록 우리가 조금만 뒤에서 지켜봐 줄 수 있다면 아이의 흔들림은 언젠가 단단함으로 바뀌어 갑니다.
아이와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
『컬러 몬스터』 – 아나 예나스
감정마다 색을 입혀 표현하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기분을 말로 꺼내는 데 훌륭한 첫걸음이 됩니다. 책을 읽고 나서 "오늘은 어떤 색이야?"라고 가볍게 묻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마음은 스스로 열릴 준비를 합니다.
감정을 배운다는 것은 '기분 좋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지 잠시 멈춰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작은 멈춤이 아이와 나의 마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이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