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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쑥 Sep 19. 2022

어떤 사람들이 결정사의 문을 두드릴까

결혼정보회사의 인력풀

결혼정보회사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이렇게 이용자가 된 현실에 가끔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그 심리적 기제에 대해 파헤쳐 보고자 한다.


사당 페**스 카페 

어느 순간부터 단골이 되어버린 카페. 시그니쳐는 쑥 라테인데 왠지 필자의 이름과도 일맥상통해서 정이가 기도 하고, 달달하고 쌉쌀한 것이 꼭 우리네 인생과 같아서 꽤 즐겨먹게 된 메뉴이다. 

각설하고, 

이곳에서 만난 어떤 이와의 이야기를 회상해 보도록 하겠다. 


약속시간에 30분을 늦은 그와는 일종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으로 필자의 담당 매니저가 바뀌었고, 새로운 매니저는 기존의 매니저와는 다르게 굉장히 일을 대충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가령, 전 매니저는 주초에 라인업을 하고, 희망하는 매칭 상대자를 받은 후 상호 매칭이 성사되면 그 주나 차주 주말 즈음으로 일정을 조율해 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금요일 오후 4시쯤, "이분 어때요?"라며 하나의 프로필을 보내주었는데, "맘에 안 드면 거절하셔도 되고요."를 덧붙여서 왠지 거절하면 내 손해인 듯 한 느낌을 받았다. 7살 차이가 나는 대기업 회사원이었고, 일단 수락했다. 

참고로 필자는 직업 특성상, 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갖지 않는 편이므로 능력, 학벌, 재산 따위가 사람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남 3일 전 발송되는 가상 번호가 오지 않았다. 만나는 당일까지! 오후 3시 약속이었는데, 가상번호가 오지 않아 상대와의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장소와 시간을 알아도 서로 알아보지 못할 수 있기에 매니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매니저는 "가상번호가 안 갔을 리가 없다. 핸드폰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등의 말을 하며 상대가 연락을 할 것이라 했고, 마냥 기다리다가 약속시간이 다 되어서야 상대 또한 가상 연락처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결정사 매니저들도 알게 되었다. 바뀐 매니저는 상대에게 전화를 받고 본인이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냐며 역정을 냈다고 하고, 바뀌기 전 매니저에게 SOS를 요청해 필자의 번호를 알아냈다고 한다. 사려 깊은 전 매니저님이 오작교 역할을 해주어서,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그와 만났다. 



우선 이 황당한 상황에 대한 심경을 약간 나누었는데, 어떤 일에든 책임감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의견을 같이 했다. 본인이 너무 늦게 매칭을 진행했고, 시스템에 늦게 등록한 탓에 가상번호 발급이 안되어 회원들이 발을 동동 구르게 된 이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커녕 역정을 내고, 시스템 문제이니 핸드폰 문제이니 면피를 하려고 했던 매니저의 태도를 진단하면서.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결정사가 세 개의 그룹사와 수많은 매니저로 이루어진 매칭 풀로 되어 있는데, 심지어 그와 나는 한 매니저에 속한 회원이었다. 즉, 각각의 니즈에 맞는 상대를 찾아주려는 노력은 없이, 금요일 늦은 오후 본인의 회원 안에서 대충 감으로 매칭해 준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그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감성매칭'을 표방하던 시스템상의 치명적 결함은, 얼마든지 이것이 '감대로 매칭'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그의 이야기

1년짜리 회원제로 가입을 했고, 이제 종료 시점이 2개월 앞으로 다가왔다는 그는 이 '감성 매칭'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감성'이 아니라 '감대로'이고,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대충'인 것 같다고. 그래서 물었다. 매니저 교체 요청을 하거나, 니즈를 좀 더 정확히 밝혀보았는지. 니즈는 정확히 밝혔지만, 그에 대한 만족스러운 매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듣다 보니 안타까워서 물었다.


필자:  니즈가 정확하신듯한데, 어떤 여성분을 만나고 싶다고 하셨나요? 

그: 저는 수입이 일정한 분을 원해요. 그런데 매칭 된 분들은 다 수입일 들쭉날쭉한 분들이더라고요.


아, 여태 짝을 못 만난 이유는 있었다. 적어도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 아무리 결혼정보회사이지만, 이곳이 서로의 니즈에 기반하여 무엇을 give 하고 무엇을 take 할 수 있는지 칼같이 재어 만남을 지속하기 위한 곳이었던가. 누가 보아도 평범한 직장인이고 나이가 41세인 그는, 그저 상대를 평가하려고만 하고 있었다. 비즈니스의 기본 또한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상대가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 매너를 갖고 있는지, 상황과 장소에 맞게 말을 가려할 줄 아는지, 나의 니즈가 중요한 만큼 상대의 니즈도 분명히 있음을 간파하고, 이에 맞게 대응하는지. 관계의 품격을 결정짓는 것은 이런 사소한 차이이다. 


어차피 남녀관계로는 가망이 없겠다 싶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결심했다. 10개월간 어떤 것들을 느꼈는지. 

[그가 내린 결론]

1. 결정사에 '투자'했지만 그만큼의 성과가 없다. 

2. 수익이 일정한 여성을 만나지 못해 나는 아직 짝을 찾지 못했다.

3. 결정사에서는 전문직 남성이 유리하다. 

4. 결정사에는 나이 많은 여성이 많다.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1. 결정사에 '투자'하면서 본인이 얻고자 한 '성과'란 과연 무엇인가? 

인연을, 사랑을 찾기 위함인가 아니면, 비즈니스 파트너를? 본인의 목적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기를. 서로의 니즈라는 것이 있는 것인데, 본인이 원하는 상대에게 본인이 충분한 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듯하다. 


2. 수익이 일정한 여성

평범해도 좋으니, 수익이 일정한 여성을 원한다고 했다. 그는 함께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할 투자 파트너를 이곳에서 찾는 듯했다. 아니면, 회사를 그만둘 것에 대비한 보험 정도. 이런 노골적인 말을 들었다면,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무조건 도망갔을 듯


3. 전문직 남성이 유리하다?

사람 by 사람이다. 생각해보라. 전문직이어도 능력과 이제까지 이룬 성과, 앞으로의 비전, 사람 됨됨이, 매력 등 모든 것이 다르기에 그 전문직 풀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게다가, 지금은 평범한 회사원으로 보일지라도 엄청난 내공과 비전으로 칼을 갈고 있는 능력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람 자체의 매력도 또한 마찬가지.


4. 결정사에는 나이 많은 여성이 많다. 

이 말을 듣고 일단 황당했던 것이, 그는 필자보다 7살 연상이었고, 필자가 느끼기엔 이 결정사에서는 기본 5살 이상 차이는 깔고 매칭을 진행해준다. 남성은 '일반적으로' 자신보다 어린 여성을 선호할 것이라는 데이터와 판단에 기반하여. 필자가 여태 받았던 프로필 중 연하는 없었고, 최소 4살 연상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나이 많은'여성을 논하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이래저래 정신없이 시작된 대화였고, 정보 교환 및 상담의 장이 된 그날의 대화는 씁쓸함을 남겼는데, 그는 필자에게 번 더 만나보고 싶다면서 약속을 잡자고 했다. 마침 저녁 시간이어서, 오늘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니 오늘은 일정이 있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일정은 치킨을 부모님과 함께 먹는 것이었다.

필자의 머릿속에 그는 약속 시간에 30분을 늦어놓고, '대충 교통을 이용했으나, 초행이라 늦어졌다.'라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변명으로 시작해서, 그날을 통으로 빼서 나온 상대의 시간은 아랑곳 않고 다시 한번 만나서 널 다시 평가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당당히 밝힌 남자였다. 


필자의 결론은 이렇다. 

필자가 여성인지라 여성 풀이 어떤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필자가 만나왔던 유형의 남성들은 대부분이 이런 유형이었다. 결혼정보회사에 온 이유는 낭만적 사랑을 찾기 위함이 아닌,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기 위함이고 본인조차 그 목적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본인의 니즈는 확실한데 상대의 니즈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 결혼정보회사의 인력풀과 시스템이 형편없다며 불평하는 것. 

적어도 배울 점은 있었다. 이토록 노골적인 욕망의 표출은 관계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비즈니스에도 매너가 있듯, 결정사 미팅에서도 그에 마땅한 매너가 있어야 하므로. 


결정사에 제안을 한번 해보고 싶기도 하다. 매칭 전 회원들에게 기본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당사의 입장에서도 성혼이 되어야 양쪽에서 성혼비를 받는 것인데, 매칭과 미팅이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어서야, 좋은 회전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필자는 이 사건을 계기고 아주 전문성이 있는 매칭 팀장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꽤 만족도 높은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피드백과 수정이 되는 가능성을 발견했으므로.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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